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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9(주일예배) 아... 아버지(삼하 18:33) 이기형목사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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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무엘하18:33절 개역개정

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Happy Father's day! 오늘은 아버지의 날이다.

지난날 가부장적 사회에서 아버지의 절대권력은 오늘날 포스트 모던의 탈권위와 1인 가구 사회로 가족이 해체되면서 아버지의 자리매김도 어설프기만 하다.

오늘날 많은 가정에서 아버지는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더욱이 아버지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야 했고, 아버지는 그 마음의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더더욱 외로워진다.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다윗은 한 가정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암논이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범하자 압살롬은 암논을 죽이고 외가에 도망간다.

다윗은 압살롬을 불러오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한 압살롬은 반역을 일으킨다.

다윗은 아들에게 쫓겨나지만 군대를 정비하여 압살롬의 군대에 맞서 전쟁을 벌인다.

압살롬은 머리카락이 상수리 나무에 걸렸고 요압이 그 압살롬을 죽임으로 전쟁이 끝난다.

 

아버지의 마음 - 다윗의 통곡

전쟁에서의 승리와 압살롬의 죽음의 소식을 들은 다윗은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처럼 통곡한다.

압살롬은 다윗의 아들이라고는 하지만, 이 모든 불행의 원인 제공자가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를 배신하고 자기가 왕이 되겠다니, 아버지의 첩을 범하고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군대를 일으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온 이스라엘을 불행으로 빠뜨리고 있다.

이런 패역부도한 자식이 죽었으니 그나마 잘된 일이라고 하겠다.

압살롬은 죽어도 마땅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패역 부도한 자식도 아버지에게는 귀하고 소중한 자식이었다는 것을 다윗이 보여준다.

온 세상이 손가락질하고 매도해도 부모에게는 사랑스러운 자식일 뿐이다.

아무리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도 모두가 무시하는 사람이라해도, 그 부모에게는 정말 생명보다 귀하게 여기는 자녀이기에 함부로 판단하고 비난해서는 안된다.

그 부모에게 뿐인가? 하나님도 그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시기에 그 마음을 우리도 가져야 하겠다.

 

다윗의 사랑 - 예루살렘에서 도피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의 소식을 듣고 급하게 예루살렘을 빠져 도주한다.

얼마든지 압살롬의 반역자들을 막아설 수 있을거 같은데, 다윗은 황급히 도망가기에 바쁘다.

우리는 여기서 아버지 다윗을 본다.

나라의 왕으로서 싸우지도 않고 성을 비워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아버지는 자기를 죽이겠다는 그 자식을 향해 칼을 들이대지 못하고 성을 비워준다.

아버지는 자식을 이길 수 없다. 사랑하기에 져 주는 것이다.

 

다윗의 사랑 -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

이제 다윗의 군대와 압살롬의 군대가 피할 수 없는 결전에 임하게 되었다.

다윗이 죽든지 압살롬이 죽든지 둘 중 하나는 죽어야만 끝나는 전쟁이다.

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지휘관들에게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니,

다윗에게 압살롬은 정치적인 반란자이기보다 자신의 철없는 아들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너그러이, ‘부드럽게 감싸다는 뜻이다(15:11). 죽이지 말고 사로잡으라는 의미이겠다.

 

다윗의 사랑 - 전쟁의 관심은 압살롬의 생사

다윗은 출전하려 했지만 참모들이 만류하여 후방에 남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 전쟁에서 패하면 자기의 생명도 보장받을 수 없다. 자기 목숨이 달린 중요한 전쟁이다.

다윗이 관심은 무엇이었을까? 전령들에게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묻는 것을 보면 젊은 압살롬 자기 아들에게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윗의 사랑 -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다면

이 소식을 들은 다윗 왕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승전의 소식을 듣고도 전혀 기쁨이 없다. 오히려 마음이 심히 아파 위층으로 올라가 운다.

그리고선 통곡을 하며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왕으로서 잘못된 모습이지만, 우리는 아버지로서 다윗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자기를 죽이려는 아들도 그저 살아있기만을 바라고, 그 희망이 사라졌을 때 승리했음에도 실패한 것처럼 더 슬퍼하고 있다.

