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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02(주) 협상의 기준 (민 20:18-21) 이기형 목사 2025-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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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민수기20:18-21절 개역개정

18. 에돔 왕이 대답하되 너는 우리 가운데로 지나가지 못하리라 내가 칼을 들고 나아가 너를 대적할까 하노라

19.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우리가 큰길로만 지나가겠고 우리나 우리 짐승이 당신의 물을 마시면 그 값을 낼 것이라 우리가 도보로 지나갈 뿐인즉 아무 일도 없으리이다 하나

20. 그는 이르되 너는 지나가지 못하리라 하고 에돔 왕이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강한 손으로 막으니

21. 에돔 왕이 이같이 이스라엘이 그의 영토로 지나감을 용납하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그들에게서 돌이키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5년 11월 2일 캘거리하늘가족교회 (gajok.onmam.com) 주일예배(bit.ly/gajok) 입니다.

251102(주일예배) 협상의 기준 (민 20:18-21) 단상 협상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익숙치 않고 타협은 더욱 그렇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려면 내 뜻대로만 살아갈 수 없기에 협상이 필요하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기에 타협도 해야 한다. 그 기준은 무엇일까? 세상 사람들은 자기 이익과 자존심을 지키려 하고, 그러기 위해서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협상은 내 이익이나 자존심도 내려 놓을 수 있다. 내가 힘을 가지고 있고 능력이 있어도 포기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여정에 에돔과 아모리와 협상을 벌인다. 에돔의 거절에는 광야길로 돌아가는 수고를 마다않지만, 아모리의 거절에는 그들을 쳐서 정복한다. 선택의 기준은 자기들의 능력따라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따라였다. 비록 우리를 피곤하게 돌아가게 하시고 자존심 구기며 엎드리게 하셔도, 말씀의 기준이라면 나 자신을 그 앞에 복종케하고 절제하게 해야 한다. 말씀대로라면 돌아가는 길이 지름길이 될 수 있고, 피하는 길이 승리의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약 33회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2025년10월27일부터 11월1일까지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한국은 9개 나라의 정상들과 정상회담을 하였는데, 특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안보협력과 관세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먼저 협정을 맺은 일본이 모든 것을 다 내어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데, 우린 지킬 것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새삼 협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게 된다. 협상이란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두 명 이상의 당사자들이 갈등을 해결하고 만족스러운 합의점을 찾기 위해 대화와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설득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유지하려면 협상을 통해 타협이 있어야 한다. 타협은 줄 것은 주고 챙길 것은 챙기는 것이다. 신앙도 협상할 수 있는가? 신앙 생활도 타협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타협한다는 것은 신앙의 순수성을 저버리고 혼합주의 세속화에 빠질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쟁이나 순교만이 정답일까? 그런 세상에는 평화가 없다. 타협은 의견이 대립되는 두 당사자가 서로 일정 부분씩 양보하여 합의점을 찾는 것이다. 다만 내어줄 것은 무엇이고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바르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협상 하나님은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인생의 주인이시다. 하나님의 명령에 인생은 순종할 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생과 협상하신다. 소돔을 심판하실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협상하시고, 모세를 부르실 때도 하나님은 모세와 협상하셔서 아론을 붙이신다. 성경에는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다’는 구절을 많이 보실 수 있다. 협상의 결과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부르짖음에 타협하셨기 때문에 그나마 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을 은혜라 한다. 모세와 에돔의 협상 민수기 20:14부터 마지막 36장까지는 민수기의 후반부로써 광야 40년의 연단 기간이 다 되어서 이제 드디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와 시작을 다루고 있다. 지금 이스라엘이 있는 신광야 가데스에서 가나안까지의 여정은 2가지 루트가 있는데, 편한 지름길은 여기 17절 왕의 큰길이라고 나와 있는 고속도로와 같이 잘 닦여진 길이었고, 불편하고 돌아가는 길은 광야길이었다. 편한 길을 놔두고 힘든 광야길로 돌아간다는 것은 정말 피하고 싶었기에 모세는 정중하고 겸손하게 왕의 큰길을 이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에돔의 왕에게 요청한다. 남이 아니라 형제 나라라고 혈연을 강조하면서 자기들이 당한 모든 고난을 구구절절 소개한다. 그리고선 왕의 큰길을 지나가게만 해 달라고, 다른 곳은 일절 가지 않을테니 지나가게 허락해 달라고 요청한다. 모세의 협상은 단번에 거절되었다. “너는 우리 가운데로 지나가지 못하리라” 그러면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모세는 너무도 간절했기에 한 번 더 에돔 왕에게 왕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에돔 왕은 무장된 군사들을 거느리고 국경 앞에 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의 대로로 가는 것을 막아 버렸다. 