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28(주일예배) 핵심1. 찾는이 중심(눅 19:10) | 이기형 목사 | 2021-11-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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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1. 찾는이 중심(눅 19:10) 사람들의 잠재의식에는 교만한 우월의식이 있고 은연중 차별로 나타난다. 예수께서 막힌 담을 허시고 하나되게 하셨지만 우리 안에도 담을 쌓고 친근한 우리끼리 오순도순 살고싶은 마음이 있다.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죄인과 같지 않음을 감사하면서 그들을 배척하였지만, 주님은 오히려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비방을 들으셨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은 바리새인의 길을 걷는지, 예수를 따르는지 생각해 보자.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의 나라도 그렇게 말씀으로 선포하시면 될 것을 왜 굳이 세상에 찾아오셨을까? (눅 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신다(막 2:17). 예수님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 예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잃어버린 자, 죄인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잃어버린 자를 – 대상이 누구인가? 우리는 참으로 풍요로운 세상을 살아가다보니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을 잘 모른다. 그러나 사람을 잃어버렸다면 일상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간혹 자녀를 잃어버린 부모가 생업을 포기하고 미아 찾기에 올인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이다. 당신의 자녀를 잃은 하늘 아버지의 마음도 그렇다. 그래서 예수님은 작은 자 하나라도 잃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 주님도 잃어버리지 않겠다 하신다. (마 18: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으니 예수님을 비방하였다. (눅 15: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향하여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주신 것이 3가지 비유이다. 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 잃은 아들. 비유에서는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으신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렇게 잃은 자를 찾는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깨지고 망가진 세상에서 하나님 없는 삶의 비참함과 처절함을 잘 모를 수 있다. 하나님이 없으면 못사는가? 사람들 보니까 하나님 대신 섬기는 재물이 하나님보다 멋지게 보일 때도 있다. 죽어 천국에서는 모르겠지만 지금 세상에서는 하나님이 없어도 재물만 있으면 사는데 걱정이 없어 보인다. 그러다보니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부요한 사람들이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부러울 때도 있다. 우리는 정말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잃은 자를 찾으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그 마음을 회복하고, 잃은 자를 찾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2. 찾아 –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주님은 잃어버린 자들이 제 발로 찾아오기를 기다리신게 아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도 찾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혈안이 되어 찾는 까닭은 시급하기 때문이다. 구조에는 골든 타임이 있다. 그 시간을 놓치면 생명을 살릴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서 SOS 구조 신호를 받았는데, ‘죽어가는건 그 쪽 사정이니까’ 내 할 일 다 하고서 시간 남으면 구조하려고 한다면, 비난을 넘어 처벌을 면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전도의 부담이 있다. 이런 메시지가 압박으로 무거운 짐으로 의무감으로 느껴지실지 모르겠다. 전도는 부담이 아니다. 찾는이(Seeker)는 아직 예수를 믿지 않지만 자신과 세상, 그리고 하나님에 대하여 진실한 질문을 던지며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고자 애쓰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니까 적어도 아무나(any one), 불특정 다수(Unknown)는 아니다. 찾는 것은 그와 인격적이고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하나님나라 복음 전도는 철저하게 인격적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하셨다. 화장지주고 경품으로 냉장고 주는 미끼가 아니라 사랑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찾는이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하나님도 모르는데, 예수 십자가도 모르는데, 그들이 사랑을 느낀다면 전적으로 이해관계 수지 타산을 떠난 전도자들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통해서일 것이다. 사랑의 관계가 없어도 성령님이 하시면 얼마든지 전도가 되니까 어떠하든지 그저 전하기만 하면 되는가? 나는 뿌리기만 하면 되고,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가? (고전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씨를 뿌리려면 땅을 고르고 준비를 한 후에 뿌리지 길가든 돌짝이든 아무데나 뿌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관계가 아니면 복음은 전해지지 않는데도 오늘날 전도는 잡상인의 강요처럼 되어 버렸다. 그 귀한 사랑의 선물을 전해주면서도 왜 전도자들이 무례하고 귀찮고 배려도 없고 공중도덕도 없는 몰염치 몰상식한 잡상인으로 오해를 받는가? 전도는 인격적인 관계에서 전해진다. 새생명이 출생하는 것은 기계적인 생산이 아니라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이다. 3. 구원하려 함이니라 – 구원은 하나님께 우리가 잃은 자를 찾는 목적은 가장 귀한 생명을 주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그것을 영원한 생명, 구원이라 부른다. 구원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안타까움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쳐보지만, 사람들은 협박처럼 듣는다. 어떻게 해서든지 설득해 보려고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믿지는셈 치고 한번만 믿어보라고 사정도 해보지만 힘들기만 하고 성공 사례도 별로 없다.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했는데.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는 왜 이렇게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구세주는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시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이다.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지 사람이 생명을 만들 수 없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그 예수님을 분명하고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희미하고 왜곡되게 보여주지 않고, 복음을 뚜렷하게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고후 2:17) 사랑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와 때에 온전한 복음을 전하면 역사가 일어난다. 진리는 스스로 증명하지 우리가 진리를 수호하거나 증명해내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온전하고 선명하게 복음을 전할 책임이 있다. 거기에 하나님꼐서 역사하신다.
마무리 대한민국이 사라진다는 뉴스를 보신 적이 있는가? 2020년 작년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0.84명이었다. 출생아 수 약 27만명, 사망자 수는 약 30만명을 기록했다. 역사상 최초로 데드 크로스가 시작된 것이다. 이대로라면 2700년에 대한민국 인구는 “0‘이 된다고 한다. 세계지도 속 영토는 그대로 남아있겠지만, 더 이상 대한민국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출산율은 한국 사회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교회의 영적 출생인 회심율이 얼마나 될까? 주머니돈이 쌈지돈이라는데, 총동원 전도잔치에 교인들이 서로 품앗이하면서 이 교회 저 교회 등록하고, 작은 교회에서 큰 교회로 수직이동하는거 말고, 한 교회에 어려움이 생겨서 이탈하는 이삭줍기해서 얻은 성장말고.. 찾는이가 찾은이로 예수를 만나 회심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영적 출생이 없다면 기독교회 역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기위해 오셨으니 예수 만나는 회심, 영적 출생이 풍성하게 일어나는 그런 교회와 하늘가족 식구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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