다윗은 나라의 왕이기 전에 가정의 아버지였다. 압살롬의 정적이 아니라 압살롬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압살롬은 그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을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어떠하든지 그대로 사랑하시고 받아주신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 아버지의 마음을 당신의 자녀를 맡길 아버지들에게 주셨다.

육신 아버지는 연약함이 있어 온전하게 그 사랑을 드러내고 표현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아버지들 안에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아버지의 마음이 있다.

자기를 향해 칼을 겨누는 자식에게 사랑으로 품으려는 아버지 다윗을 보면서, 오늘 우리도 우리의 아버지를 하나님 아버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헤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아버지들에게 - 통곡하지 않으려면

죄 짓지 말라

아버지로서 자식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자식들 간에 강간과 칼부림이 일어나고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려는 일이 왜 일어났는가?

비극의 씨앗은 다윗 자신에게 있었다.

바로 부하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빼앗고 우리아를 죽인 범죄로 인함이었다.

아버지가 믿음으로 서 있지 못할 때, 다윗의 신앙이 깨어졌을 때, 그의 가정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세상에 상상 할 수 없는 패륜과 죄악이 그 아버지의 불신앙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다.

그러기에 압살롬의 죽음은 단순히 아들 압살롬이 죄악뿐 아니라 다윗 자신의 죄에 대한 형벌로 아들 압살롬이 죽은 것으로 생각되기에 다윗은 더욱 통곡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전은 부모의 형질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것을 말한다.

물질적인 유산, 신체적이고 성격과 정신인 유전 뿐 아니라 영적인 유산도 있다.

20:5. 그것들(우상)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우리의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죄를 지어서는 안된다.

죄는 단지 개인뿐 아니라 그의 가정과 공동체에 영향을 끼친다.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다윗의 범죄로 인한 징계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운명적인 것

압살롬의 마음에 무슨 분노가 있길래 아버지를 향해 칼을 겨누는 것일까?

압살롬이 악한 자여서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첫 번째 사건은 압살롬의 누이가 이복 형제 암논에 의해 강간당하고 버려진 사건이다.

두 번째 사건은 압살롬의 귀환에도 다윗이 압살롬을 보지 않은 것이다.

인정받지 못하는 압살롬은 자신의 분노를 반역으로 표출시킨다.

 

다윗과 압살롬, 부자 관계를 한 단어로 설명하자면 애증이 아닐까 싶다. 사랑과 미움이 공존한다.

아버지 다윗이 사랑하는 누이가 당한 수치와 고통으로 인해 함께 분노하는 압살롬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더라면, 암논을 공평하게 치리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 다윗이 도망갔다 돌아온 압살롬의 잘못을 꾸짖고 바로잡아 주었더라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비극은 다윗의 범죄로 인한 필연이 아니라, 다윗의 편애와 우유부단함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다윗은 자녀 문제를 세월이 약이려니 하고 5년이나 방치했다. 묻어두면 안보면 없어질줄 알았는데...

그 시간은 압살롬에게는 칼을 가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아버지 당신의 눈 앞에 안보인다고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압살롬을 용서하지도 벌하지도 못하고 외면하며 그것을 묻어두었는데 세월따라 저절로 해결된게 아니었다. 오히려 반역의 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아버지 다윗은 압살롬의 죽음 후에 내 아들 압살롬을 부르며 오열하지만 이미 늦은거 아닌가?

사랑하는 아버지 여러분.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다윗의 통곡하며 오열하는 모습에서 오늘 우리 시대에도 통곡하는 아버지들을 본다.

어느 아버진들 자식을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게 되버린 현실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른채 가슴 저리고 아픈 마음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렇게 죽은 자식 붙들고 오열하기 전에, 그 비극이 일어나기 전에, 세월에 묻어두지 말고 세상에 방치하지 말고 말씀으로 주의 교양과 훈계로 바로 세워가시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아버지 여러분,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버지 마음을 우리에게 부어 주셨다.

하나님은 아버지인 당신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을 보여 주시기를 기대하신다.

그것은 주의 교양과 훈계이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아버지 사랑으로 양육하시기를.

암논과 압살롬 같은 자녀들이라 할지라도 아버지의 마음과 사랑으로 온전하게 양육해 가시는 아버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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