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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제1장 초대 교회의 씨앗이 된 순교자들 이기형 2018-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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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초대교회 이야기

 

1장 초대 교회의 씨앗이 된 순교자들

 

그리스도교는 역사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 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특별한 방법으로 인간의 역사속에 참여하신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바로 이 점에서 그리스도교는 순환적인 자연종교나 무시간적이고 추상적인 사색종교와 구별된다. 2:1-7은 예수 그리스도가 로마 시대라는 구체적 역사의 한 시점, 즉 아우구스투스(Augustus,아구스도)가 로마 황제이고 퀴리니누스(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이던 때에 태어났음을 명시한다. 역사는 그리스도를 분기점으로 기원전(Before Christ)과 기원후(Anno Domini = in the year of our Lord)로 나누어졌다.

 

복음 전파의 일등 공신, 박해

역사 속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은 교회라는 이름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이 교회는 어떻게 오늘날 온 세계로 확장될 수 있었는가? 역설적이게도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온 세상으로 확장시킨 일등공신은 박해였다. 박해로 인해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로부터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해진 것이다.(8:1)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에 따르면, 유대인들의 박해로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인 스데반이 죽었고, 그 이후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나 일곱 집사 중 또 다른 한 명인 빌립은 사마리아로 갔으며, 스데반의 죽음에 관여했다가 이후에 개종한 바울은 안티오케이아(안디옥)를 기지로 삼아 온 세계를 향해 복음을 들고 나아갔다.

베드로의 로마 전도와 관련해서는 우리가 잘 아는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주여, 어디로가시나이까?")의 순교사화가 있다.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려 하던 베드로가 로마로 향하는 주님을 보고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하고 묻자 주님께서는 나는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러 로마로 간다"고 말씀하셨고, 이에 베드로는 발길을 돌려 로마로 가서 담대히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었다는 것이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도 스페인에서 전도하다가 실망하여 돌아가는데 성모께서 기둥위에 선 모습으로 나타나 야고보를 격려하여 다시 돌아가 복음을 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스페인 신자들이 숭배하는 기둥 위의 성모"전설이다.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 44년경 순교함으로써 열두 제자 중 최초의 순교자라는 영예를 얻었다.

고대의 기록들에 따르면 마가는 이집트(이집트의 성화들은 마가를 흑인으로 그리고 있다), 열심당원 시몬은 아프리카로, 안드레는 터키로, 바돌로매와 도마는 인도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 도마행전은 도마의 전도로 인도의 곤도파레스 왕과 그 형제인 가드가 회심을 했다고 증언한다. 최근 이런 이름의 왕이 역사상 실재했고 또 그 왕에게 가드라는 형제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동전이 발견되어 도마의 인도 여행이 실제로 이루어졌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되자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교는 거의 300여 년에 걸친 오랜 기간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제국 로마가 힘없는 그리스도교를 상대로 벌인 이 박해보다 더 강력하고 길고 철저한 탄압은 전무후무하였다. “그것은 칼과 십자가가 맞붙은 몹시 불공평한 대결이었다"

그런데 박해의 이변에는 상당 부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로마인들의 오해와 무지가 깔려 있었다. 무엇보다도 로마제국의 황제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무신론자라는 이유로 박해하였다. 로마는 다신교의 나라였기 때문에 로마의 많은 신들을 부정하는 자들을 무신론자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적으로 간주했다. 더욱이 넓은 로마제국을 하나로 묶어줄 중심을 세우기 위해서 로마 황제를 신으로 삼는 정책을 취했는데, 유독 그리스도인들은 이교의 신들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로마 황제도 신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였다. 따라서 로마는 그리스도인들을 무신론자라는 이유로 모질게 박해하였다 그래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때에 서머나(Smyma) 감독 폴리카르포스(폴리캅 Polycarpos)를 붙잡고 둘러싼 군중들이 그를 향해 무신론자에게 죽음을" “무신론자는 떠나라"고 고함을 질렀던 것이다 그때 폴리카르포스는 군중들을 향해 더 큰 소리로 무신론자들은 떠나라"고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을 믿는 유일신론자였지 결코 무신론자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수많은 이방 신을 섬기고 심지어 황제라는 이유로 사람을 신으로 만든 로마가 사실상 무신론의 나라였던 것이다.

