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24(주) 당신없는 인생은 빈 그물이오니 (요 21:3-6) | 이기형 목사 | 2022-04-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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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21:3-6절 개역개정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당신 없는 인생은 빈 그물이오니(요 21:3-6) 탄성(彈性, elasticity)은 힘을 더하면 형태가 바뀌지만, 힘을 빼면 원래대로 돌아오는 성질을 말하는데 용수철이나 고무줄 등에서 볼 수 있다. 우리에게도 죄의 탄성이 있는거 같다. 조금만 방심하면 다시금 옛 생활로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뿐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러했다. 1. 일곱 명의 제자들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그 후에’로 시작하는데, 이는 요한복음 20장 부활 사건을 가르킨다. 예수님은 부활후 두 번이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예수님은 세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내 주셨다. 7명의 제자들은 지금 갈릴리 호수에 있다. 이들은 왜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리 바다에 있는 것인가? 유대인들의 핍박을 피해서 변방에 도피했을 수 있고,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만나자 하셨으니 예수님 만나기 위해서일 수 있는데 이유는 나타나있지 않다. 갈릴리에서 제자들은 어떠했는가? 베드로가 말한다. 나는 물고기나 잡으러 가겠다. 베드로는 본래 갈릴리의 어부였다. 고기를 잡으러 가겠다는 말은 본래 생업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이렇듯 부활하신 주님을 두 번이나 만나고서도 어떻게 다시금 옛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예수님 부활하신 것은 부활하신거고, 나는 그와는 상관없이 이제 밥 벌어먹고 살겠다는 것인가? 제자들은 부활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바닷가에 서 계셨지만, 제자들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2. 찾아오신 부활의 주님 제자들은 물고기를 잡기위해 배에 올랐는데, 밤새 그물을 내렸지만 아무 것도 잡지 못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다. 아무리 고기잡는 것을 3년간 쉬었어도, 그래도 몸이 기억을 하는데 이렇게 헛탕칠 수 있을까? 기적같은 일이다. 날이 새어가는데 고기는 잡은 것이 없고 허무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한 사람이 말을 건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제자들이 허무감으로 대답한다. ????없습니다.???? 그가 다시 말을 건넨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그동안 베드로가 그동안 왼편에만 그물을 던졌을리도 없고, 오른편에도 한두번 그물을 던졌겠는가? 다 해본건데 다시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데 제자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오른편에 그물을 던진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물을 들 수 없을만큼 고기가 많이 잡힌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놀라운 이적이 눈 앞에 펼쳐지자 베드로는 3년전 예수를 처음 만났던 일이 떠올랐다. 그는 자기에게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말씀하셨었다. 지금 갈릴리 해변에 서 계셨던 그 낯선 분은 다름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 자신을 사람 낚는 어부로 불러내셨던 그분이었다. 요한은 외쳤다. ????주님이시다???? 베드로는 이 말을 듣고 당장 물로 뛰어내려 헤엄쳐 예수님에게로 달려간다. 주님은 이 사건을 통해 베드로를 다시 부르시고 세워 주신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이제 우리의 현장으로 돌아와서 우리 이야기를 해보자. 여러분은 인생의 바다에서 무엇을 낚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무엇을 잡기 위해 살아가는가? 여러분의 배에는 무엇이 가득히 있는가? 여러분도 예수를 만나기 전이라면 사업이 형통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든지, 좋은 직장에서 안정되고 편안한 삶을 살아간다든지, 자식들이 잘되는 것이라든지, 무병장수를 누리는 것이라든지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었을 것이다. 예수를 만난 후라 할지라도, 지난주가 부활주일이었는데,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서도 그 삶의 자리에 매여 여전히 고기나 잡으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때때로 빈 그물이다. 갈릴리 바다에 물고기가 전혀 없질 않을텐데, 내 그물에는 기적적으로 텅 비어 있을 때가 있다. 무엇 때문일까? 주님은 우리에게 채워 주시기를 원하신다. 채우시기 위해서는 먼저 비워야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으로 채워주실까? 우리가 원하는 성공 번영 축복 명예 권력... 그 허무로 채우실 리가 있겠는가? 세상에 가장 값진 것으로 채워주실 것인데, 그것이 무엇인가? 사람이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 물고기를 많이 잡아 부자되게 해 주시겠다고 하셨던가? 아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것이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베드로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는가? 아니다, 여전히 물고기나 잡으려고 헛수고 하고 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를 부르시고 다시금 사람 낚는 어부로 세우시려는 것이다. 왜인가? 사람이 가장 귀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나의 가치는 세상 온 천하보다 귀하다. 나에게 나만 그런가? 적어도 그 부모에게는 그 자식이 그러하고,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는 어떤 사람도 그러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희생하시기까지 그 인생들을 사랑하셨다. 사람낚는 어부는 특별한 목사나 선교사, 전도자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나는 예외인가? 물론 의사나 인명구조 활동을 하는 특별한 직업이 있다. 그러지만 사람이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데 구명튜브 던져주는 일은 의사 면허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만 하는 일이다. 주님이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고 하실 때, 목사와 선교사로 보내시겠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소명은 직업을 바꾸라는 요청이 아니라, 삶의 목적을 바꾸라는 요청이다. 자세를 바꾸라. 땅끝 선교지에 가서 살라는 것이 아니다. 굳이 거기에 가지 않아도 지금 내 주변에 얼마든지 길을 잃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 않는가? 말라버린 저수지에서 고통받는 그 물고기를 잡아 은혜의 바다에서 살아가도록 옮겨주는 일이 전도이다. 마무리 사랑하시는 하늘가족 여러분. 7명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두번이나 만났으면서도 다시 옛생활로 돌아가 물고기나 잡고 살려고 한다. 우리도 지난주 부활 주일을 지나면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는데,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여러분의 그물질을 무엇을 낚아 올리려는 수고인가? 세상의 물고기인가? 부와 번영과 명예와 권세와 건강.. 그 그물질은 허무할 수 밖에 없다. 주님은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불러 주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 주변에 153마리나 되는 큰 물고기를 몰아 주셨다. 그리고 오른 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에 가장 값진 것이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영혼을 주님께 이끌어 살게 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값지고 보람있는 일이 아닌가? 하늘가족 고깃배에는 만선인가, 아님 텅 비어 있는가? 우리 교회 그물이 빈 그물이라면 주님께서 고기를 몰아주지 않아서일까? 적어도 우리 주변까지는 몰아주지 않으셨던가? 그리고 오른 편에 그물을 던지라 하신다. 그물을 던지는 일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그건 어부의 일이다. 우리의 일이다. 내가 부활의 주님으로 인해 생명을 얻고 살았다면, 나로 인해 살아나는 생명의 역사가 풍성하게 일어나기를 우리를 사람낚는 어부로 세워주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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