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04(주) 예수 부활하셨기에 (행 2:32) | 이기형목사 | 2021-04-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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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고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부활은 오늘 우리 신앙과 삶에서 어떤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여러분에게 신앙의 핵심은 무엇인가? 기독교의 심볼은 십자가이다.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의 표현인 십자가야말로 은혜의 절정이요 핵심 아니겠는가? 그래서 사순절 40일을 십자가를 묵상하며 특히 고난주간에는 더욱 십자가를 바라본다. 그런가하면 기독교 최대 축제는 성탄절이 아닌가 싶다.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찾아오신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을 축하하고 맞이하기 위해 한달전부터 대림절이라는 절기로 준비한다. 그런 반면 부활절은 단지 주일 예배 한번으로 끝나는 행사로 그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이 성탄과 고난에서 멈추면, 십자가에서 멈추면 믿음은 헛것이라고 바울은 지적한다. (고전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예수님은 우리의 칭의를 위해 부활하셨다. (롬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부활이야말로 우리 신앙의 핵심이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사도행전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되라 주신 사명을 이루어간 제자들의 삶의 기록이다. 그들은 무엇을 전했고 어떤 일에 증인이 되었는가?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들의 모든 설교에서는 하나님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에서 살리셨다는 부활이 중심 위치를 차지한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본문이다. (행 2: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사도행전 3장의 솔로몬 행각에 모인 무리들에게 전한 것도 부활이었다. (행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사도행전 4장에 공회의 협박에도 사도들은 담대하게 부활을 전했다. (행 4: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행 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사도행전 5장에서도 공회 앞에서 백성들에게 선포한 복음도 예수 부활이다. (행 5: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이 하나님이 살리시고 베드로는 고넬료의 초청을 받아서 전한 말씀 역시 예수의 부활이었다. (행 10:40)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사도들은 부활의 증인으로 그 사명을 감당하였던 것이다. 증인이란 특정한 사건을 두 눈으로 목격했기에 진실성을 입증할 수 있는 사람이다. 복음서의 제자들은 예수를 팔고 부인하고 도망치고 숨은 한심한 사람들이었지만,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이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부활의 사람들이 되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그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도 사망을 향해 큰 소리 칠 수 있었던 것이다. (고전 15: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복음의 가장 담대한 선포는 부활이다. 죽음을 이기는 능력도 부활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도 이 부활의 능력이 있는가? 우리도 과연 예수 부활의 증인인가? 십자가에서 머물지 않고 빈 무덤에까지 나아가 담대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가? 어쩌면 오늘 우리의 믿음은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부활에 큰 기대와 소망을 갖지 않을 수도 있다. 부활은 죽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인데 죽기를 거부하고 살려하니 부활의 기쁨을 누리지 못할 수 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도 놓쳐서는 안되는 그 절대가치 부활의 믿음을 다시금 붙드는 부활주일이 되면 좋겠다. 예수 부활은 2천년 전의 기적적인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예수가 부활하고 그 부활 생명이 내 안에도 있어서 이제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부활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예수 부활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지난 2010년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를 만든 구수환 감독은 10년이 지난 작년에 ‘부활’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 개봉했었다. 고 이태석 신부가 선종하고 그 후 10년 동안 어떻게 변했는지를 추적한다. 그의 제자들 70명중에 57명이 의사거나 의대생이 되어 이태석의 길을 따르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부활의 참된의미가 아니겠냐고 불교신자인 구감독은 역설한다. 이태석이 그들 안에 살아난 것처럼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여 예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부활은 단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부활주일은 그저 지나가는 절기가 아니라, 부활의 생명과 능력으로 충만한 귀하고 복되고 절기가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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