또한 로마는 그리스도인들을 근친상간의 죄목으로 핍박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이 은밀하게 모여 서로가 서로를 형제자매라고 부르고 같은 아버지를 섬긴다는 이야기를 들은 로마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도덕과 윤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타락한 도시 로마에서 그리스도인들처럼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거룩한 삶을 산 사람들이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참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도 이교도도 아닌 3의 인종, 별종중의 별종이었다.

뿐만 아니라 로마는 그리스도인들이 식인의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핍박을 가하였다. 아마도 그 소문은 내 몸이니 받아서 먹으라” “내 피니 받아 마시라"는 성만찬 예식을 오해한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당시 로마인들은 성만찬 시에 그리스도인들이 실제로 유아를 큰 빵에 넣고 잘라서 몸과 피를 나누어 먹는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아무튼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기존 체제를 잠식하고 로마의 가치들을 위협한다고 느낀 로마 황제들은 그리스도교를 적대시하였고, 그리스도인들을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삼기도 하였다. 교회사에서는 5세기부터 로마에서 일어난 박해의 횟수를 10번으로 간주한다. 박해를 주도한 황제는 네로, 도미티아누스,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막시미누스, 데키우스, 발레리아누스, 디오클레티아누스이다.

 

네로와 그리스도인들

기원후 54년 로마 황제가 된 네로는 처음에는 상당히 인기 있는 황제였다. 그러나 점차 과대망상적인 광기를 부려 시민들의 혐오를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그러던 중 64년에 로마에 대화재가 발생하였고, 도시의 14구역 중 10구역이 소실되었다. 당시의 역사가인 타키투스에 따르면 화재는 기름 창고에서 우연히 발생했는데, 항간에는 네로의 짓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네로가 자기 구상대로 로마를 다시 짓기 위해 불을 질렀다느니, 예술가로서의 영감을 얻기 위해 불을 질렀다느니 하는 소문이 꼬리를 이었다. 네로는 희생양이 필요했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리스도인들은 주로 화재로 소실되지 않은 구역에 살고 있었고, 네로는 이를 빌미로 그리스도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연대기에서 이렇게 전한다.

황제의 거듭된 부인과 신들에게 바쳐진 희생에도 불구하고 황제가 화재를 명령했다는 의심은 그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 소문을 없애기 위해 네로는 이미 배덕적 행위로 시민들의 증오를 받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이라 하는 자들에게 혐의를 씌우고 이들을 잔인하게 처벌했다. 이들의 사형식은 스포츠 방식으로 집행되었다. 어떤 자들에게는 짐승 가죽을 입혀 개들에게 찢겨 죽게 했고, 또 어떤 자들은 십자가에 달거나 불태워 죽였고, 날이 캄캄해지자 횃불로 사용된 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비록 중벌을 받아 마땅한 자들이긴 했으나, 사실상 공중의 선을 위해 고통을 당한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잔인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고통을 당했다.(Anna1s XV, 44)

이 기록은 당시의 박해가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베드로와 바울의 순교도 네로 치하에서 발생하였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던 로마의 역사학자조차도 네로의 박해가 정당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결국 네로는 68년 로마 상원의 지원을 받은 반란에 의해 퇴위되어 스스로 자살의 길을 택하였다.

네로 황제의 죽음이후 내란이 종식된후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 69-79)가 잠시 황제가 되어 통치를 하였는데 유대인들은 곳곳에서 끊임없는 반란을 일으켰다. 황제는 자신의 장남인 티투스(79-81)에게 예루살렘성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리었고 결국 AD 70년에 성이 함락된뒤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그후 티투스장군은 돌아가서 로마의 황제가 되었으나 2년을 넘기지 못하고 갑작스런 열병으로 죽었고 티투스가 죽은 뒤 그의 뒤를 이어 도미티안이 황제가 되었다.

