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26(주일예배) 목자없는 양 같아서 (마 9:36) | 이기형 목사 | 2022-06-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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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없는 양 같아서(마 9:35-36) 어제는 우리 민족의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한국전쟁 72주년의 날이었다. 전쟁으로 모든 시설이 파괴되고 잿더미가 되었다. 구호물자로 살아야 했던 비참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을 경험한 사람들은 풍요로운 시절을 살면서도 불평하는 오늘날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뭐가 부족하다고 투정인지, 복에 겨워 그런거라고 생각한다. 정말 복에 겨워 그런 것일까? 먹을거 입을거 걱정만 없으면... 사람은 행복할까? 행복해야만 할까? 그렇지 않다. 그저 인생 자체에 모자라고 부족함이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가졌다는 인생도 불평을 늘어놓고 고통을 호소한다. 본문의 표현대로 고생하고 기진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인생이 언제나 불평하진 않는다. 하나님께서 간간히 기쁨과 즐거움이라는 진통제를 주신다. 고통을 잊게 하는데 세상이 주는 쾌락과 향락이라는 마약도 있다. 얼마나 강력한지, 중독성이 있고 내성이 생겨서 더 큰 자극을 요구하는 문제점은 있지만, 그런대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책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세상의 처방은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면 행복하다는 것이고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이 왜 고생하며 기진맥진한가? 그저 인생이니까. 원래부터 그런거라고, 사는게 누구나 다 그런거 아니냐고 대답할지 모르겠다. 근원적인 원인을 모르기에 처방이 임시적이고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돈이 있어도 권력이 있어도 명예가 있어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 인생이 고생하고 기진한 이유를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인생을 비유하자면 맹수의 왕 호랑이도 밀림의 제왕 사자도 아니다. 하늘을 주름잡는 독수리도 아니고, 바다의 포식자 상어도 아니다. 사람은 날카로운 발톱이나 뿔 이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빠른 다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날개를 가진 것도 아니고, 지느러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가장 근접한 동물을 찾자면 양과 같다 하겠다. 양은 인간이 기르는 가축 중에 개 다음으로 가장 오래전부터 사람에게 길들여진 가축이라 한다. 양들은 짧은 다리로 중심을 잘 잡지 못하고 쉽게 넘어지고, 발리 도망가지도 못한다. 방향감각이 없어서 쉽게 길을 잃어버리고 스스로 방어할 능력조차 없다. 게다가 양들은 온순한듯 하지만 상당히 고집이 세고 이기적이어서 제멋대로 움직인다. 이렇듯 연약한 양과 같은 인간이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되었는가? 카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기에 그렇다고 말한다. 팡세에서 파스칼이 말하는 그 생각이라는 것은 자신의 위대함이 아니라 연약함과 죽는다는 한계이다. 우리의 존엄성은 생각에서 나오는데,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인생뿐이라는 자각에서 나온다. 어느 동물이 자기의 정체성을 자각할 수 있는가? 인간만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까닭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특별한 존재이기에 그렇다. 인간만이 가진, 하나님께서 불어 넣어주신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없다는 연약함을 통해 무엇을 바라보게 되는가? 전능자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지혜와 생각은 지능이나 아이큐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렇게 연약하게 지으셨지만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할 수 있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목자가 되어 주시기로 하셨기 때문이다. 양은 지극히 연약한 동물이지만 목자와 함께 있을 때에는 어느 맹수도 그를 해할 수 없고, 안전과 보호, 그리고 공급과 인도하심,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는 삶을 누리게 된다. 그 부족함이 없는 삶을 시편 23편에서 노래하고 있다. 마무리 인생이 고생하고 기진맥진한 이유는 본래 인생이 그래서가 아니다. 목자이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원인이 그러하다면 근본적인 처방도 그것이다. 목자이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다. 양의 행복이 무엇인가? 소의 뿔을 구해서 머리에 달고, 호랑이의 이빨로 바꾸고, 사자의 발톱을 심고, 독수리의 날개를 달면 양이 행복하겠는가? 금 면류관을 쓰고, 호화로운 옷을 입고, 날마다 호위호식한다해서 양이 행복하겠는가? 하루를 호화롭게 살다가 맹수의 밥이 되어 사라지는 것이 행복이겠는가? 목자를 떠난 양의 행복과 안전과 평안은 단순하지만 오로지 목자에게 돌아오는 것 밖에 없다. 우리가 길을 잃은 양이었음을 깨닫고(사 53:5), 목자되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만이 유일한 해답이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한다. (벧전 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왜냐면 우리에게는 여전히 가출 본능이 남아있어 목자의 사랑에 권태를 느끼고 세상을 동경하며 호기심을 느끼고 양무리를 떠나 길을 잃곤 한다. 사랑이 아니라 간섭으로 여기고 일탈을 자유라고 생각하며 목자를 떠날 때가 여전히 많이 있다. 사랑하는 하늘가족 여러분. 여러분은 목자되신 주님과 동행하고 계시는가? 주님의 그 마음으로 주님과 함께 하시는가? 행여 길을 잃어서 방향 감각을 잃고 분별력을 잃고 고통하며 기진맥진해 있다면, 다른 그 무엇도 처방이 될 수 없다. 오직 하나, 목자되신 주님께 돌아오는 것이다. 그 주님의 품 안에서 참다운 평강과 기쁨을 온전히 누리며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G M T Y 음성 기능은 200자로 제한됨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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