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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7(주일예배) 신앙인의 불신앙 (마21:28-32) 이기형 목사 20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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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21:28-32절 개역개정

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9.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31.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신앙인의 불신앙 (21:28-32)

 ​ 

 

공수표(空手票)라는 말이 있다.

은행에 거래가 전혀 없거나 어떤 이유로 은행 거래가 정지된 사람이 발행한 수표를 이르는 말이다.

이 수표가 몇 억짜리라 해도 종이 쪼가리에 불과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공수표라는 말은 실행되지도 못할 약속이라는 의미로 확대돼 사용되고 있다.

주로 정치인들은 선심성 공수표를 남발하는데, 여러분은 어떤가?

 

큰 아들의 대답과 행동

어떤 포도원 주인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부탁을 한다.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그러자 큰 아들은 망설이거나 주저함 없이 즉각적으로 가겠다고 대답한다.

역시 모범적이고 듬직한 장남이다.

오늘 할 일이 있을텐데도 나름대로 자기 사정도 있을텐데, 그것을 포기하고 가겠다고 대답하는 이 장남은 볼수록 귀한 자식이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다.

대답은 모범생처럼 시원하게 대답했는데, 정작 가지 않은 것이다.

본문은 가겠다고 하고선 왜 무책임하게 가지 않았는지그 이유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다면 아버지에게 양해를 구하든지 했을텐데 그런 것도 없고,

자기의 공수표에 대한 반성이나 참회도 나오지 않는다.

이 큰 아들은 자기의 행동에 그다지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은 아들의 대답과 행동

동일한 요청이 둘째 아들에게도 주어진다.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그런데 이 둘째 아들은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영혼의 소유자였나 보다.

둘째 아들은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싫소이다.

이유도 없다. 내가 싫으면 싫은거지, 구차하게 이유를 달을 필요도 없지 않나.

어쩌면 대단한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도 반전이 일어난다.

대답은 그렇게 했는데, 그 후에 뉘우친 것이다.

그리고선 포도원으로 들어갔다. 굳이 아버지에게 알리지 않고서 이제는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 비유를 말씀하시고서 예수님은 질문을 던진다.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 질문은 어렵지 않다. 둘째 아들이 결국은 포도원에 들어갔으니까 둘째 아들이 정답일 것이다.

이 질문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둘째 아들이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 비유의 말씀을 꺼내신 것일까?

둘째 아들이라는 종교 지도자들의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은 충격적인 말씀을 하신다.

(3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세리와 창녀들이 뭘 했다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가?

세리와 창녀는 이스라엘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는 누구나 인정하는 공인 죄인들이었다.

그런가하면 대제사장이나 장로들은 누구나 인정하는 거룩한 지도층 인사들이 아닌가?

예수님께서 천지차이인 이 둘을 세워두고서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하시니 당사자들 뿐 아니라 듣는 모든 이들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근거는 무엇인가?

(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세례 요한은 죄 때문에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존재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전파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의의 길을 선포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야되신 예수님께 백성들을 인도하는 소리였으며 의 자체이신 예수께로 나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이었다.

요한에 대해 종교 지도자들과 세리 창녀들의 반응은 제각기 달랐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다. 믿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삶을 바꾸었다.

이 차이를 가르는 단어가 뉘우침이다.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뉘우칠 것이 뭐가 있겠는가?

늘 성전 안에 살면서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지낸다고 생각할텐데, 저 더러운 세속에서 죄를 먹고 마시는 자들이나 뉘우치고 회개할 일이지 하나님 말씀하시면 언제든지 가겠나이다라고 대답한 이들이 무슨 뉘우칠 것이 있는가?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가 끝내 뉘우쳐 믿지 않았다고 지적하신다.

 

적용. 누가 첫째 아들이고 누가 둘째 아들인가?

그럼 오늘 우리는 첫째 아들인가, 둘째 아들인가?

여러분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라 할 수 있겠는가? 아님 세리와 창녀들이라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아무래도 대제사장이나 장로들과 동일시 할거 같다.

우리는 성도들이고, 세리나 창녀들처럼 노골적으로 죄를 짓진 않는다.

첫째 아들처럼 주님 말씀하실 때 가겠나이다라고 대답하지 둘째 아들처럼 면전에서 싫소이다라고 거역하진 않는다.

그러나 포도원에 들어가야 할 때는 주저하고 망설이고 머뭇거린다.

그런 열정적인 헌신의 다짐과 서약이 공수표가 될 때가 많이 있다.

그러면서도 헌신의 삶을 살고 있다고 주를 기쁘시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고백을 삶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자기의 지식을 순종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중에 형편 되면, 때가 되면 그때 할거니까 한 줄로 여긴다.

 

세상의 죄인보다 교회안의 죄인이 더욱 위선일 수 있다. 그래서 주님은 성전을 정결하게 하셨다.

세상의 죄인 세리와 창녀들은 드러나지만 교회안의 죄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거룩으로 위장하기에 세상도 자기 스스로도 불순종하는 죄인인줄을 모른다.

자기가 죄인인줄 알면 세리처럼 가슴을 치면서 뉘우치고 회개할텐데,

자기가 모범생인줄 알기에 바리새인처럼 그렇게 교만이 하늘을 찌르면서도 그것을 모른다.

알면 뉘우칠텐데, 뉘우치면 소망이 있는, 그러면 날마다 변화된 역동적인 삶을 살아갈텐데..

사랑하는 하늘가족 여러분,

주님 앞에 우리가 어떠한지를 정직하게 바라보고 뉘우치며 참된 순종으로 나아가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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