 

도미티아누스, 트라야누스 그리고 이그나티우스

두번째 박해1세기 말엽 90-96, 황제 도미티아누스는 자신을 가리켜 도미누스 에트 데우스(Dominus et Deus) 곧 주(lord)와 신(god)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주장을 인정할 수 없었고 단호히 황제숭배를 거절했다. 이로 인해 로마는 또 다시 그리스도인들의 피로 젖게 되었다. 이때부터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지하로 숨어 들어가 카타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요한계시록은 로마를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 큰 음녀"(17:1,6)라고 불렀다. 로마의 클레멘트, 요한(밧모섬유배)이 순교하였다. 결국 도미티아누스도 정적들에 의해 암살당하였다. 로마 원로원은 로마의 모든 기록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서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도록 결정하였다.

세번째 박해는 98-111, 도미티아누스의 뒤를 이은 트라야누스 황제도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금지시키고 황제숭배를 강요하면서 그리스도교를 탄압하였다. 이 때 사도 요한의 제자이자 안티오케이아의 감독인 이그나티우스가 순교하게 된다. 교회의 전승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천국이 이런 어린아이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실 때 친히 품에 안고 있던 아이가 바로 이그나티우스라고 전한다. 사형집행을 위해 로마로 압송되던 그를 몇몇 그리스도인들이 구출하려고 했을 때 그는 자신을 구출해서는 안된다며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그대들의 친절이 나를 오히려 해치리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당신들은 그 계획을 성공시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디 나의 부탁을 들어주어 나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큰 은혜를 얻게 하라" 그는 진심으로 순교를 열망하고 사모하였다. 왜냐하면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순교를 제2의 세례로, 즉 물로 받은 첫 세례 이후에 범한 모든 죄를 사하는 피의 세례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순교가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과 천국의 영광으로 더 빨리 인도한다고 믿은 것이다. 결국 이그나티우스는 자신의 소원대로 순교하여 천국이 바로 이런 자의 것이라는 주님의 약속을 현실로 받게 되었다.

네 번째 박해(117-138)는 하드리아누스 황제 치하인데, 트라야누스 황제의 정책이 이어진 것이다. 서머나의 감독 노령의 폴리카르포스가 잡혔을 때, 재판관이 그에게 그리스도를 한 번만 저주하면 살려주겠다고 하자 그는 나는 여든여섯 해 동안 그분을 섬겼지만 그분은 한번도 나를 저버린 적이 없소. 그런데 어떻게 내가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저주할 수 있겠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제야 순교자들의 반열에 들게 되고 그리스도의 고난의 잔을 마시게 되고, 성령 안에서 썩지 않을 영혼과 육체의 부활에 참여하게 된 것을 찬양하면서 기꺼이 순교하였다. 참으로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가 말한 것처럼 순교자들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 된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폴리카르포스

다섯번째 박해는 로마의 현명한 다섯 황제(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라우스:161-180)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명상록의 저자 아우렐리우스도 그리스도교를 핍박한 사람이었다. 이때에 유명한 변증가였던 유스티누스(Justinus), 리옹에서도 50여명의 순교자를 냈으며 포티너스(Potinus)감독도 그들과 함께 고문 끝에 순교를 당했다.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서는 페루페투아(Perpeptua)와 펠리키타스(Felicitas)여인의 순교는 매우 유명하다. 이 두여인은 노예였는데 맹수들이 들끌는 원형경기장에서 손에 손을 잡고 기독교의 위대함을 온 천하에 증거하였다. 쌍투스라는 소년은 죽음 앞에서도 나는 기독교인이다라고 대답하며 죽어갔다. 이것을 지켜보던 많은 신자들도 용기를 얻어 신앙을 고백하며 순교자의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여섯번째 박해202-211, 셉티무스 세베루(Septimus Severus) 황제 치하에서 기독교에로의 개종이 금지되었는데 사도 시대의 정신을 속사도 시대로 계승하여 온 교부중의 제 일인자였던 이레네우스(Ireraeus)가 순교를 당하였다.

