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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31(주일예배) 개혁-여호와께 돌아가자 (애 3:38-41) 이기형 목사 202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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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예레미야애가3:38-41절 개역개정

38. 화와 복이 지존자의 입으로부터 나오지 아니하느냐

39.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40.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41. 우리의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제공: 대한성서공회

 

 

개혁-여호와께 돌아가자(3:38-41)

 

개인에게 생일이 있듯이 교회에도 처음 시작된 생일이 있다.

우리 교회에도 세 번의 생일이 있다.

먼저는 캘거리하늘가족교회는 2015419일이 설립 기념일이다.

그리고 신약의 교회가 탄생하게 된 날오순절에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모인 곳에서 성령의 강림으로 이루어졌다. 부활절 후 50, 7주 후에 오는 절기가 성령강림절이다.

안타깝게도 제국을 정복하고 권력을 거머쥔 교회는 부유함으로 부패하고 타락하여 변질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개혁자들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교회를 개혁하게 하셨다.

개신교를 영어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 하는데 그 의미는 저항하다는 의미이다.

본질을 떠난 비복음적이고 반복음적인 것들에 저항하는 사람들이다.

개혁교회의 모토는 교회는 항상 개혁돼야 한다(Ecclesia semper reformanda)’는 것이다.

어떻게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 Solus Christus(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Soli Deo Gloria)이다.

15171031일을 종교개혁기념일로 정했는데,

오늘 20211031일은 모든 개혁교회의 생일이라 할 수 있는 종교개혁 504주년의 날이다.

 

예레미야 애가는 말 그대로 예레미야의 슬픔의 노래라는 뜻이다.

예루살렘 성이 바벨론에 망하면서 도시는 약탈을 당하고 백성들은 살육을 당하거나 포로로 끌려가는 현장을 바라보면서 예레미야는 슬픔과 탄식이 애가를 부르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로 인해 회복을 바라볼 수 있는 소망과 희망도 들어 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프로테스탄트, 저항자와 개혁자로 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자.

 

1. 두 갈래 길

(38) 화와 복이 지존자의 입으로부터 나오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두가지 길을 주셨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해 주시는 최고의 배려요 선물이다.

오늘날 순간순간 우리 앞에도 두 가지 길이 놓여 있다.

(30: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이건 너무 쉬운 선택이 아닌가?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인가?

당연히 생명과 복을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있다.

먹으면 반드시 죽을 거라고 약속을 맺었는데도 설마 죽을까?’ ‘아니, 더 지혜롭게 될거야하고서 그것을 먹어버린 용감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우리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이다.

그 죄로 인해 약속대로 죽음이 찾아오게 되었다.

오늘날 온갖 불행은 바로 그 죄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아름다운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죄로 인해 망가지고 고장나게 된 것이다.

 

2. 어리석은 선택

(39)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그 죄는 자기의 죄이다.

죄의 메카니즘이 있는데, 죄에 반응하게 하는 것은 자기의 욕심, 정욕이다.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욕심은 무엇이었는가?

금단의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을거라는 말도 안되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이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유토피아를 만들어 살 수 있다고 자신한다.

돈만 가지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이 오늘날 자본주의 가치관이 아닌가?

그러나 그 이면을 보라. 재앙으로 신음하는 지구와 삶의 터전을 보라.

오늘날 일어나는 재앙들은 천재(지변)이 아니라 인류가 무분별한 탐욕이 초래한 인재가 아닌가?

그럼에도 재앙이나 심판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한다.

(19:3)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애시당초 선악과를 만들지 않았거나 자유 의지를 주지 않았으면 아무 문제가 없을텐데 왜 하나님께서 자유를 주셔서 죄를 짓게 만들었느냐는 말도 안되는 원망이다.

고장나서 정상이 아니다. 이 피조 세계도 그렇고,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쓰다보면 언젠가는 다시 좋아지겠지?.. 그럴리 없다. 고치지 않으면 바꾸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

잘못된 길을 가면서도 모든 길은 다 통하니까 다가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하겠지.. 그럴리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3.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자

(40)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잘되면 내탓이고 안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탓을 한다.

나는 문제가 없는데 환경과 다른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개혁이나 변화는 불가능하고,

세상을 바꾼다해도 내가 그대로라면 문제는 여전할 것이다.

변화와 개역을 위해서는 스스로 자기의 행위를 조사하는 것이다.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지 않고 은폐하고 숨겨두면 영원히 감출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가?

(8:17)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 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그렇다면 그렇게 천하에 드러나 부끄러움을 당하기 전에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는 것이다.

스스로 행위를 조사할 때는 용서받고 새로워질 기회가 있다.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새롭게 하신다.

스스로 알을 깨면 병아리가 되지만, 남이 깨주면 계란 프라이가 된다.(J.허슬러)는 말이 있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조사해보자.

그 추악하고 더러운 죄를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가?

 

4. 개혁은 여호와께 돌아가는 것이다.

(40)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내가 죄를 처리할 수 있다면 애사당초 죄를 짓지도 않았을 것이다. 죄에 대해서는 불가항력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한다.

개혁은 내가 뭘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개혁이나 변화는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아버지를 떠난 탕자가 잃었던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것은 마음과 손을 하나님께 드는 것이다.

(41) 우리의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하나님께 두 손을 들고 항복하면, 하나님께 마음과 두 손을 내어 드리면 하나님은 나를 통해 정말 멋진 삶을 만들어 주실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피조물로 빚어지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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