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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5(주일설교) 롯과 룻(잠 4:18-19) 이기형 목사 202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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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잠언4:18-19절 개역개정

18.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

19.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롯과 룻(4:18-19)

 

롯과 룻은 발음이 너무 비슷해서 혼동되기 쉽다.

이 둘은 형제지간도 아니고 전혀 다른 사람들이다.

롯은 남자 룻은 여자, 롯은 창세기에 나오는 히브리 사람이고 룻은 사사시대에 살았던 모압 사람이다.

이처럼 다른 두 사람의 연결 고리를 찾는다면 모압이라 하겠다.

룻은 모압 족속인데, 모압의 조상의 조상바로 롯이다.

롯의 두 딸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동침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들이 모압과 벤암미인데 바로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다.

룻은 롯의 머나먼 후손인 셈이다.

 

이들이 살았던 인샐 그래프를 그려보자면 오늘 잠언의 말씀을 떠올릴 수 있다.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는 사람이 있고,

(4:18)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

지는 석양처럼 점점 어둠이 내려서 걸려 넘어지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19)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한 마디로 평가하자면 용두사미, 시작은 그럴싸했지만 끝은 흐지부지라 하겠고,

다른 한 사람의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시미나창,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한 인생이라 하겠다.

이들의 인생은 인생은 정해진 운명이나 하나님의 예정이 아니라, 어떻게 태어났든지 그것을 역전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선택에 따른 것이었다.

출생(B/birth)과 죽음(D/death) 사이에 있는 인생은 선택(C/choice)이다

롯과 룻은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했길래 엇갈린 역전의 삶의 그래프를 그렸을까?

 

1. 인생의 선택의 기로에서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로서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함께 나온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갈 때 롯도 아브라함과 동행하였다.

롯이 아브라함과 함께 하는 동안 그 역시 하나님의 복을 풍성히 받았다.

동거할 수 없을만큼 풍서안 복을 받았는데, 이로 인해 그들의 목자들 간에 다툼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제안한다. 넓은 세상이 있으니 자기를 떠나가라 것이다.지금까지 롯은 아브라함과 동행했기에 하나님께로부터 아브라함의 복을 함께 받았는데, 이 선택의 기로에서 롯은 어떤 선택을 할까?

 

룻은 모압에서 태어났으니 모압 여인이다.

모압은 태생이 근친상간의 죄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후에도 발람을 통한 저주라든지 바알브올 사건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타락하게 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모압 사람들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게 되었다.

(23: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여호와를 알지 못했고, 인신제사를 드리는 그모스를 섬기는 그모스의 백성이었다(21:29).

그런데 모압 땅에 베들레헴에서 이주해 온 한 가족이 정착한다.

모압 여인 오르바와 룻은 이 가족의 아들 말론과 기룐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다.

모압 여인은 이 가정에서 여호와를 만난다.

그렇지만 결혼 생활 10년만에 가정의 남자들은 죽고 세 과부들만 남자, 시어머니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시어머니가 두 며느리들을 친정으로 돌려 보내서 재혼하여 행복하게 살라고 보내주는 것이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들에게 진심으로 자기를 떠나 돌아가라고 여러번 강권한다. 이런 상황에서 룻은 어떤 선택을 했을?

 

2. 선택과 그 이유

롯은 무엇을 선택할까?

재산에 손해를 보더라도 아브라함의 곁을 지킬까? 아니면 아브라함에게 선택권을 양보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릴까?

롯은 요단 지역을 선택하고 동쪽으로 옮겨 아브라함을 떠나간다.

롯이 선택하기 위해 바라본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도 아브라함의 조언도 아니었다. 그는 물이 넉넉한 요단 지역을 바라본다. 눈에 보이는대로 선택한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이나 믿음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눈 앞에 펼쳐진 당장의 이익을 따라갔던 것이다.

그 끝에 뭐가 있는지 조금 멀리 보았더라면 그 끝에 소돔을 보았더라면 그 방향을 정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롯은 이미 부유한데도, 당장 눈 앞에 있는 부요와 쾌락을 좇았던 룻은 결국 소돔의 백성이 된다.

 

나오미의 강권을 받은 오르바는 자기 어머니와 그 신들에게로 돌아간다.

그러나 룻은 나오미는 붙좇았다.

동서처럼 돌아가라고 강권하지만 룻은 죽어서도 같이 뭍히겠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가 그렇게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를 통해 만난 하나님, 그 하나님을 떠나 그모스에게로 돌아가지 않겠다.

그가 떠나지 않겠다고 고백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다.

자기의 친정에 돌아가면 육신의 편안함이 있고 재혼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 룻은 그런 것에는 아무 미련이 없다. 하나님을 만나 버렸기 때문이다.

비록 나오미와 함께 가는 길이 지금 당장 세상적인 소망은 없을지라도, 자기 부모형제를 떠난다해도, 하나님만은 떠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었다. 그는 나오미를 따라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3. 선택의 결과

롯은 소돔의 백성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소돔 백성들처럼 살지 않으려고 노력 많이 했다.

그런데 진노의 심판으로 망할 성에 살면서 심령이 상하면 뿌리치고 벗어나야 하는거 아닌가?

전쟁 포로가 되어 모든 것을 잃을뻔한 경고를 받았으면서도 롯은 소돔을 떠나지 못한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으로 성이 망할 지경이 되었는데도, 롯은 미련 때문에 미적거리고 성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곧 유황불이 떨어질텐데, 무슨 미련이 있다고 우물쭈물하고 지체하고 있는가?

롯이 소돔에서 믿음 지킨다고 고심했다지만, 알게 모르게 소돔에 스며든 것이다.

결국 천사가 손을 잡아 끌어내었지만,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다.

롯의 딸들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아들을 낳는다.

롯은 지금 어둠속에 있어서 자기에게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

결국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부르심을 받았지만 이방 족속의 아버지가 되고 만다.

 

룻은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을 선택한다.

남들은 황금 들판에서 즐거이 추수하지만 룻은 그 떨어진 이삭을 주워 연명할 뿐이다.

그런데 터 비어 있는거 같지만 그 땅은 여호와께서 돌아보시는 땅이다.

하나님은 룻으로 하여금 보아스를 만나게 하시고 호의를 입게 하신다.

그리고 시어머니 나오미는 보아스로 하여금 자기의 끊어진 기업을 잇도록 둘을 연결지어 준다.

우리는 룻의 결말을 알고 있다.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는다. 그 아들이 이새의 아버지 오벳이다.

이렇게 룻은 모압 여인 그모스의 백성이었지만, 이제는 다윗의 증조 할머니가 된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족보에 그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마무리

아브라함과 함께 부르심을 받았던 롯은 하나님보다 번영과 쾌락을 선택했지만, 그 후손인 룻편안하고 안정된 친정보다는 하나님을 선택하였다.

이러한 선택을 통해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었던 그모스의 딸이었던 룻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동참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롯의 선택은 소돔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고전분투하였지만, 결국은 소돔에 스며들고 패가망신하여 이방 족속의 조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오늘 우리는 롯의 길을 걷고 있는가? 룻의 길을 걷고 있는가?

우리의 선택은 롯의 선택인가? 룻의 선택인가?

정말 가치 있는 삶을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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