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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8(주) 성격, 성질인가 성품인가(히 12:2) 이기형목사 2021-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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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히브리서12:2절 개역개정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격, 성질인가 성품인가(12:2)

 

여러분은 성격, 성질, 성품의 차이를 아시는가?

모든 인간 관계의 근원으로 작동하는 것은 보편적으로 성격이다. 성격검사를 통해 자기를 알려고 한다.

성격이라 함은 성의 격이라 볼 수 있는데, 성의 격이 높은 사람도 있고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

성격에 품격이 있으면 성품이라 하고, 품격을 잃어버리면 성질이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심성이 올곧다거나 온화하고 자상한 사람에게 성품이 좋다고 주로 긍정적으로 쓰이지, 성품이 악하다든지 성품이 더럽다든지 그렇게는 잘 쓰지 않는다.

성격이 좋다고도 하지만, 성격에 문제가 있다든지 성격에 모났다든지 그런 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성격이 안좋은 사람에게는 성질을 부린다거나 성질머리가 나쁘다거나 성깔있다 그렇게 표현하지, 성품을 부린다고 하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성품이라 하지만 동물들에게 성격 혹은 보편적으로는 성질이라고 한다.

본능대로 움직이는 것은 성질이지만, 성질이 품격을 갖추면 성격이 되기도 성품이 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성격이 성화되면 성품이라고 하고 성격이 타락하면 성질이라고 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물론 국문법적으로 정확한 이야기는 아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성격이 성질이 아니라 성품이 되기를, 우리가 사순절의 마지막 한 주간 고난주간을 시작하면서 죽어야 할 우리의 본성은 성질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려 한다.

 

성질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성질의 동사형인 성질부리다, 성질내다를 국어사전에서 찾으면 분노나 불만 따위를 이기지 못하고 몹시 화를 내다고 나온다.

성질의 표현은 소극적으로는 짜증이나 신경질, 좀 더 적극적으로는 분노나 혈기로 나타난다.

성질을 낸다는 것은 성질의 자를 빼고 성낸다고 한다.

자기도 자기를 어쩔 수 없을 때, 조절(컨트롤)이 안될 때 성질을 부린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기도 한데, 좀 더 살펴보면 우리는 상대에 따라 조절을 하기도 하고 조절을 하지 않기도 한다.

아무리 성질이 올라와도 힘을 가진 사람 앞에서는 자기가 참고 말지 어지간해서는 성을 내지 않는다.

우리의 성질은 교묘해서 성질을 부려도 큰 손해가 없다고 판단될 때 성질을 부리곤 한다. 약강강약이다.

그래서 성경은 성내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1: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잘 듣지 않고 이해하지 않고 자기 안에 생각만 말하려 하기에 성이난다. 성이 나면 말을 줄이는 것도 지혜일 수 있다. 그 상황이나 환경이 분노를 유발하기도 하기에, 나중에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닐 때가 있다.

인류의 첫 살인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도 분노 때문이 아닌가?

 

신구약을 대표하는 두 사람 모세와 예수님을 통해 성내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모세는 자기 동족을 학대하는 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갔는데, 사람을 때려 죽인걸 보면 모세의 성질도 대단했던거 같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 40년동안 다듬어진다.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모세만큼은 들어가야 하는거 아닌가?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2가지이다.

첫 번째는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정탐꾼 사건이다.

정탐꾼들의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은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였고, 하나님은 진노하사 20세 이상 계수된 자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누구도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에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모세도 포함되어서 패역한 백성의 불신앙으로 인해 못들어간 것이다.

(1:37)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도 진노하사 이르시되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

두 번째 이유는 좀 더 개인적이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끌 때 그렇게 드러난 과오가 없다. 굳이 찾자면 민수기 20장 므리바 사건이다

물로인해 백성과 다툴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물을 내어 주신다.

그 과정에서 원망과 불평은 백성들이 늘어놓았는데, 하나님은 애꿎은 모세와 아론에게 화풀이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20: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지시는 단순하다. 지팡이로 회중을 모으고 그들 앞에서 반석에 명령하여 물을 내어 마시게 하라는 것이다. 모세는 그렇게 하였는가?

(20:10-11)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모세는 백성을 향해 극도의 혈기섞인 분노를 나타내고 있다.

모세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에 불과한데 마치 자기들이 물을 내는 것처럼 우리가 반석에서 물을 내주랴?”고 소리친.

그러면서 마치 자기의 능력인양 지팡이를 들어 반석을 두 번 친다. 자기 손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대언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드러나도록 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주권이 나타나도록 해야 하는데, 그는 혈기 가운데 분노 가운데 그 성질을 못이겨 마치 자기의 능력으로 물을 내는양 반석을 내리친다.

하나님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시고 곧바로 백성들의 패역을 지적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세와 아론이 혈기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그 혈기가 하나님의 거룩을 손상시켰다고 깨우치시며 그로 인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그들이 누릴 영적 축복과 하늘 나라의 시민권까지 박탈당한 것은 아니기에 형벌이나 진노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쉽기만 하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성을 가지신 분인데, 예수님이라고 짜증과 신경질, 혈기와 성낼 일이 없었을까?

사탄은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예수님 십자가를 방해하려 하였다.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무리들이 유다를 앞세우고 다가와 입맞춤으로 예수를 잡으려 한다.

스승이 팔려가는데 제자 중 하나가 칼을 들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벤다.

얼마나 용감하고 기특한 행동인가?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다르다.

(22:51)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이 고난주간에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 “이것까지 참으라를 마음에 새길 수 있으면 좋겠다.

예수님이 능력이 없으셔서 참은게 아니다. 하늘의 천군 천사를 동원하실 수 있지만 참으셨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방해하는 모든 유혹과 시험을 단호하게 뿌리치셨다.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의 거룩과 뜻을 가로막는 유혹과 훼방이라면 넘어가지 않고 참아내자는 것이다.

사탄은 온갖 조롱과 멸시와 수치를 퍼붓으며 십자가를 지지 못하게 하였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를 참으셨다.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참으셨다면 우리가 참지 않아도 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오늘은 종려주일이다.

만왕의 왕으로 영광스럽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지만, 사실은 영광의 길이 아니라 죽음의 길이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가로막는 모든 유혹과 시험도 뿌리치시고 묵묵히 죽음을 향해 걸어가셨다.

죽음을 통과해야 부활이 있기에, 고난을 지나야 영광이 있기에.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그의 유일한 개인적인 실수가 혈기로 인한 것이었음을 기억한다면 엄중하게 받아야 하지 않을까.

이것까지 참으라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고 십자가를 참아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성질대로가 아니라 성품대로, 성격이 성질이나 성깔로 성내는 것으로 드러나지 않고, 품격을 갖춘 그리스도인의 성품으로 열매 맺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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