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012(주) 왜 이 모양일까? (행 26:17-20) 설교 | 이기형 목사 | 2022-06-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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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26:17-20절 개역개정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19.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20.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왜 이 모양일까?(행 26:17-20) 왜 이 모양일까... 아름다움에 대한 탄성이 아니라 실망에서 나오는 탄식이다. 이것밖에 안되나,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건가? 그런 마음의 갈망에서 나온다. 무엇을 보고 그런 탄식을 하시는가? 저는 그리스도인으로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바라보며 그런 탄식을 한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라 하는데 기독교는 세상을 뒤집어 엎었는데, 오늘날은 세상에 의해 뒤집히고 침몰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있다. 왜 복음의 생명력과 역동성을 잃어가고 있는가? 어쩌면 태어나지도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교회 교인의 숫자는 많아도 회심을 경험하고 거듭나지 않았다면 생명력있게 살아가진 못한다. 또 다른 이유로, 거듭나긴 했지만 자기가 누군지 정체성을 모르기 때문이다. 거듭남을 구원의 완성으로 생각하고 천국 티켓은 받아놨으니 세상에서 즐겁게 잘살다가 천국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이 단지 예수를 구주로 입술로 시인하여 세례를 받고,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우리는 구원을 다시 점검해야 하고 회심이 무엇인지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18절 20절 말씀에서 3단계로 나눠 생각할 수 있는데, 1. 세상으로부터 돌아서라. 여기 세상은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죄악으로 가득한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성경은 구원받기 이전의 상태를 어둠이라 표현했다. 어둠 속에 있으면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볼 수 없으니 알 수 없다. 내가 누군지, 왜 사는지, 인생이 무엇인지, 세상이 무엇인지 죄가 무엇인지 전혀 알 수가 없을뿐 아니라 관심조차 없다. 그런데도 어둠에 익숙해서 어둠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질 못한다. 불편하지 않다. 알 수 없으니 어떻게 살아가는가? 세상을 따라간다. 유행을 따르고 세상적인 가치와 풍조를 좇아간다. 우리가 교회를 다녀도,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따라가고 있다면 여전히 어둠 가운데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세상은 사탄의 권세 가운데 놓여 있다고 말한다. 사탄은 우리에게 세상은 살만하다고 청사진을 보여준다. 얼마나 편하고 즐거운 세상인가? 쾌락과 욕망을 마음껏 채울 수 있는 그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돈과 권세만 있으면 못할게 없는 세상이니 그것을 가지기 위해 세상을 한번 살아보라는 것이다. 돈과 권세만 가지면 편안하고 안락한 천국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속이는 것이다. 사탄은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고 마치 선악과처럼 그것을 가지기만 하면 참다운 만족을 누릴거라 속삭이지만 그게 순간적인 만족일 뿐 이내 공허해질 수 밖에 없다. 세상이 겉을 무엇으로 포장하든지, 그 내면은 죄로인한 고통과 처절함이다. 그런데 왜 그것을 보지 못할까?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뭔가를 보려면 눈이 열려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2 하나님께로 돌아가라. 회개나 회심은 단지 반성이나 후회하는 것이 아니다. 회개하라고 하면 뭘 회개해야할지 막연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도덕적이고 양심적으로 살아가는데.. 거짓말하고, 시기하고 탐내는 것.. 이것들도 죄지만, 그건 지엽적인 죄의 열매들이다. 죄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대적하는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것이 죄의 본질이다. 하나님 없이 자기 마음대로, 자기 하고 싶은대로, 욕망에 끌려 살아가는 것이 죄이다. 아무리 고상하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살아간다해도 세상의 주인이시고 내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내맘대로 살아가는 것이 죄이다. 죄를 사소하고 지엽적인 것으로 생각하기에, 여전히 내가 내 인생의 주인 행세를 하면서도 사소한 잘못을 회개했다고 거리낌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수련회 때마다 늘 회개한다고 하고 초청집회 때마다 주님을 영접했다고 하지만, 죄가 뭔지로 모르고 회개하는게 회개일리 없고, 영접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고 영접할 수는 없다. 회개하는 것은 어둠과 사탄의 저주 아래서 신음하고 고통당하는 세상의 참상에 직면하고, 하나님없이 자기중심적으로 살았던 그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됨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이다. 하나님께 돌이키면 죄에 대해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대면할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그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었는가?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십가자는 악세사리도 아니고 단순히 기독교의 상징물도 아니다. 내가 죽을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신 내 무덤이고 대속의 현장이다. 십자가를 거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돌아갈 길이 없다.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께 돌아가는 성도는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았기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간다고 고백하며 그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3. 합당하게 살아가라. 하나님께서 돌아가는 삶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 가는 곳이 아니라 이미 임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는데, 그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해 갈 주체가 교회이다. 18절에 거룩하게 된 무리들 가운데 있어야 하고 거기에서 기업을 얻을 것이라고 하신다. 구원은 개인적으로, 그러나 구원 이후의 삶은 공동체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 종말론적인 공동체, 바로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신 교회이다. 교회를 통해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란다. 마무리 오늘날 기독교와 성도들은 왜 이 모양일까? 그 때 역사하셨던 하나님은 오늘날 주무시고 계셔서 이 모양일까? 하나님의 말씀이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인가? 이제 더 이상 복음은 역사하지 않는가? 하나님은 그 시대에도 초자연적으로 일하신게 아니라 당신의 자녀들을 통해서 역사하셨다. 누구인가? 눈을 열어 세상의 어둠과 비참에 직면하고 그 세상으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돌아서는데 하나님의 진노를 당할 수 밖에 없지만 그 진노를 대신 당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치면서 거기에 내가 죽고 새롭게 거듭나서, 복음에 합당한 삶을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 교회를 통해 이루어가기를 작정하고 결단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통해 오늘날도 여전이 역사하실줄 믿는다. 그렇게 쓰임받는 하나님의 자녀들과 교회가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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