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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0419(주) 소문난 교회(살전 1:6-8) | 이기형 목사 | 2026-04-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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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데살로니가전서1:6-8절 개역개정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2026년 4월 19일 캘거리하늘가족교회 (gajok.onmam.com) 주일예배(bit.ly/gajok) 입니다. 260419(주일예배) 소문난 교회 (살전 1:6-8) 생일 축하 오늘은 하늘가족교회 설립 11주년입니다. 교회의 생일이죠. 생일은 누구에게나 축하받는 특별한 날입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면, 모든 존재가 다 환영받는 것은 아닙니다. 꼭 필요한 사람이 있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도 있지만, 때로는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에도 예수님을 배반한 가롯 유다를 두고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지만, 세상에 해악을 끼치고 하나님을 드러내지 못하는 교회라면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교회”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생일을 맞아 반드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주인이 정말 하나님이신가?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로 살아가고 있는가?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생일에 부모를 생각하듯이, 교회도 생일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세우셨다면 분명한 목적과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경에는 여러 교회가 나오지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데살로니가 교회는 특별합니다. 이 교회는 마게도냐와 아가야뿐 아니라 각처에까지 믿음의 소문이 퍼진 교회였습니다. 당시에는 SNS도 없고 언론도 없었는데, 입에서 입으로 그 소문이 널리 퍼졌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소문이 스캔들이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소문”이었다는 점입니다. 좋은 소문은 쉽게 퍼지지 않는데, 이 교회는 예외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소식을 듣고 “우리는 더 말할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감격했습니다. 마치 스승이 제자를 보며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인정일 뿐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만큼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신 교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세워진 과정을 보면 더욱 놀랍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마게도냐로 건너왔고, 데살로니가에서는 단 세 번의 안식일 동안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시기와 핍박으로 인해 급하게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교회는 갓 믿기 시작한 초신자들만 남은 상태였고, 지도자도 없는 상황에서 외부의 핍박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교회가 유지되기 어려운 조건입니다. 그런데도 이 교회는 무너지지 않았고, 오히려 모든 교회의 본이 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달랐을까요? 1.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첫 번째 비결은, 그들이 말씀을 “성령의 기쁨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받았다’는 말은 단순히 이해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씀을 영접하고 환영했다는 뜻입니다. 즉,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격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굉장히 큽니다. 많은 사람들이 설교를 듣지만, 그것을 하나의 정보나 의견으로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그 결과로 주어진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의 기쁨입니다. 그들은 환난 가운데 있었습니다. 상황만 보면 두렵고 낙심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도 기쁨이 있었습니다. 이 기쁨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상황을 초월합니다. 사도 바울도 비슷한 고백을 합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무너지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겉으로 보면 힘들어 보이지만, 속에서는 기쁨과 생명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내가 믿음을 지켜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이 나를 붙들어 줍니다. 그래서 환난이 있어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환난보다 더 큰 성령의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은 말씀을 지적으로 아는 데서 오지 않습니다. 말씀을 인격적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살아갈 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2.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으니 두 번째 비결은, 그들이 바울과 주님을 본받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는 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실제 삶으로 살아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능력이 있기 때문에, 진짜로 받아들이면 반드시 삶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만약 변화가 없다면, 아직 지적인 동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의 삶을 그대로 따라 했고, 그 과정 속에서 주님을 본받는 삶까지 나아갔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서입니다. “우리와 주를 본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처음 믿은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주님을 직접 본받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먼저 눈에 보이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배우게 하십니다.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고 말한 것도 자신을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받으라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교회 안에는 믿음의 모델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먼저 믿은 성도들은 ‘영적 조교’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말로 가르치지 않아도, 삶을 통해 영향을 줍니다. 새신자들은 설교만 듣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삶을 보며 신앙을 배웁니다. 그래서 우리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교과서가 됩니다. 이것은 부담이지만 동시에 매우 중요한 사명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문제는 사람들이 배우려 하기보다 판단하고 비판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정보는 넘치지만, 본받으려는 태도는 부족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많은 지식을 가진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짧은 시간 동안 적은 가르침만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그대로 살아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소문의 비결이었습니다. 많이 안다고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식은 교만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능력이 있어서 실천하는 것도 아닙니다. 말씀에 반응할 때 성령께서 능력을 주십니다. 결국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우리가 변화되지 않는 이유는 몰라서가 아니라, 그대로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떤 교회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있는가? 우리는 그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고 있는가? 믿음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은 누군가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지식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함께 살아내는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 교회도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되기를 소망합니다. 비록 크지 않고 화려하지 않을지라도,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고, 서로가 서로에게 본이 되어 주님을 닮아가는 교회,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소문이 퍼지는 교회.하늘가족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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