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05(주) 말씀이 말씀되게 하라(딤후 4:3-4) | 이기형 목사 | 2021-09-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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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디모데후서4:3-4절 개역개정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말씀이 말씀되게 하라(딤후 4:3-4)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다. 개신교회에 있어서 성경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종교개혁자들은 Sola Scriptura 오직 성경만이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표준과 권위라고 주장했다. 성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만일 성도의 삶이 답답하고 메마르고 허덕인다면, 그 삶에는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말씀의 홍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말씀의 홍수 시대에 말씀의 빈곤이라니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속담에 “홍수가 나면 마실 물이 없다”는 말이 있다. 오늘날 성도들의 말씀 지식의 수준은 상당하게 높아져 있다. 고급진 설교를 많이 들어본 탓에 이제는 어지간해서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골라먹을 만큼 먹을 것이 많으면 입맛이 까다로워지고 그래서 더욱 미식가가 되어간다. 하나님의 말씀에도 지식이 높아지면서 부작용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 부작용은 ‘교만’이다. 지식이 높아지면서 다 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는데서 만족하다보니 순종에까진 이르지 못한다. 제법 지식도 있고 경험도 있다고 나름 취향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씀을 취사선택하고 걸러 들으려 한다. 카톨릭 교회가 말씀 위에 교회를 두는 어리석음을 범했다면, 오늘날 성도들은 말씀 위에 자신을 두었다. 그로인해 풍요로운 말씀 홍수 시대를 살면서도 말씀의 기근을 경험하고 있다. 때가 이를건데,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않고, 사욕을 따를 스승을 두고, 허탄한 것을 좇는다고 하신다. 여기 사람은 누구를 가르키는 것일까? 세상 사람들이겠지만, 성도들 가운데도 은근히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1. 바른 교훈을 받지 않는다. 본 회퍼 목사는 값싼 복음을 말했는데, “회개없는 용서, 공동체 훈련도 없는 세례, 죄의 고백도 없는 성찬, 인격적인 참회없는 면죄”가 값싼 은혜이다. 그런 모조품 가짜가 나오는 까닭은 무엇인가? 쉽고 값싸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희생과 헌신이라는 복음의 댓가를 치루지 않고서 영광과 축복이라는 열매는 누리기 원할 때 가짜가 나온다. 복음의 출발은 자기 부인인데,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가 영광을 얻으려 할 때 ‘내가’ 복음이 나온다. 말씀이 기준이면 말씀 앞에 복종해야 하는데, 자기가 기준이니 말씀을 복종시켜 이용하려 한다. 사실 입 바른 소리를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바른 소리는 나의 자존심을 건들고 나를 깎아 바르게 만들어가려 하기 때문이다. 바른 것은 알겠는데 입에 쓰기 때문에 삼키지 못하고 뱉어내지 않는가. 그래서 여기 바른 교훈을 ‘받는다’는 말씀의 원어는 참다, 견디다는 의미이다. 바른 말씀을 받는다는 것은 바른 말씀을 참고 견디는 것을 의미한다. 내 기대에 맞지않고, 내 생각과 다르다 할지라도 바른 복음이라면 견뎌내는 것이다. 내가 나를 바르게 만들어갈 수는 없다. 바르게 만들어지려면 바른 복음, 하나님의 말씀에 나를 맡겨야 한다. 말씀에 의해 빚어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2. 자기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둔다. 사람들의 귀가 가렵다. 무엇을 그렇게 긁어주길 기대할까? 여기 말씀에는 자기 사욕이라 한다. 자기 사욕을 긁어주길 원한다. 그래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스승을 많이 둔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우리의 욕심을 채워주는 솔깃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 확증편향이라 하는데,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듣고 싶은대로 듣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허울에 나의 욕심을 투영하고 그것을 스승으로 삼아 살아가면 결국 나의 욕심만 이루게 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지만, 결국은 자기의 욕망을 이루어가는 삶은 허무로 끝날 것이다. 내가 좇아가는 스승이 나의 욕망의 다른 얼굴은 아닌지 돌아보고,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스승되어 바른 길을 걸어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3. 결국 진리에 귀를 막고 허탄한 것을 따라간다. 진리의 말씀에 귀가 막히고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비극과 불행이 없다. 예배 시간에 말씀이 전혀 들리지 않는 것처럼 고통이 없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 가운데 길가에 뿌려진 씨앗은 새들이 먹어 버린다. 예수님의 해석은 무엇인가? 듣긴 하는데, 한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려버린다. 우이독경, 소 귀에 경 읽기라는 속담과 같다. 길가와 같이 흙이 없기 때문이다. 말씀을 품는 마음과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진리에 귀를 막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뭣이 중한지를 분별할 수 없게 된다. 무서운 경고인데, 허탄한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허무한 것을 목숨걸고 지키려 한다. 자기의 생각대로 판단하고 문을 닫으면 그 이상의 은혜는 없다.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라는 것은 그렇게 겸손하게 배우라는 의미일 것이다. 진리의 말씀에 귀를 열고 마음을 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오늘날 말씀의 기갈인 시대이다.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두고, 진리에서 돌이켰기 때문이라 하신다. 사랑하는 하늘가족 여러분, 내가 바르게 만들어지려면 내가 아닌 바른 복음, 하나님의 말씀에 나를 맡겨야 한다. 말씀에 의해 빚어지라. 나의 욕망을 스승으로 삼지말고 하나님의 말씀이 참된 스승이 되시기를 바란다. 말씀과 진리에 귀를 막고 마음을 막지말고, 어떻게 해서든지 말씀 붙들고 씨름하며 말씀대로 살아내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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