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14(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 21:15-17) | 이기형목사 | 2021-02-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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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밸런타인데이는 세속적인 날이 아니라 본래 이름은 성 발렌티노 축일이라 한다. 황제의 명을 어기고 군인들의 혼례를 집례하다가 발각되어 처형을 당한 발렌티노 주교를 기념하기 위한 날이라는데 사람들은 발렌타인 데이를 ‘죽음을 각오하고 사랑을 이루는 날’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그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선물로 인해 부담스러운 날이 되고 있다니, 우리가 얼마나 물질주의에 빠져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사랑의 고백과 언약을 새롭게 할 수 있는 날이라면 이런 날은 필요하지 않을까? 요한복음의 마지막 21장에서 사람낚는 어부로 부름받았던 제자들이 다시 원래의 물고기 잡는 어부로 돌아가 버린 것을 보실 수 있다. 주님은 그들을 찾아오시고 풍성한 물고기를 잡게 하시며 그들을 위해 불을 피우고 생선과 떡을 준비하셨다. 그렇게 조반을 마치고 주님은 베드로에게 물으신다. 주님과 베드로의 그 어색하고 불편한 만남, 무거운 침묵을 깬 예수님의 질문은 뜻밖에도 꾸중도, 질책도, 훈계도 아니었고, 사랑이었다. 전혀 예상 밖의 질문이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고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천하만물을 다 가지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이었다.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밸런타인의 선물이 사랑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면 안되는 것처럼, 하나님 사랑의 수단인 형식적인 제사를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타락이다. 사랑이 없는 그 어떤 헌신과 희생도 위선이 될 수밖에 없기에 주님은 먼저 사랑을 찾으신다. 주님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 생명을 내어주신 최고의 사랑, 그 사랑을 가지고 배반하고 떠난 제자 베드로를 찾아 오신다. 베드로가 없으면 못사실 것처럼 찾으신다.. 그리고 물으신다.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건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이었다. 주님을 최고의 우선적인 자리에 두지 못했을 때 베드로는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다른 모든 일을 행할 때 비로소 온전하여지기에 주님은 그것을 물으신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같은 질문을 세 번 하셨다. 베드로를 못믿어서가 아니었다. 사랑의 헬라어 단어(아가페와 필레오)의미를 따져볼 수도 있겠지만, 요한복음은 구분해서 그 단어를 쓰지 않고, 또한 아람어로 대화하셨을텐데 그리보면 타당한 해석은 아닌 듯 싶다. 다만 반복적인 단어를 피하려고 요한이 사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럼데도 주님께서 세 번이나 같은 질문을 던지신 것은 베드로가 세 번이나 주를 부인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세 번의 주를 부인했던 베드로의 아픔과 상처를, 세 번의 사랑을 고백하게 하심으로 치유해 주셨던 것이다.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한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주신다. 세 번이나 주를 부인한 적이 있는데, 무엇을 믿고 다시금 사명을 주시나 싶을지 모르지만, 사랑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마음이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주님이 능력이 부족해서 우리의 능력을 원하실까? 가진게 없어 우리에게 도움을 원하실까?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는 것은 사랑하시기에, 그 사랑은 신뢰로 나타난다. 사랑이 사명을 이루어간다. 베드로가 능력있는 사람처럼 용기를 자랑할 때, ‘다른 사람은 다 부인하고 떠날지라도 나는 부인하지 않겠다’고 큰소리 치다가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가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였을 때 그는 죽음으로써 영광돌리는 순교의 자리도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질문 앞에 베드로는 대답한다. (15)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세 번이나 반복적인 질문 앞에서도 그는 변함없는 사랑을 고백한다. 그렇다, 적어도 베드로의 행실에는 주를 부인하는 연약함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중심에는 주님 사랑의 뜨거움이 있었다. 다른건 없어도 주님 사랑만큼은 베드로에게 있었던 것이다. 오늘 우리 안에는 그 사랑이 있는가? 억만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생명을 바치라는 것도 아닌 사랑의 마음이라면... 내세우고 드릴만한 것이 없어도, 아니 부끄럽고 창피한 것 밖에는 보여드린게 없지만, 그래도 이 한가지 내 안에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만큼은 주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그 사랑이 우리를 이끌어 간다면 우리는 죽음까지도 감당할 수 있는 주님의 참된 제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주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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