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06(주) 내 생각을 넘어서라 (왕하 5:11-14) | 이기형목사 | 2021-06-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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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열왕기하5:11-14절 개역개정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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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을 넘어서라 (왕하 5:11-14) 아람왕의 군대장관 나아만. 군대 장관에 올랐으면 그는 성공한 인생이다. 그는 권력 뿐 아니라 그는 명예와 존경도 얻었다. 그가 존경받는 이유는 나라를 구한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는데 그는 나병환자였다. 나라는 구했지만 정작 ‘나’는 구하지 못한 무능력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아만의 위대함은 작은 소녀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다는 점이다. 왕의 친서와 예물, 병거와 말들을 동원하여 엘리사에게 찾아오는 것을 보면 나아만의 믿음을 볼 수 있다. 드디어 나아만은 엘리사의 집 앞에서 치료의 메시지를 받는다. 너무나 쉽고 단순한, 요단강에 몸을 씻으라는 것이다. 이제 그렇게 하기만 하면 병을 나을 것인데, 나아만은 거기에서 분노하며 돌아선다. 무엇이 나아만으로 돌이키게 하였는가? 11절에서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자기의 생각이 자기를 가로막고 있다.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무엇이 나를 가로막아 성장과 치유 회복과 은혜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가? 나의 생각이다. 그러면 나아만의 생각은 무엇인가?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래도 왕의 친서를 가져온 군대장관인데 고작 하인을 보내다니. 급이 맞지 않는 것이다. 아예 만나주지도 않는 것은 자기를 무시하는 처사인 것이다. 나아만은 눈에 보이는 주술적인 치료 의식을 기대하였다. 최소한 종교적인 형식은 갖추고, 감각적이고 실제적인 행동이 있어야지 말 한마디로 되는 것이라면 굳이 멀리 이스라엘까지 찾아올 이유가 없는거 아닌가? 나아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얼마든지 동의할 수 있다. 그럼 우리가 동의를 한다해서 나아만의 병이 고쳐지는가? 나아만와 발르발 강에서 씻으면 병이 고쳐지는가? 아무리 합리적이든, 이유가 되든, 많은 사람이 동의하든, 그 방법으론 병을 고칠 수 없다. 그렇다면 나아만은 자기 생각과 주장은 지키고 이루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병은 고침받지 못할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고 합리적이라해도 내 생각으로는 고침받을 수 없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자기 중심적인 생각, 이미 자기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서 멀리 이스라엘까지 찾아와 놓고선 그 자리에서도 자기 생각을 고집하고 있다. 이게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지금 나아만은 엘리사를 찾아온 목적을 망각하고 있다.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인사나 받으려고 찾아온게 아니잖는가? 자존심에 상처가 나면 더 중요한게 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깡그리 잃어버린다. 자존감이 주 안에서 회복되지 않으면 조그만 상처에도 흔들리고 오로지 그것을 지키려고 모든 것을 포기한다. 나아만은 자기 자존심을 위해 치료도 포기하려 하지 않는가? 병원을 찾아가면 아무리 대통령이라해도 환자이다. 그럼 의사의 지시에 순종해야지, 자기가 대통령이라고 의사에게 명령하고 자기 생각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가? 그건 착각이다. 누구라도 내 생각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 한계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예수를 따르는 첫 걸음은 자기 부인이다.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요단강에 내려가 씻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뭐가 어렵다고... 내 생각, 자존심만 내려 놓으면 너무 쉬운데... 자존심만 내려 놓으면 보이는 것이 있다. 나아만의 종들이 나선다. “큰 일을 행하라 했어도 고침받기 위해서라면 뭐라도 행하였을텐데, 고작 씻어 깨끗하게 하는 일이 뭐가 어렵습니까?” 나아만이 분노한 것은 그 일이 어렵고 힘들어 못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종들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자존심으로 살아온 나아만에게는 어려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살기 위해서 고침받기 위해서 내려놓아야 한다면 내려놓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이스라엘의 작은 소녀의 말을 듣고 길을 나선 나아만은 이번에도 종들의 말을 듣고 다시 돌이킨다. 해답과 회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손바닥 뒤집듯 내 생각 뒤집고 하나님께 순종하면 거기에 해답이 있다. 그 해답은 어려운게 아니기에 남들은 다 안다. 나아만의 종들도 알고 있지 않는가? 여러분도 남들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고 있기에 남들에게 조언하지 않는가? 자기만 모를 뿐이다. 자존심에 가리고 내 생각에 갇혀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할 뿐이다. 그런데 사실은 자기도 알고 있다. 몰라서가 아니라 그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할 뿐이다. 내려놓지 못하고 자존심 붙들고 있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다. 나아만이 자기의 생각을 넘어설 때의 회복은 단지 육체적인 회복뿐이 아니었다. 요단강에서 고침받고 하나님의 사람에게 도로 찾아와 그가 경험한 하나님을 간증한다. 하나님께서 나아만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간단하다. 하나님 앞에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주인으로 설 것인지, 순종하는 종으로 설 것인지. 장관으로 명령하면서 살 것인지, 종으로 명령에 순종하며 살 것인지. 장관으로 삶은 속수무책이었지만, 종으로 순종할 때 육신의 회복 뿐 아니라 영적인 회복까지 누리게 되었다.‘내 생각’이라는 그 한계와 벽에 좌절하지 말고, 내 생각은 깨끗이 포기하고 그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주시는 참된 영육간 회복과 복을 누리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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