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30(주) 마라를 엘림으로 치료하시는 여호와 (출 15:22-27) | 이기형목사 | 2021-05-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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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출애굽기15:22-27절 개역개정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마라를 엘림으로 치료하시는 여호와(출 15:22-27)
하는 일마다 형통한 사람도 있지만, 하는 일마다 안되는 사람도 있다. ‘나를 나오미라 하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고 항변한 나오미의 인생은 쓰디쓴 고통의 연속이었다. 나오미뿐 아니라 어쩌면 모든 인생이 고난 가운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홍해를 건너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격적으로 수르 광야 길로 접어든다. 구원받은 감격과 기쁨은 채 사흘도 되기 전에 물이 없어 원망과 불평으로 바뀌었다. 마침내 물가에 도달하지만 이번에는 물이 써서 마실 수 없다. 그림의 떡이다. 백성들은 폭발하지만 모세는 부르짖어 기도한다. 하나님은 한 나무를 통해 물을 달게 하실뿐 아니라 귀한 약속까지 주신다. 법도와 율례를 귀담아 듣고 순종하면 애굽에 내린 질병을 하나도 내리지 않을 것이며, 또한 치료하는 여호와로 치료하시겠다는 것이다. 그 풍요로움이 어떤 것인지를 엘림 오아시스로 인도하여 체험하게 하신다. 우리의 삶에도 광야의 마라가 있다. 아예 없거나 모자라거나 불완전해서 쓴 고통을 당한다. 예수 믿으면 잘된다는데, 불신자들보다 더 질병이나 궁핍한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 믿음이 없어서일까? 잘못 믿어서일까?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광야는 물이 없고 길이 없고 풍요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그 사람도 사실 광야에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고통을 경험한다. 하나님은 광야의 환경을 풍요로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헤쳐갈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그것은 무엇인가? 백성들은 그것을 몰라서 원망하였지만, 모세는 그것을 알고 부르짖어 기도한다.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시고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신다. 무엇이 쓴물을 단물로 바꾸었는가? 나무 쪼가리인가? 아니다. 믿음으로 순종할 때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인 법도와 율례에 대한 신뢰와 순종의 반응이다. 그렇게 순종하는 자에게는 애굽 사람에게 내린 질병중 하나도 내리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치료하는 여호와라 하신다. 이 말씀이 하나님을 믿으면 무슨 질병이든지 고쳐 주신다는 약속인가? 그런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질병이 아니라 애굽 사람에게 내린 질병이다. 애굽 사람에게 내린 질병은 불신앙과 패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요 형벌이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더 이상 형벌이 아니라는 것이다. 형벌이 아니라면, 때로 징계하시더라도 그것은 사랑의 매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치료는 피상적이고 일시적인 치료가 아니라 근본적인 치료이다. 잡초는 뿌리채 뽑지 않으면 금방 다시 살아난다. 겉으로 드러난 질병을 고치시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치료, 곧 죄로 인해 깨지고 망가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치료하신다. 하나님의 치료는 우리의 상한 영혼을 고치신다. 그 영혼을 강건하게 하시면 그의 삶의 상황과 형편은 더 이상 문제되지 않는다. 건강해져서 자생력과 면역력이 생기면 스스로 이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의 질병과 연약을 고쳐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육체의 질고를 고쳐주실 수 있음에도 고치시지 않는다면 바울에게 말씀하신대로 그 이유와 목적이 있어서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더욱 놀랍게 역사하실 것이기에, 그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본문에서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하나님은 엘림으로 인도하시지만, 엘림에 정착하게 하시진 않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 은혜의 풍성함은 단지 쓴물을 단물로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물샘이 열두개나 있고 시원한 종려나무 그늘이 70그루나 있는 엘림이라는 오아시스로 인도해 주신다. 그럼 엘림이 이스라엘의 최종 목적지인가? 그럼 거기에 정착하고 살아가는 것이 그들의 행복인가? 오아시스는 잠시 머무는 곳이고 일시적인 회복의 장소이지 정착지는 아니다. 앞길의 광야 길이 힘들고 어려운데 오아시스가 물과 그늘이 있다해서 오아시스에 머무는 바보는 없다. 엘림에서 아무리 배부르게 마셨다해도 다시금 광야길을 걸을 때 목마름은 찾아오고 궁핍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근본적으로 나그네 인생길의 갈증을 해갈할 수 있는 것은 일시적인 오아시스의 샘물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진리의 생수이다. 예수 그리스도, 그가 우리 인생의 오아시스이며 그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가 된다. 비록 육신의 질고와 가난의 고통가운데 살아가지만 우리에게 이 땅에서 살아갈 힘을 주시고 마지막 그 날에 우리를 안아주실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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