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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19(주일예배) 보다 나은 삶(잠 15:16-7) 이기형 목사 2021-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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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잠언15:16-17절 개역개정

16.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17.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보다 나은 삶(15:16-17)

 

가난한 것과 부요한 것, 어느 쪽이 보다 나은 삶이겠는가?

물어보나마나 부요한 삶이 나은 삶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조건이 붙는다면,

가산이 적어서 채소를 먹으면서 사는데 여호와를 경외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과,

크게 부자가 되어서 살진 소를 잡아 먹으며 잔치하지만 번뇌가 많고 서로 미워하며 살아가는 것.

어느 편을 선택할지 고민하실지 모르겠다.

우리의 로망은 살진소를 먹으면서 여호와를 경외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기를 원한다.

성경의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서도 살아서는 부자처럼 살고 싶고, 죽어서는 나사로처럼 되고 싶은것이 우리 솔직한 마음이 아닌가?

물론 본문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주시는 것은 아니다.

선택이 아니라 우선순위, 무엇이 더 중요하고 먼저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신다.

 

사랑과 살진 소, 무엇이 중요한 우선 가치인가?

(17)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채소를 먹으면서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도 있고, 살진소를 먹으면서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선순위가 살진 소를 먹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살진 소를 못먹고 채소를 먹을지라도 사랑이 우선이다.

사랑을 포기하고 살진 소를 먹을 것이 아니라, 살진 소를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사랑이 먼저라는 것이다.

사랑은 옵션이고 살진 소는 필수가 아니라, 사랑은 필수도 살진 소는 옵션이라는 것이다.

당연하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삶의 선택에 있어서 우리는 동의하지 못할 때가 많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인 자본주의 물질주의 가치관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자본이나 물질이 우리를 대변한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목사도 교회 성도 숫자나 재정 규모가 자신을 대변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오늘날 사랑보다 부요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속물이라고 비난하면서도 그것을 부러워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삶은 현실이니까.

현실에서 보면 살진 소를 먹으면 사랑도 따라온다. 재벌들처럼 돈이 있으면 사랑도 따라오더라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지만, 사람이 어떻게 사랑으로만 살아가나?

하루 이틀도 아닌 평생을 채소만 먹으면서 사랑으로 살아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그런데 살진 소가 있으면 행복이 따라올거라는 것자본주의 물질주의의 유혹이다.

살진 소의 정체는 욕심과 정욕 아닌가? 욕심과 정욕을 채워줄 행복은 어디에도 없다.

살진소를 먹으면 반드시 서로 미워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럴 위험성이 너무 많다.

오늘날 겉으로 보이는 물질 문명에 가치를 두다보니 보이지 않는 정신문명은 소홀해졌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공허한 것이 오늘 우리 시대의 단면 아닌가?

살진 소 안에는 정욕과 욕망이 있을 뿐 사랑과 행복이 없다.

그래서 사랑이 우선이다. 사랑 안에 살진 소는 없을지 몰라도 참된 행복은 누릴 수 있다.

 

여호와 경외와 부요, 무엇이 중요한 우선 가치인가?

(16)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우선 순위는 크게 부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

크게 부요하진 못할지라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여호와 경외를 포기하고 부요를 선택할 것이 아니라, 여호와 경외는 잠시 접어두고 재물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우선 순위는 여호와 경외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부자가 되지 말라는 이야기인가? 아니다. 우선순위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이다.

부요가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 경외가 먼저이다.

부요하면 하나님 경외가 따라오는 것으로 착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그거 아니다.

믿음으로 얻은 부요가 아니면 얼마나 위험한지 성경은 경고한다.

정말 모범적인 부자 청년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거부하고 근심하며 돌아간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10: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재물에는 하나님과 견줄만한 힘이 있기에,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한다.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크게 부하는 것보다는 여호와 경외를 먼저 선택하시고 그것이 기준이 되는 삶을 살아가시는 하나님이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데 가산이 적을 수 있는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호와 경외하면 부자가 되는 것으로 알고, 부자가 되지 못하면 잘못 믿은거라고까지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데도 가난할 수 있는가?

구약 성경에는 부요를 하나님의 주시는 복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 땅에 복을 내리실 것이니 너희 중에는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하신다.

(15: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그런데 우리가 구약 성경을 그림자라 한다. 오실 메시야가 주시는 복에 대해 보여주시는 것인데,

신약 시대에는 그림자가 아니라 그 복이 친히 육신을 입으시고 우리 가운데 오셨다.

그 복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예수보다 더 큰 복이 무엇이 있겠는가?

무엇을 주 예수에 비길 수 있겠는가?

단순히 우리의 육신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고 생명을 주신 사랑이 아닌가?

그 어떤 재물과 풍요라 하더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족하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고 찬양하는 것이다.

무엇이 우리의 보배인가?

(33:6) 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있으면서 유리 구슬을 보배라고 호들갑 떨겠는가?

 

사랑하는 하늘가족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면 족하다는 고백이 여러분에게 가능하시겠는가?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고 찬양하실 수 있겠는가?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 보배로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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