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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22(주일예배) 풍요속의 빈곤(암 8:11-13) 이기형 목사 2026-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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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아모스8:11-13절 개역개정

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6년 2월 22일 캘거리하늘가족교회 (gajok.onmam.com) 주일예배(bit.ly/gajok) 입니다.

260222(주일예배) 풍요속의 빈곤 (암 8:11-13) 1. 겉은 풍요로운데 속은 비어 있는 삶 여러분,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넘쳐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궁핍한 상태를 말합니다. 경제학에서는 사회 전체의 생산력과 자원은 풍족한데, 분배의 불균형이나 구조적인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가난을 겪는 모순된 상황을 가리킵니다. 우리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옷장은 가득한데 입을 옷은 없고, 신발장은 꽉 찼는데 신을 신은 없는 것 같고, 나라 전체는 부유해 보이는데 나는 여전히 빠듯하게 살고 있으면 그것도 일종의 “풍요 속의 빈곤”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물질적으로 매우 풍요롭습니다. 그런데 이 풍요가 꼭 축복이기만 할까요? 물질 문명이 풍요로울수록 정신과 영혼은 오히려 더 빈곤해지기 쉽습니다.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본능이 끌리는 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살아 버리기 쉽습니다. 흔히 “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비교할 때, 오늘 이 시대 사람들은 배고파도 진리를 찾는 소크라테스보다, 그냥 배부른 돼지가 낫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물질적 풍요는 과연 축복일까요, 아니면 영혼에는 저주가 될 수도 있을까요? 이 질문을 가지고 아모스 시대를 한 번 비춰 보려고 합니다. 2. 아모스 시대 – 풍요가 낳은 영적 타락 선지자 아모스는 원래 예루살렘 남쪽 드고아에서 양을 치고 뽕나무를 기르던 목자였습니다. 남유다 사람인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북이스라엘, 사마리아와 우상의 중심지 벧엘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가 살았던 여로보암 2세 시대는, 북이스라엘이 가장 번영하던 때였습니다. 주위 강대국 앗수르가 다른 전쟁에 정신이 팔려 있고, 그 틈을 타 이스라엘은 솔로몬 시절에 가까운 영토와 경제력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풍요가 영적인 타락을 불러왔다는 것입니다. 부유해지고 안정되니, 더 이상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이유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자 욕심대로 사는 문화가 자리 잡습니다. 부자들의 사치와 탐욕이 일상이 되고, 가난한 자와 힘없는 자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아모스는 이런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부자들이 바라는 것은 안식일과 초하루가 빨리 끝나는 것입니다. 예배의 날이 불편한 날이 되어 버렸습니다. 장사를 못 하고 이익을 남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곡식을 파는 되(에바)는 작게 만들고, 돈을 재는 저울추(세겔)는 크게 만들어, 속여 이득을 취합니다. 형편없는 밀 찌꺼기를 팔고, 신 한 켤레 값에 가난한 사람을 사실상 노예로 사들이기도 합니다. 겉으로 보면, 이건 하나님을 직접 모욕한 것이라기보다, 가난한 이웃을 무시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이 왜 여기에까지 화를 내실까?” 싶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의 모든 행위를 절대로 잊지 않겠다.” 그리고 이런 풍요와 탐욕,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특별한 기근을 보내시겠다고 경고하십니다. 3. 오늘의 풍요, 오늘의 빈곤 오늘날 국제 정세를 “신제국주의” 혹은 “패권주의”라 부릅니다. 힘 있는 나라, 힘 있는 계층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세상입니다. 힘 있는 자의 행동은 웬만하면 정당화되고, 힘 없는 자는 억울해도 어쩔 수 없이 당하기만 합니다. 사람들도 점점 이렇게 생각합니다. “세상은 원래 그래. 나만 아니면 돼.” 우리는 부동산 불패, 투자 성공, 자산 증식을 하나님의 축복과 거의 동일시하기 쉽습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 속에서, 나도 언젠가 떵떵거리며 살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기도 합니다. 어느새 우리도 천민자본주의, 약육강식의 논리에 익숙해져 버립니다. “하나님 잘 믿는다”는 사람들조차 이스라엘의 부자들과 비슷한 길을 걷지 않나 돌아보게 됩니다. 아모스가 전한 심판은 이렇습니다. “내가 기근을 보내겠다. 