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27(주) 능력의 역설 (고후 12:9-10) | 이기형목사 | 2021-06-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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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린도후서12:9-10절 개역개정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능력의 역설(고후 12:9-10)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능력주의 사회이다. 능력이 있으면 인정과 대우받고 살아가지만, 능력이 없으면 곤고하게 살 수 밖에 없다. 여러분은 능력자인가? 저는 목사로서 말씀의 능력이 있어 예배 시간마다 감동을 끼치든지,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어 회중을 사로잡든지, 놀라운 은사가 있어 병을 고치든지 그랬음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능력이 없어서 때로 주눅이 든다. 능력이란 일을 감당해 낼 수 있는 힘이다. 그 힘을 얻을 수 있는 비결은 믿음이라 생각한다. 크고 강한 믿음을 가지면 크고 강한 능력을 받아서 큰 일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능력 받아서 주의 일을 감당하자!!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힘이 능력이 아니라 약함이 능력이라 하신다. 약함이 능력이라니, 이해가 안되지만 그 말씀을 하신 분이 바울같은 능력자라면 아마 바울이 겸손하게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실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바울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능력을 배설물로 여기고 내어버렸다고 말한다. 그는 자기의 배경이나 학벌을 자랑한 적이 없다. 그의 자랑은 약함이었다. 그의 능력은 약함에서 나온다고 고백한다. (고후 12: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약점은 고치든지 감추든지 하지 자랑하진 않는다. 그의 약점은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라고 말씀한다. 학자들은 안질이든지 간질(뇌전증)이라 이해한다. 그의 몸에 사탄의 가시가 있으니 얼마나 고통이겠는가? 그래서 바울은 그것이 떠나기를 위해 기도했는데, 하나님의 응답은 (고후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육체의 가시를 제하시고 더욱 강한 건강과 능력을 주셔서 큰 일을 하도록 하신 것이 아니었다. 1) 은혜가 족하도다 병을 고쳐 주셔야 은혜이지, 그대로 두고서 무슨 은혜인가? 건강을 주시지 않고 육체의 약함이 있음에도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신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무엇인가? 우리가 감당할 능력이 없어서 고난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만, 주님의 응답은 이길 수 있는 더 큰 은혜를 부어주시겠다 하신다. 우리는 환경을 바꿔주시기를 간구하지만 주님은 족한 은혜를 주셔서 나를 바꾸시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세상보다 우리에게 더욱 큰 관심과 기대를 갖고 계시기에 그러신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2)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우리는 능력을 구하는데, 나에게 주셔서 나의 능력이 되기를 구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내 능력)으로 역사하시기를 원하신다. 나를 통해서 능력이 나타나기를 원하면서도 그 능력을 통해 내가 드러나기를 은근 기대한다. 내가 인정받고 칭찬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우리는 내가 더 많이 가져야, 더욱 크고 강해져야, 더 부유해지고, 더 능력이 있어야만, 한마디로 내가 잘되고 성공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강한 믿음, 그 강한 믿음마저 나의 능력이 되어 버린다. 내가 강해야 하나님을 강하게 붙들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능력이라 말하면서도 자기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렇지만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나의 확신이나 고집 혹은 신념이 아니다. 내가 뭘 강하게 붙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내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인정하고 신뢰하며 수용하는 것이다. 믿음은 철저하게 나를 부인하는 것이고 숨기는 것이고 감추는 것이다. 주님 덕분에 나도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이 나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오직 주님만이 드러나려면 나는 약해져야 한다. 나를 보잘 것이 없어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은 내가 강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약할 때 온전해진다. 우리가 약해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나의 약점을 바꾸어 강하게 만드셔서 크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약해도 있는 그대로 나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주시기 때문이다. 내가 강함으로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함으로 이겨낸다는 것이다. 3)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해도 기뻐할 수 있는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위하기 때문이다. (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만약에 자기의 영광, 곧 내가 드러나고 높임을 받고 인정을 얻으려면 약함은 고쳐지거나 제거되어야 하고 강함으로 바뀌어야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자기가 강해지려고 한다. 그로 인해 자기는 높아지지만 그리스도는 감추어졌다. 복음의 능력이라면서도 자기의 능력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주인되신 그리스도가 영광 받도록 철저하게 그에게 복종하는 삶을 살았다.
세상은 능력자를 찾고 그를 통해 역사를 이루어 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천하고 멸시받고 없는 자들을 택하시고 그들을 통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 성경에 주님께 쓰임받는 사람들은 대단한 능력자가 아니라 순종자였다. 약하다고 작다고 낙심치 말라. 내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데도 왜 나를 강하게 하지 않으시고 부요하게 하지 않으시고, 능력주지 않으시고 여전히 약함 가운데 가난 가운데 무능력 가운데 두시는지 속상하고 부끄럽고 위축된다. 그러나 내가 반드시 강해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에, 나를 강하게 하시고야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기에, 약함 가운데서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약함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역사를 온전하게 이루어 가실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약함도 기뻐하고 오히려 자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믿음의 사람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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