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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0412(주) 왕과 사는 성도(막 15:43) | 이기형 목사 | 2026-04-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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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가복음15:43절 개역개정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2026년 4월 12일 캘거리하늘가족교회 (gajok.onmam.com) 주일예배(bit.ly/gajok) 입니다. 260412(주일예배) 왕과 사는 성도(막 15:43) 왕의 등장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는 ‘왕과 사는 남자’라는 영화 이야기를 통해 오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이 영화는 한 마을에 유배 온 왕과 그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처음에 마을 사람들은 권세 있는 인물이 오기를 기대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이 오면 마을이 잘 살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온 사람은 권력을 잃고 쫓겨난 어린 왕이었습니다.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위험이 될 수도 있는 존재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반응이 있습니다. 그런 왕이라면 철저히 외면하고, 관계를 끊고, 위험을 피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권력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을 사람들은 폐위된 왕을 무시하거나 버리지 않고, 오히려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갑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성경으로 돌려 보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왕이 있으십니까? 우리는 왕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질문이 낯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무너진 세상을 회복하시기 위해 한 왕을 보내셨다고 말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이 왕의 모습은 우리가 기대하는 왕과 너무나 다릅니다. 화려한 궁전이 아니라 초라한 구유에서 태어나셨고, 권력자의 가문이 아니라 평범한 목수의 가정에서 자라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왕궁에서 태어나셨다면 사람들이 알아봤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사렛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자라난 예수님을 사람들은 왕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고,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왕과 살다 영화 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폐위된 왕을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성을 다해 섬기고, 함께 밥을 나누며 살아갑니다. 사실 왕과 백성이 함께 산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왕은 높은 곳에서 군림하고, 백성은 그 아래에서 복종하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왕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왕과 사는 사람”을 보여 줍니다. 이 차이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왕을 지키는 것은 의무일 수 있지만, 왕과 함께 사는 것은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왕이 백성의 삶 속으로 내려오고, 백성이 왕과 함께 식탁에 앉는 순간, 그 관계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권력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한 모습입니다. 이제 다시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을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자기 백성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권력으로 다스리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사랑으로 다가오셨습니다. 높은 자리에서 명령하지 않으시고, 낮은 자리로 내려오셔서 사람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고,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예수님을 보며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종이 아니라 친구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왕이신 예수님의 방식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몸과 피까지 내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십자가 실제 사건입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영화 속 왕이 백성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는 모습이 감동을 준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보다 비교할 수 없는 실제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이 왕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왕과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고 있는가? 왕과 함께 사는 삶은 억눌리는 삶이 아니라, 사랑과 은혜 속에 살아가는 삶입니다. 왕의 죽음과 우리의 반응 영화에서는 왕이 죽은 이후 엄흥도라는 사람이 그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 전체를 걸어야 하는 위험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일을 감당합니다. 결국 그는 모든 것을 잃지만, 시간이 흐른 뒤 그의 행동은 크게 인정받게 됩니다. 이 장면은 성경 속 한 사람을 떠올리게 합니다. 바로 아리마대 사람 요셉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상황은 매우 두려운 상태였습니다. 제자들조차 숨어 있었고, 아무도 나서지 못했습니다. 십자가형을 당한 사람의 시신을 거두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면 같은 죄인으로 몰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요셉은 용기를 냅니다. 그는 빌라도에게 찾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신분과 명예, 그리고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원래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그 사실을 숨기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더 이상 숨지 않기로 결단합니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그는 선택합니다. 이익은 없고 손해만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성경은 그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세상의 명예와 지위보다 하나님 나라를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의로운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행동은 결국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중요한 역할이 됩니다. 자신이 내어준 무덤이 비어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무리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중요한 도전을 받습니다. 나는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익을 따라 살아가는가, 아니면 의를 따라 살아가는가? 엄흥도는 선을 위해 고난을 선택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그들은 “왕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왕과 함께 산다는 것은 단순히 보호를 받는 삶이 아닙니다. 때로는 고난을 함께 감당하는 삶입니다. 심지어 왕과 함께 죽는 자리까지 가는 삶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왕과 함께 죽는 자는 다시 살아나고,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잠시 내가 왕이 되어 살아가는 삶은 결국 지나갑니다. 그러나 왕이신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은 영원으로 이어집니다. 오늘도 왕과 함께 살아가는 성도, 왕과 더불어 기쁨과 은혜를 누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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