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타임 목회칼럼> 시지프스 인생을 응원합니다. | 이기형 | 2025-07-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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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스 인생을 응원합니다
여러분은 심은대로 거둔다고 믿으시나요? 우리 말에는 자업자득이라든지,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이 난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에는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는 말씀도 있습니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이들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심은대로 거두게 하시겠다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일상을 살다보면 심은대로 거둘 수 있다는 것은 반드시 그렇게 되어지는 필연적인 자연법칙이 아니라 그것이 축복임을 알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심은대로 거두었고 심은 그 이상으로 거두었다고 간증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본전도 못거두고 좌절하는 사람도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한 해 농사의 백배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백배의 복을 달라고 기도하지요. 하지만 이삭에게는 우물을 빼앗기고 쫓겨다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온유하게 양보하니까 하나님께서 보란 듯이 백배의 복을 주신 걸까요? 그렇다면 누구라도 양보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백배의 복이 기다리는데. 하지만 양보하다가 결국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도 없지 않습니다. 해마다 수확의 계절에 들려오는 마음 아픈 소식이 있습니다. 가격 폭락으로 땀과 눈물이 스며있는 농작물을 갈아 엎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심은대로 거둔다구요? ‘어쩌다가’ 라는 부사를 넣는다면 그럴 수 있겠다 싶습니다. 세상살이가 그렇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세상에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부조리로 가득합니다. 승자들은 누구나 노력하면 안되는게 없다고, 참으로 공평한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자업자득이라는 명언을 들먹이면서 조금 더 노력해 보라고 다그칩니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면 명언도 승자의 경험일지 모르겠습니다. 실패자의 변명도 명언이 될 수 있을까요? 게으름이라 생각할거라 부끄러움에 유구무언일 것입니다.
이민자의 생활이 사는게 만만찮고 힘들다고들 말합니다. 그나마 자기 가진 전문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목회자를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직업으로 목회자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교회나 ‘그런 사람들’이 꼭 있기 마련이거든요. 제 주변에 있는 많은 목회자들은 고난의 길을 묵묵히 견뎌 나가고 계시는거 같습니다. 온 심혈을 기울여서 목회 사역을 일구어 갑니다. 하나님께서 심은대로 거두게 하시는 듯이 조금씩 교우들이 모이고 부흥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풍선이 부풀어 올라 에드벌룬처럼 떠오르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터져 버립니다. 그러면 온데간데 없고 풍선 조각만 어지럽게 널러 있습니다. 썰물 빠져 나가듯이 빠져나간 현장을 목회자는 홀로 고스란히 감당해내야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가 생각났습니다. 호머가 전하는 시지프스는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시지프스는 신들을 속인 죄로 기슭에 있는 큰 바위를 바위산의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라는 형벌을 받습니다. 시지프스는 온 힘을 다해 바위를 꼭대기까지 밀어 올렸는데 바로 그 순간에 바위는 밑으로 굴러가 버렸고 시지프스는 다시 바위를 밀어 올려야만 했습니다. 시지프스는 평생 이 일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대부분의 인생은 이렇게 무한반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무한반복 된다면 시지프스의 이 일은 도무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밑바닥에 굴러 떨어진 바위를 다시 밀어 올리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언젠가는 꼭대기에 올려 놓을 수 있을거라는 성공에 대한 기대일까요, 아님 죄수로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형벌이기에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는 것일까요? 알베르트 까뮈는 철학적 에세이 『시지프 신화』에서 부조리한 삶의 문제에 대해 반항하며 끝까지 싸워나가는 방법을 조언합니다. 절망케 하는 형벌을 형벌로 인식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저항하면 결국 승리자는 신이 아니라 시지프스라는 것입니다.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만으로도 인간의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하여야 한다." 행복하다고 상상하면 정말 행복해질까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주어진 미션이 바위를 산꼭대기에 올려 놓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범죄한 인생에게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창 3:19)”고 하셨을 때 죄수에게 주어진 형벌이 아니었습니다. 먹고 살기위해 땀 흘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전하고 이루어가기 위한 하나님의 큰 그림이었습니다. 비록 우리의 바위를 정상에 올리지 못해도, 자꾸만 굴러 떨어지는 바위에 낙심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이 일은 지루한 반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동참입니다. 뭔가 성과도 없어 보이고 결과도 없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성과나 결과가 아니기에, 우리는 다시금 힘을 냅니다. 시지프스 인생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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