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 홈 >
  • 하늘가족양식 >
  • 설교말씀
설교말씀
211121(주일예배) 의무가 아니라 특권입니다. 이기형 목사 2021-11-21
  • 추천 0
  • 댓글 0
  • 조회 180

http://gajok.onmam.com/bbs/bbsView/5/5996791

[성경본문] 갈라디아서5:1절 개역개정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의무가 아니라 특권입니다(5:1)

 

우리가 국민이 되거나 모임의 회원이 되면 거기에는 의무와 권리가 따른다.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것을 의무라 하고, 그로 인해 누리는 혜택을 권리라 한다.

의무와 권리 차원에서 본다면 먹고 마시고 숨쉬는 것은 의무인가, 권리인가?

먹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권리일 수 있고, 살기 위해서 먹는 사람은 의무일 수 있겠는데,

반드시 해야만 하고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한 권리, 생존권이라 하는데, 헌법에서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권이라 한다.

사랑은 의무인가 권리인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곁에서 보면, 여간 번거롭고 귀찮고 어떤 때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랑을 의무로 생각한다면 그 관계는 오래갈 수 없다.

나에게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은 놀라운 특권 아닌가?

그래서 사랑의 수고나 헌신은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즐겁고 기쁘게 감당한다.

이런 상식적인 이야기는 영적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떡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다.

영적인 호흡인 기도로 해야만 하는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에서도 국민의 의무와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다수 장로교회 헌법에는 교인의 의무에 대해 강조하면서 그것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예배참여, 봉사, 헌금, 훈련, 순종 등의 의무를 말한다.

예배에 참여하지 않으면 교회가 될 수 없고, 헌금하지 않으면 조직 교회가 유지될 수 없고 선한 사업도 불가능하다. 봉사도 힘들지만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전도 역시 의무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성장할 수 없다.

영적 성장을 위해서도 예배 생활과 말씀 묵상과 기도 생활과 형제 사랑과 같은 의무를 감당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저절로 우리를 자라게 하지 않는다.

이러한 경건생활을 의무로 볼 것인가? 권리로 볼 것인가?

의무는 감당하지 못하면 처벌이나 징계가 주어진다.

여러분은 예배하고 헌금하고 봉사하고 전도하고 기도하는가?

안하면 하나님께서 매를 드시고 재앙을 내리시고, 어쩔 수없이 해야만 하는 의무니까 마지못해 감당하는가?

하나님께서 그러실리 없다.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은 너무 쉽고 간단하지 않는가?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우리가 전에는 율법의 종으로 자유가 없었다.

율법의 멍에는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이 아니라 얽어매고 늘 죄의식과 좌책감을 갖게 한다.

우리는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자유를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서 율법의 멍에를 벗겨 주셨다. 자유케 하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다시 종의 멍에 메려고 한다.

구원얻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알게 모르게 율법주의가 남아 있다.

내가 뭔가를 해야만 할거 같은 생각이 든다.

율법주의적인 생각을 가지다보니 예배를 드려야할거 같은 책임감이나 의무감이 생긴다.

예배마다 가자니 번거롭고 안가자니 왠지 불편하고. 그래도 나가줘야 할거 같은 딜레마에 빠진다.

그런데 마음은 없는데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의무감으로 나오는 예배는 주님께서 싫어하신다.

예배는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다.

예배의 영광에는 아무나 올 수 있는게 아니다.

죄인인 인생이 감히 하나님 앞에 어찌 나아갈 수 있겠는가?

지금 이 자리가 초라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대통령도 마음대로 올 수 없는 자리이다.

우리가 감히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대속의 죽으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민 가운데 나를 택하시고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불러 주셨다.

나를 하나님 앞에 인도하시기 위해 생명을 버리신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안다면,

지금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가?

헌금도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다.

여호와, 스스로 계시는 분. 자존하신 분이시기에 누구의 조력이 필요 없으시다.

욕심과 탐욕의 맘몬이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는 고백이 헌금이다.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자선이나 적선이 아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생색내는 것은 마땅치 않다.

이 세상에 썩어질 보화를 하늘에 쌓는 것이 헌금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늘 계좌는 특권이다. 자기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봉사도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 아니면 안되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선심쓰는 것인가?

착각이다. 하나님은 흙으로 아담을 만드셨는데, 돌맹이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일꾼 삼으시는 것은 은혜이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부르심은 특권이 아닌가?

같은 사람에게 감히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 그건 특권이다.

우리 교회는 별로 하라는 것이 없다.

예배에 열심히 나오라든지, 봉사를 하라든지, 헌금을 하라든지, 전도를 하라든지 별로 없다.

눈치껏 알아서 하라는 것인가? 그래도 최소한의 의무는 감당해야 하지 않나 싶을지 모르겠다.

고마운 일이지만, 눈치로 떠밀려서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우리가 하는 일의 동기가 무엇인가?

의무라면 번거롭고 귀찮은 일을 체면과 체통 때문어쩔 수 없이 억지로 해야하고 그러다보니 불평과 원망도 나오고, 본전 생각도 나고 보상심리로 댓가를 바라기도 하고 자랑이 나오고 교만이 시작된다.

그러나 특권이라면, 감격과 감사 기쁨과 황송함과 송구함이 따를 것이다.

우리에게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 더 이상 율법의 요구는 없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다 해결하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예배하고 봉사하고 헌신하며 살아가려는 것은 구원받은 은헤의 감격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고 싶어서이다.

우리가 뭔가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의무가 아니라 나같은 사람에게 맡겨주신 특권이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만이 누릴 수 있다.

사랑이나 관계가 의무라면 불행하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 그것은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다.

감사와 황송한 감격으로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211128(주일예배) 핵심1. 찾는이 중심(눅 19:10) 운영자 2021.11.30 0 259
다음글 211114(주)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눅 4:43-44) 운영자 2021.11.15 0 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