협상은 결렬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선택했는가? 광야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였다. 모세와 아모리 왕의 협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다가 이번에는 아모리 나라가 주관하는 왕의 큰 길을 지나게 되었다. 모세는 에돔에게 했듯이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신을 보내서 똑같이 지나가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아모리 왕 시혼 역시 에돔 왕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아모리 왕은 더 나아가 군사를 동원하여 이스라엘을 치러 나왔다. 먼저 전쟁을 걸어온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결과는 이스라엘의 승리였다. 이스라엘이 아모리 모든 성읍을 점령하였다. 세상적인 협상의 기준 - 힘의 논리 우리는 모세의 에돔왕과 아모리 왕과의 협상을 통해 협상의 기준을 찾아볼 수 있다. 에돔의 거절은 순순히 받아들여 광야길로 돌아갔는데, 아모리 왕의 거절은 무력으로 대응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세상 사람들의 협상의 기준은 힘의 논리이다. 승산이 있으면 전쟁을 벌이고, 승산이 없으면 타협하는 것이다. 명분이고 뭐고 힘이 없으면 타협해서라도 생존해야 하고, 힘을 가지면 무자비하게 지배하는 것이다. 그럼 만약 이스라엘이 에돔과 전쟁을 벌인다면 어떠했을까? 적어도 이스라엘이 힘으로 밀린 것은 아니었다. 에돔 왕이 이스라엘이 지나가게만 해달라고 요청하는데도 거절한 이유는 무엇일까? 왕의 큰길을 열어주었는데 이들이 변심을 해서 전쟁을 일으킨다면 에돔으로서는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힘의 논리대로 따지자면 이스라엘이 에돔을 피해서 광야 길을 선택한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스라엘은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에돔도 이스라엘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그럼 모세가 에돔은 피하고 아모리는 정복한 협상의 기준은 무엇인가? 우리의 협상의 기준 - 말씀의 논리 신명기 2:4을 보면 하나님께서 에돔은 이스라엘에게 주시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에돔을 너희 동족이라 말씀하신다. 충분히 승산이 있음에도 하나님께서 막으실 때, 이스라엘은 자기 힘이나 자기 생각이나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갔다. 그럼 아모리 왕은 어떠한가? 신2:24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모리 사람 시혼과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으니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하라 하신다. 아모리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만만하게 보고 전쟁을 걸어왔지만, 그 전에 이스라엘에게는 승리가 보장된 싸움이었다. 모세는 협상에서 자기의 유불리를 계산하거나 자기의 힘과 능력을 따지지도 않았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따라 선택하고 움직였다. 오늘 우리의 협상도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따라 내어줄 수 있는 것은 내어주지만, 지켜야 할 것은 반드시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 그 기준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이라지만,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에돔의 행위가 괘씸하고 서운하지 않는가. 에돔은 남보다 못한 형제이다. 내가 힘이 없으면 자존심이 상해도 어쩔수 없는데, 충분히 이길 힘이 있지만 단지 형제라고 꼴불견을 봐주고 참아야 한다는게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대부분의 갈등은 나를 너무 잘 알고 있고 나의 약점도 잘 하는 사람이 충동하고 격동한다. 한나를 격동시킨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한나의 사정을 너무도 잘 아는 브닌나였다. 골리앗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을 것을 듣고서 의분에 사로잡힌 다윗에게 ‘잘난체 하는거라고, 전쟁이 장난인줄 아냐고’ 화를 내며 모욕을 준 사람은 다름아닌 다윗의 큰형 엘리압이었다. 하지만 한나도 다윗도 형제에 대하여 받은대로 돌려주면서 다투고 싸우지 않는다. 능력이 안되서가 아니라 형제는 싸울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게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을 요구하시는 까닭이 에돔을 위해서겠는가? 힘이 있고 능력이 되지만 참는 것이 절제이다. 능력이 안되면서 참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스라엘을 말씀 앞에 훈련시키기 위해 하나님은 에돔을 들어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계획안에 이스라엘이 다듬어지고 절제할 수 있도록, 작품을 만드시기 위해 에돔을 쓰신다. 하나님의 관심은 나에게 있고 나를 만들어가기 위해 온갖 정성을 쏟으시며 만물을 동원하신다. 이웃보다 못된 형제가 나를 괴롭힌다면, 나 하나 만들자고 저 사람도 이렇게 애를 쓰고 수고하고 있으니 오히려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나를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이다. 마무리 오늘 우리는 협상의 기준에 대해 살펴 보았다. 어느 때 싸워야 하고 어느 때 양보하고 돌아가야 하는가? 이 분별을 못하면 싸우지 말아야 하는데 싸워서 큰 상처를 입기도 하고, 싸워서 이겨야 하는데 싸우지 못해 승리를 놓치기도 한다. 그 기준은 무엇인가? 내 힘과 능력인가? 내 이익과 자존심인가? 아니다. 오직 한가지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원수보다 못한 형제일지라도 나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도구이기에 그와 싸우지 않는다. 우리를 피곤하게 돌아가게 하시고 자존심 구기며 엎드리게 하셔도, 말씀의 기준이라면 나 자신을 그 앞에 복종케하고 절제하게 해야 한다. 말씀대로라면 돌아가는 길이 지름길이 될 수 있고, 피하는 길이 승리의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하늘가족 여러분, 우리는 매일 협상의 테이블에 앉는다. 그리고 타협을 통해 평화를 이루어간다.  

내 이익을 챙기고 내 안락을 챙기는 협상이 아니라,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을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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