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타임 목회칼럼>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 이기형 | 2025-03-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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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지난 28일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정상회담을 바라보던 전 세계는 황당함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자체가 트럼프의 말대로 쇼였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당혹을 넘어 분노를 일으키게 한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좋아한다는 인터넷 방송의 기자의 질문이었습니다. “왜 정장을 입지 않았나? 당신은 이 나라의 최고위급 사무실에 있으면서 정장을 입기를 거부했다. 정장이 있기는 하냐?” 드레스코드는 때와 장소, 상황에 맞게 입어야 하는 복장을 말합니다. 학생은 학교에서 교복을, 의사는 병원에서 흰 가운을 입지요. 그런가하면 장례식장에서 입어야 할 복장이 있고 결혼식장에서 입어야 할 복장도 있습니다. 어떤 행사에서는 참석자들에게 드레스코드를 안내하기도 합니다. 의복은 그 자체로 메시지가 되기도 합니다. 교복이나 가운이 그의 신분을 나타냅니다. 그런가하면 성경에서 베옷은 회개를 의미합니다. 그럼 젤렌스키의 복장은 어떤 메시지를 주려 했을까요? 한 나라의 국가 원수인데 양복 한 벌이 없겠습니까만, 젤렌스키는 2022년 러시아의 침공 이후 일관되게 군복 스타일의 의상을 고수해 왔다고 합니다.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가있는 군인들과 전란의 어려움에 부닥친 국민과 연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랍니다. 이 복장의 원조는 2차 세계대전을 치루었던 영국의 윈스턴 처칠인데, 그는 전쟁 중에 원피스 형태의 ‘방공복’을 주로 입었으며, 1942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백악관을 찾았을 때도 같은 복장을 했다고 합니다. 기자의 무례한 질문에 일론 머스크도 회자됩니다. 일론은 백악관에 주로 티셔츠와 모자를 쓰고 심지어 아들을 목마 태워 트럼프를 만났으니까요. 그 기자는 일론에게도 동일하게 ‘세계 최고의 재벌이 정장이 있기는 하냐?’고 물었을까요? 다윗 왕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피난할 때, 므비보셋의 종이었던 시바는 장애를 가진 므비보셋을 속이고 다윗에게는 거짓으로 므비보셋을 이간합니다. 다윗과 함께 가려했던 므비보셋은 다윗과 동행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돌아올 때까지 맵시 내지 않고 그의 수염을 깎지 않고 옷을 빨지 않았다고 합니다. 비록 다윗과 함께 가지는 못했어도 다윗의 고난에 연대하고 공감하며 동참하였던 것입니다. 권리를 포기하고 함께 고난의 자리에 내려가는 그 복장은 어느 명품보다 아름답습니다. 무례한 기자의 질문과 비슷한 질문을 성경에서도 발견했습니다.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마 22:12) 예수님께서 천국을 ‘혼인 잔치를 베푼 임금’에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혼인 잔치를 베풀고 오기로 한 손님들을 청하였지만 이들은 무례하게도 당일에 와서 거절합니다. 임금은 그들을 진멸하고 종들을 길거리로 보내 만나는대로 데려오라 하십니다. 선한 자든지 악한 자든지 갑작스럽게 청함을 받고 왕자의 혼인잔치에 참여한 것입니다. 그런데 임금이 그 중에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발견합니다. 임금은 그에게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고 묻습니다. 우리는 갑작스럽게 길거리에서 청함을 받고 곧바로 혼인잔치에 들어왔는데 예복을 준비할 시간이 어디 있었느냐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은 같은 상황인데도 예복을 입고 있잖습니까? 예복은 자기가 준비한 것이 아니라 임금이 혼인잔치를 위해 준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입기만 하면 되었지요. 그런데 그가 왜 예복을 입지 않았는지 유구무언으로 이유를 말하지 않아서 알 수 없습니다.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이 예복보다 더 귀해 보여서였을까요? 자기의 의복으로 자기의 신분과 가치를 자랑하고 싶어서였을까요? 다같이 전쟁을 치루고 있지만 푸틴과 젤렌스키의 복장이 대조를 이룬다고 합니다. 수천만원짜리 명품을 두르고 나선 푸틴과 군인들의 녹색 티셔츠를 입은 젤렌스키는 각자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겁니다. 푸틴이 "보편적 가치를 위해 우크라이나에서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던데 그가 말하는 보편이란게 어떤 것인지, 사람들은 말이 아니라 복장과 행동에서 더 크게 들을 겁니다. 우리가 무엇을 말하고 있든지 우리의 복장은 더 큰 메시지를 전해 줍니다. 온갖 세속의 욕망을 걸치고 거룩을 말한다면 더욱 가증될 뿐입니다. 말은 어눌해도 예수로 옷 입는다면, 말은 부드럽지만 전신갑주로 옷 입는다면, 누구라도 그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인정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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