그러나 그 기근은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고, 물이 없어 갈증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다.” 4. 말씀을 잃어버린 것이 왜 심판인가? 어쩌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못 들어도,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데 그게 무슨 심판인가? 나라가 망한다거나, 가진 것이 한순간에 쓸려 나가야 심판이지, 말씀을 못 듣는 게 뭐가 무섭다고?”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떡이 없으면 당장은 힘들지만, 떡만으로는 영원히 만족할 수 없습니다. 육체는 물과 음식으로 채울 수 있지만, 영혼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채울 수 있습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으면, 영혼은 굶주립니다. 굶주린 영혼은 그 허기를 채우려고 돈, 권력, 쾌락, 인정, 자극 같은 것들을 계속 집어삼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잠깐 입을 달게 할 뿐, 깊은 평안과 기쁨, 의미를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더 공허하고, 더 불안하고, 더 허무한 풍요 속의 빈곤이 깊어집니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우리 때처럼 고생시키지 않겠다”며 최선을 다해 지원하지만, 정작 말씀의 양식을 먹이지 못하면, 아이들은 겉으로는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데도 마음 깊은 곳에서 굶주리게 됩니다. 부모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뭐가 부족해서 저러나? 원하는 건 다 해줬는데, 도대체 뭐가 모자라서 이러나?” 성경은 이렇게 진단합니다.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증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5. 말씀의 기갈은 어떻게 오는가?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말씀의 기갈이 오는 이유는, 말씀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말씀을 제대로 전해 주는 설교가 없어서 그렇다.” 설교자는 또 말합니다. “말씀을 제대로 들으려는 성도가 없어서 그렇다.” 그러나 남 탓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목사든 성도든, 각자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목사는 더욱 힘써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해야 하고, 성도는 더욱 힘써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마음대로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의 전략은, 말씀을 듣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설교자를 불신하게 만들고, 관계를 깨뜨리고, 예배 시간에 피곤과 잡생각으로 귀를 막아 버립니다. 말씀만 제대로 들어가지 않으면, 그다음에는 저절로 불평과 짜증, 비판과 분노가 나오고, 세상의 것을 더 사랑하며 스스로 멀어져 갑니다. 말씀의 자리에 앉아 있다고 해서, 곧바로 말씀을 듣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소리를 듣는 것(Hearing)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경청(Listening)**은 의도적으로 집중해서 의미를 받아들이는 능동적인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로, 같은 씨가 뿌려져도 밭의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좋은 밭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마음입니다. 6. 결론 – 풍요 속의 빈곤에서, 말씀의 풍요로 아모스는 경고합니다. 사람들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오늘 우리는 말씀의 홍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설교를 실시간으로 듣고, 이미 세상을 떠난 유명 설교자들의 설교도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많다고 해서, 자동으로 말씀이 내 안에서 역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말씀이 나를 선택하게 두지 않고, 내가 골라 먹는 취향으로 말씀을 소비한다는 데 있습니다. 듣고 싶은 말씀만, 위로만 복만 성공만 골라 듣다 보면, 정작 내 죄를 찌르고 삶을 바꾸는 말씀은 멀리하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는 말씀의 풍요 속에서 영혼의 빈곤을 겪게 됩니다. 사랑하는 하늘가족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삽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음으로 열고 들으십시다. 

전부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한 말씀이라도, 한 구절이라도 붙들고 그 말씀을 가지고 한 주를 살아 내는, 그런 하나님의 자녀, 그런 하늘가족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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