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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29(주일예배) 하나님을 오해하셨습니까?(창 22:1-2) 이기형 목사 2021-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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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22:1-2절 개역개정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을 오해하셨습니까?(22:1-2)

 

흔히 사랑과 질투는 동전의 양면처럼 여겨왔다.

사랑의 하나님께도 질투가 있을까?

그 하나님의 감정 표현에 있어 돋보이는 표현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다.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이런 맥락에서 본문의 말씀을 살펴 본다면 어떨까?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느라 이삭을 주셨는데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는 소홀하고 이삭에게만 빠져 지낸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왠지모를 열등감을 느끼시고, 아브라함의 사랑을 이삭에게 빼앗기는 것이 아닌지 위기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본심을 시험해 봐야겠다고 생각하셨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선택할지, 아니면 이삭을 선택할지 양자 택일의 시험을 낸 것이다.

본문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게 있으면 우상이니까 그것을 치시고 빼앗아 가신다하나님의 질투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건 넌센스이다.

하나님의 질투를 그런 인간적인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것은 잘못된 이해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가 뭔가에 마음을 주고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거두어 가실지 몰라.’ 그런 두려움이 있다.

하나님을 오해하면 하나님과 풍족한 기쁨의 교제는 누릴 수 없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하실 때 아브라함은 어떻게 반응하였는가?

아브라함은 즉시 순종한다.

히브리서에는 약속들을 받았기 때문에 외아들을 드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사실, 이삭은 자기 부부가 생식 능력이 죽은 자 가운데서 태어난 기적의 아들이 아닌가?

그러니 번제로 드리더라도 하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줄 믿었던 것이다.

로마서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그렇기에 아브라함은 사환들에게도 이삭을 번제로 드리고 나서 나 혼자 돌아오리라고 하지 않고 우리가 돌아오리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주목하지만, 사실은 여기에서 돋보이는 것은 이삭의 순종이 아닌가?

(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이 때 이삭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가?

이삭이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갈만하고, 사흘 길을 아버지와 함께 걸어갈 나이니까 사춘기를 지난 그래서 17-8세 혹은 20세 전후로 보기도 한다.

암튼 이삭이 마음만 먹으면 자기보다 100세가 더 많은 노인인 아브라함을 제압할 물리적인 힘은 충분했다.

그런데 이삭도 아브라함처럼 저항하지 않고 기꺼이 자신을 드린다.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 무엇을 보여 주시려는 것일까?

아브라함의 믿음과 이삭의 순종의 위대함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도 이런 것을 요구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과 마음을 보여주시길 원하셨다.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 있었다면, 하나님께도 내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다.

(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이삭을 결박하고 칼을 들어 내리치던 그 아버지의 마음이 바로 하늘 아버지의 마음이셨던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당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야 했던 이유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가 자식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지 증명해 보이라고 이삭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지는지를 보여 주시려고, 이 사건을 연출하신다.

어쩌면 하나님께 뭔가를 드려야하고, 하나님의 눈 밖에 나면 형벌이 임할거 같아 두렵고,

부당하게 생각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빼앗기듯이 드릴 수 밖에 없어서 하나님이 섭섭하게 보이는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셔서 기어코 빼앗아 버리고,

정신차리고 나만 사랑하라고 그렇게 사랑을 강요하시는 것처럼 느껴지시는가?

아니다. 그건 하나님을 오해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셨는데 그러실리 없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그 아픈 마음을 열어 보여주시면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충성심이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 주시기 위해서 이 사건을 보여 주셨다.

이삭의 번제는 단지 그림자가 아니라 실제로 이루어진 사건이 되었다.

이삭이 제단에 올랐던 모리아 그 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오르셨다.

그 사랑이면 족하지 않는가?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 역경의 이유를 다 알지 못해도, 적어도 하나님의 사랑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

그 사랑의 증거가 바로 십자가이다.

아들을 주실만큼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언제나 변함없기에, 우리가 그 사랑안에 거한다면 우린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도 넉넉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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