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24(주일예배) 한 생명이라도 (창 18:31-32) | 이기형 목사 | 2022-07-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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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18:31-32절 개역개정31.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이십 명으로 말미암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32.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한 생명이라도(창 18:31-32) 원주민선교 파송예배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대화인데, 무슨 흥정을 하는지 같은 이야기를 6번이나 하고 있다. 같은 이야기를 여섯 번이나 하면 짜증날 법도 한데 하나님은 조금도 그렇지 않으시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과 마음을 알면 좋겠다. 1.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키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무서운 분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상을 망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죄다. 본문을 보면 죄악이 가득한 도시인데도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한번 더 기회를 주시는 것을 알 수 있다.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그 죄악을 몰라서 알아보려 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의 심판을 미루고 한 생명이라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만 죄악의 도성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어떠한가? 우리는 죄를 죄로 보지 못하게 하고 죄의 참상을 가리는 죄의 위장술에 속아서는 안된다. 겉으로는 교양과 문화로 그럴듯하게 치장하지만, 죄악이 만연하지 않은가? 가장 심각한 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죄를 죄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돔 사람들도 자기들을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가 죄인이었기 때문이다. 소돔을 심판하려고 찾아온 천사를 강간하려고 찾아온 사람들은 동네 불량배가 아니었다. 소돔 백성들, 무론 노소하고. 노인이든 소년이든 평범한 자들이 찾아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세상은 죄를 죄가 아니라 사소한 문제, 고민, 그리고 개인의 취향 정도로 관대하다. 그것이 죄의 위장술이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말하지만 그 자유는 결국 죄의 구속이 될 것이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과 말씀의 기준이 없기에 그렇다. 그래서 세상은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고 망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본문에는 세상에 심판이 임하는 또 다른 이유를 말씀하고 있다. 2. 의인이 없어 심판이 임합니다. 소돔의 심판을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간구하는데 그렇게 시작된 아브라함의 간구는 앞서 살펴본대로 점점 그 숫자가 내려간다. 45인, 40인, 30인, 20인, 마지막 10인이다. 우리가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때 죄인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가 아니다. 하나님은 의인이 얼마나 있느냐를 찾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10인에서 멈추었지만 아브라함이 1명을 제시해도 하나님은 받아들였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이 죄로 어두워진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세상은 본래 그러하였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어둠이 어두운 까닭은 빛이 없어서이다. 빛이 있으면 어둠은 물러간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하나님의 실망은 세상의 죄 때문이 아니라, 의인들을 찾을 수 없어서이다. 내가 의인으로 살아갈 때 그 성을 살리는 것이다. 여러분이 있는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인된 소금과 빛으로 살아갈 때, 악은 선을 이길 수 없고 죄는 거룩을 이길 수 없다. 세상을 살리는 의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한다. 3. 그렇다면 생명 구원의 열정을 가집시다. 하나님은 한 생명이 돌아오는 것을 그렇게 기뻐하시고, 한 생명을 잃는 것을 그렇게 슬퍼하신다. 그래서 생명 살리는 것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다. (겔 3: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우리가 50명을 구원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45명이라도, 아니 30명이라도... 아니 한 영혼이라도.. 아브라함의 그 중보를 하나님께서 귀찮게 여기신게 아니었다. 오히려 기뻐하시고 받아주셨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아브라함과 같은 간절한 영혼 구원의 열정이 있는가? 캘거리의 11교회 44명이 연합해서 원주민 선교를 떠난다. 지난 목금토, 인텐시브 수련회를 통해 훈련하고, 이제 내일부터 화요일은 식시카 부족에, 그리고 수요일에서 주일까지는 선차일드 부족에 들어가 선교활동을 펼친다. 열흘의 시간을 내고, 350불 회비를 내면서 어쩌면 무모한 일을 벌이고 있다. 터진 독에 물붓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열매도 그렇게 없다.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아무런 열매가 없었는가? 결국 성이 망했으니.. 그러나 거기서 구원얻은 자가 있었다. (창 19:29)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그렇게 간절한 구원의 열정을 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않으신다. 여러분이 품은 저들, 하나님께서 세상을 멸망시키실 때에도 여러분들을 생각하사 저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다. 나로 인해 한 영혼이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가치있고 보람있는 일인가? 마무리 죄악된 세상을 바라보며 한탄하고 방관하고 있을 것만 아니라. 강건너 불구경하고 있을게 아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죄인들이 아니라 의인들에게 있다. 교회와 성도가 어두운 세상의 빛이 되고 썩어가는 세상의 소금되기를 원하셔서 우리를 보내신다. 하나님께서 그 성 식시카와 선차일드를 당신에게 맡기셨는데 당신마저 포기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께서 적어도 캘거리 이 성을 하늘가족교회에 맡기셨는데, 그것을 포기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가 최후의 보루 마지노선이라면, 그 책임을 방치하겠는가? 인내와 지속성을 가지고, 긍휼과 관심으로 영혼 구원의 열정을 가지자. 50명이 아니면 40명이라도, 아니 한 영혼이라도 나를 통해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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