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06(주일예배)이상하고 이상적이어도 (행 2:43-47) | 이기형 목사 | 2022-02-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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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2:43-47절 개역개정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2022년 2월 6일 캘거리하늘가족교회(gajok.onmam.com) 주일예배(bit.ly/gajok) 입니다. 이상하고 이상적이어도(행 2:43-47) 우리가 흔히 초대교회라고 부르는 최초의 교회 예루살렘 교회는 정말 놀라운 교회였다. 넘사벽이라는 말이 있는데,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라는 말을 줄여서 그렇게 부른다. 극단적으로 우월해서 그 무엇도 비교의 대상조차 못된다는 것이다. 사차원의 벽이라는 말처럼, 오늘날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낯설고 이상한, 어쩌면 세상 물정을 너무도 모르는 지극히 이상적인 교회라고 할 수도 있을거 같다. 어떤 교회인지 함께 살펴보자. 초대교회에 기사와 표적들이 많이 나타났다.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기사와 표적은 어떤 초자연적인 기적일 수 있겠는데, 어떤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본문에는 기적과도 같은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게 기적이라고 하기에는 평범할 수 있는데, 오늘날 우리의 생각이나 관점에서 본다면 정말 기적같은 일들이다. 1. 다 함께 있어 (공동체)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었다. 이러한 설명은 가정을 버리고 공동 생활을 한게 아니었다. 그런 가시적인 연합이 아닌,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한 몸된 연합이었다. 성경이 얼마나 공동체의 하나됨을 강조하는지 여러분들은 알고 있는가? (엡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고린도교회에는 많은 분파들이 서로 갈등하며 다툼이 있었는데, 바울은 지체의 원리로 한 몸됨을 강조하고 있다. (고전 12: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그리스도인이 되면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사실을 오늘날은 망각하고 있다. 오늘날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도 개인주의였고,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도 개인주의이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도 익명의 그리스도인으로 드러내지 않고 숨은 제자로 살아가려 한다. 개인주의 이기주의로 채워져 있다면 그만큼 초대교회와는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얼마나 함께 있기를 좋아하는지’에 따라 얼마나 초대교회에 가까운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2. 서로 통용하고 필요를 따라 나누며(유무상통 有無相通)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내것 니것이 없이 서로 함께 사용했다는 것인데, 나눠 주었다고 했으니까 공동 소유가 아니라 사유재산도 인정하는 것이다. 이건 무슨 동화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본래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부의 재분배는 희년이었다. 희년의 대속죄일이 되면 종살이 하던 사람들은 자유인으로 돌아갔고, 빚에 몰려 남에게 넘어갔던 땅도 원주인에게 돌아갔다. 피치 못하게 지게 되었던 빚도 다 탕감되었다. 그 희년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결국 그 희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예수님의 취임 설교라 일컬어지는 공생애를 시작하는 첫 설교가 눅 4:18-21절에 나온다. 예수께서 회당에서 이사야의 글을 읽으시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사역은 희년을 성취하시는 사역이셨고, 예수의 복음도 희년의 선포인 것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성취가 여기 예루살렘 교회의 유무상통이었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혹시 복음으로 자유가 아니라 세상의 물질로 인해 자유를 누리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세상을 자유케 하는가? 채워지지 않는 탐욕과 욕심을 위해 쌓아두고 소유할 것이 아니라 나누라는 것이다. 그 나눔의 현장이 초대교회였다. 경계선을 긋고 끼리끼리 살아가라는 오늘 우리 세상에서 교회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도전하고 있다.
3. 날마다 성전과 집에서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 1주일에 한번, 혹은 어쩌다가 한번 에배당에 나가는 서구의 그리스도인들이 볼 땐는 기적같은 일이라 하겠다. 성경은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들의 습관을 따르지 말고 주의 다시 오심이 가까울수록 더욱 모여야 함을 말씀하신다. 이들은 성전에 모이는데서 끝난게 아니었다. 그들은 기쁨이 넘쳐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며 모임을 갖고 음식을 나누면서 교제를 나누었다. 아니다. 떡을 떼는 것은 성찬을 의미하는 것이고 음식을 먹는 것은 애찬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밥 한 번 먹자고 하는데, 그게 밥 못먹어서 밥먹자는 것이 아니잖는가? 한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는 것은 그 사람과 관계하고 받아들이는 소중한 행위이다. 초대교회는 오늘날도 모델이 될 수 있는가? 오늘 우리 시대와는 맞지 않아서 이상하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상적인 것이 아닌가? 시대마다 교회의 모습은 달라졌고 예배의 모습도 달라졌는데, 2천년 전 그 시대에는 가능했을지 몰라도 오늘 우리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는 모델이 아닌가? 적합하지 않으면서도 불가능에 가깝다. 사실 사도행전 4장 이후에 성경에 숱한 교회가 나오지만 이런 교회는 다시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삶은 초대교회 초기에 잠시 나타났다 그 후론 영영 찾아볼 수 없는 이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초대교회는 회복해야 하는 원형과도 같은, 모델처럼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 어쩌면 우리는 완전하게 말씀을 살아내진 못하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말씀을 포기하진 않아야 한다. 오늘날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본문의 말씀을 그대로 실현하기는 어려울지라도, 적어도 본문의 정신대로 살아보려는 몸부림은 귀하지 않을까? 이러한 믿음이 없다면 교회의 세속화를 무기력하게 방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누가 교회를 회복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인 바로 우리들이다. 세상의 모든 교회를 그렇게 만들어갈 수는 없어도, 적어도 우리 하늘가족교회만큼은 그렇게 해봐야 하는거 아닌가? 교회를 어떻게 바꿀 수 없다면, 여러분 개인부터 바꾸어가면 교회도 바뀌지 않을까? 마무리 어떤 교회를 세워갈 것인가? 초대교회는 비록 지속되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오늘 우리 시대와는 맞지않는 이상한 교회가 아니라, 불가능한 이상이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고 찾아가야 하는 방향과도 같다. 오늘날 우리는 사람들의 비난과 지탄을 받고 있는 기독교와 교회를 바꿀 수 없고, 우리가 섬기는 하늘가족교회도 당장 바꿀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부터 시작하는 작은 말씀 실천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일이 될 것이다. 초대교회, 그 영광스러운 이름, 우리를 통해서도 조금이라도 보여줄 수 있기를 축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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