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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7(주일예배)정해진 미래(벧후3:10-13) 이기형 목사 2022-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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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베드로후서3:10-13절 개역개정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287일 캘거리하늘가족교회 (gajok.onmam.com) 주일예배(bit.ly/gajok) 설교입니다.

 

정해진 미래 (벧후3:10-13)


인류는 끊임없이 미래를 궁금해 했다.

노스트라다무스 같은 예언자들에게 관심을 갖거나 하다못해 점쟁이를 찾기도 한다.

그래서 새해를 시작하면서 토정비결이나 점을 치기도 하고 심심풀이로 오늘의 운세를 본다.

그런 사이비 말고 미래를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미래학자라고 한다.

미래학(futurology)과거 현재의 상황을 근거로 미래 사회를 추론하고 예측하여 그 모형을 제시하는 학문이다.

과거와 현재에 근거해서 미래를 예측해 본다면, 미래는 더 나아진 세상일까 아니면 나빠진 세상일까?

더군다나 AI 유전공학 등 과학 문명의 발달은 지상에 유토피아가 건설될거라 낙관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 안에 감추인 탐욕과 잔인성, 바이러스와 전염병

무엇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 지구가 병들어가고 있.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는 심각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몇 나라의 문제는 인구 감소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지금 캘거리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남의 이야기라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캐나다는 기후 변화에 그다지 영향이 없다. 폭염이나 홍수나 지진이나 쓰나미나 그런게 없다.

캐나다 인구는 감소할 수가 없다. 전세계의 똑똑한 사람들이 캐나다에 이민 오려고 줄을 서지 않는가?

지구는 망해도 캐나다는 안전할거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말이 되는가? 지구가 망하는데 캐나다가 안전하다고?

부자들은 지하 벙커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놓고 혹은 우주개발로 살길을 도모한다지만 그게 살길인가?

이건 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문제이고 내 문제이다.

정해진 미래, 미래가 정해져 있다는 것은 숙명이나 운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대로 가면, 경로를 바꾸지 않으면 어디에 도착할 것인지가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

 

주의 날이 임한다

지구가 망한다는 것은 헐리웃 영화의 단골 소재이다.

그런데 지구의 멸망이 단순히 영화 속에서만이 아닌 현실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그럼 지구 온난화라든지 인구 감소로 지구가 망하는가?

그건 아니다. 지구는 주님의 다시 오심으로 인류의 역사는 종말을 고한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벧후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주의 날'은 일반적으로 심판과 관련된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도적이 아무런 예고없이 찾아오는 것처럼 예기치 않게 임할 것을 말한다.

본절은 주의 재림에 동반될 우주적 대격변 상태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주의 재림의 날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불타 사라진다는 것이다.

사람도 핵폭탄으로 지구를 망하게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이 그것을 못하시겠는가?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이렇게 될거라는 것이다. 정해진 미래와 같이 이것은 바꿀 수가 없다.

인류는 종말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 종말이 개인적으로는 죽음의 무덤이고 우주적으로는 주님의 재림과 심판이다.

인류 역사를 바꿀 수 없다면 내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꾸어 그 날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질문한다.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1.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거룩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구별과 분리이다.

우리를 선택하셔서 세상으로부터 구별하시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삼으셨다.

그러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무엇인가?

(살전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경건함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godliness godly lives라 번역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 죄로 인해 잃어버린 그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이 경건이고 그 경건한 삶은 세속에 물들지 않고 거룩한 삶이다.

 

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하나님의 날은 앞에서 주의 날이라 하였다. 재림과 심판, 종말을 말한다.

우리가 세상 살면서 바라보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 삶의 초점은, 우리 생활의 목표는 하나님의 날에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는 것이다.

흔들리고 요동치는 세상에서 세상을 보지 않고 주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간절히 사모함으로 나타난다.

주의 날은 내가 바라보고 기다리며 사모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나와는 관계없이 다가오고 있다.

개인이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죽음과 무덤을 향해 달려가듯이, 인류 역사도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어느날 덫에 걸리듯이 갑자기 임하는 죽음준비하고 맞이하는 죽음같을리 없다.

주의 날이 임하기를 사모하며 기다리는 자는 그 날의 주인이 될 것이지만, 갑자기 맞이하는 자는 속수무책의 형벌의 날이 될 것이다.

우리가 그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우리가 살아갈 곳은 이 세상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셋방살이를 전전하다가 내 집을 장만하였다면, 전전긍긍했던 셋방살이에 무슨 미련이 남겠는가?

하루라도 빨리 내 집에 이사가기를 손꼽아 기다리지 않겠는가?

 

마무리

급격한 변화는 단번에 알 수 있지만 서서히 변하는 것은 눈치채지 못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징조와 싸인을 주신다.

(16: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전쟁과 테러, 갈등과 분열, 그리고 기근과 폭염, 지구온난화와 천재지변, 전염병과 정신 질환...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진실을 대하면 지구는 중병을 앓고 신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굳이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지구의 미래를 염려하고 있다.

그런데 성경은 주의 날,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인류 종말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하신다.

그 날에는 하늘과 땅이 불타 사라질 것이다.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아무리 공든 탑을 쌓았어도, 세상에 무엇을 이루었다 해도 함께 불탈 것이다.

그 날이 다가오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는가?

세상에서 구별된 거룩한 사람하나님을 닮아가는 경건한 행실로 살아가야 하겠다.

그리고 주의 날을 바라보며 주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삶을 살라.

우리의 삶은 불타 사라질 세상에서가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을 누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록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늘 백성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사모하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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