일곱번째 박해235-236, 트레스출신의 막시미누스(Maximinus) 기독교 성직자를 처형하라고 명령하였다.

 

데키우스와 오리게네스

여덟번째 박해249년 황제의 직위에 오른 데키우스(Decius, 재위 249-251)는 로마가 옛 영광을 상실하게 된 것이 로마의 옛 신들을 저버린 탓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그는 제국 전역에 옛 로마의 신들을 숭배할 것을 명하였다 그러고는 로마의 이방 신들에게 예배한 자에게만 증명서를 발급하였다. 처음으로 제국전역으로 박해가 번졌고 황제신 외의 다른 신에게로의 경배가 금지되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옛 로마의 신들을 숭배하든지, 증명서를 뇌물로 구입하든지, 신앙을 지키든지 선택해야만 했다. 데키우스의 박해는 오래가지 못하고 251년 끝났다. 불과 2년 정도의 박해였지만 그 결과는 매우 심각했다. 왜냐하면 데키우스 시기에 신앙을 저버린 사람들을 다시 교회로 받아들여야 하는가의 문제로 교회에 큰 내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때 투옥되어 고문을 당해 순교한 사람중에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가 있다. 오리게네스는 당시 그리스도교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논객이던 켈수스를 반대하는 켈수스 논박서라는 변증서와 제일 원리라는 조직 신학서를 저술하기도 한 신학자였다. 최초의 교회사가로 교회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유세비우스(Eusebios)가 남긴 <교회사>에는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고자된 자도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고자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홉번째 박해257-260, 발레리안(Valerian)황제 치하에서 기독교인의 재산 압수되었고 기독교인의 집회 금지되었으며 키프리안이 순교하였다.

열번째 박해303-311,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 Galerius)황제 치하인데 이때가 최악의 박해시기였다. 교회들은 무너지고, 성경이 불태워졌고 모든 기독교인의 권리가 정지되었다. 기독교인은 이교신에 대한 희생제물이 되었다. 혹독한 박해를 지나며 목숨을 구하기 위해 성서를 로마의 군인들에게 넘겨준 목회자들을 다시 교회의 지도자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다. 박해시에 신앙을 지킨 고백자들과 신앙을 저버린 배교자들 사이에 갈등이 깊어졌고, 이는 결국 초대교회의 내분을 초래하였다.

 

세상이 감당치 못한 사람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다. 박해가 오히려 복음 전파의 수단이 되리라고는 감히 생각지 못했지만, 사실 그리스도교는 박해를 통해 단련되고, 확장되고, 영적인 힘을 길렀다. 어떠한 선전도 박해보다 더 그리스도교의 전파에 기여하지는 못했다. 바울은 로마서 11:33에서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 삶과 교회의 역사 안에서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히 신뢰하고 고백해야 할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행전 17:6에서 말한 것처럼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사람들!”이요, “세상을 뒤집어엎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박해 속에서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교의 믿음의 능력을 입증하였다. 수많은 이름 없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고난의 잔을 당당하게 마셨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제국의 칼의 위협 앞에서도 폭력 혁명이나 육체적 저항으로 맞선 것이 아니라 당당히 십자가만을 내세운 채로 진리에 대한 신념과 도덕적 장렬함으로 순교라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었다. 그들은 장장 1,450km에 달하는 지하 카티콤에 숨어 살면서도 웅장하고 화려한 황제의 궁에서 사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을 누리면서 살았다. 참으로 그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한 사람들"(11:38) 이었다. 

 

*박경수 교수(장신대 교회사)의 <교회사 클래스 한 권으로 끝내는 베이직 교회사>에서 요약하였습니다. 금요예배에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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