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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12(주) 그럼에도 감사할 수 있는 까닭은 (합 3:17-18) 이기형 목사 202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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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하박국3:17-18절 개역개정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251012(주일예배) 그럼에도 감사할 수 있는 까닭은 (합 3:17-18)

단상 굳이 감사절기가 아니어도 감사할 일이 있으면 감사하고, 감사거리가 없어도 무조건반사처럼 무의미한 감사가 나오기도 한다. 짜내는 억지 감사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게라도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감동하시고 정말 감사할 수 있게 해 주신다고 누군가 말했다. 자본이 왕이 되고 소비를 통해 자기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우리 시대에 상황을 합리화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을까? 선물이 아니라 선물을 주시는 분에 대한 감사. 상황이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한 감사.. 그 근원적이고 진정한 감사를 회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요약 그럼에도 감사할 수 있는 까닭은(합 3:17-18) 감사 실종 시대 농경사회에서 추수를 마치고 감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오늘날은 산업사회를 넘어 정보사회가 아닌가? 더 이상 추수하지 않는 오늘날에도 추수감사절이 필요할까? 우리는 Thank you를 수도 없이 듣고 말한다. 늘 입에 붙어있다. 또한 우리는 감사하지 말라고 해도 감사한 일이 있으면 우리는 감사를 표한다. 그럼 왜 이 절기가 필요할까?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잊어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찢으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을 믿는다지만 감사가 없다면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가 다를 바가 없다고 하신다. 오늘날 감사가 입에 붙어 있고 감사할 일이 있으면 감사한다지만, 그러나 성경은 오늘날 감사실종시대라고 진단한다 사실 우리의 삶에는 감사보다는 불평 불만이 더 많이 있다. 풍요로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감사를 잃어버리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감사절기는 더욱 필요하다. 우리는 이 절기를 통해 잃어버린 감사를 회복해야 한다. 습관적인 감사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감사를 드려야 한다. 감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세상의 지혜 - 기준을 바꾸고 마음을 비우라 마음 고처먹고 나에게 있는 것을 누리면서 소소하게 감사하면 그것이 행복 아닌가?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과 원망을 늘어 놓는 것은 비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가 가진 것만 바라보면 나름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남들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남들이 잘 사는 것처럼 보이면 더 이상 감사할 수가 없다. 그럴 때 비교하려면 비교 대상이 중요한데, 나보다 잘사는 사람이 아니라 나보다 못사는 사람과 비교해 보라. 누구와 비교하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갈라진다. 삶이 권태로운가? 중환자실에 가서 호흡기에 의존해서 호흡하는 환자들을 만나보라. 장례식장에 가서 인생이 끝난 사람들을 만나보라. 그러면 나는 건강하게 호흡하고 이렇게 살아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감사가 되겠는가? 결국 마음을 비우라. 기대를 내려 놓으라.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이다. 큰 것을 기대하지 않으면 일상의 사소한 일에도 감사와 기쁨이 있을 것이다. 욕심으로 살지말고 없으면 없는대로 주시는만큼 그것으로 자족하며 살아가라. 욕심을 버리라, 마음을 비우고 있는 것을 족한줄 알고 자족하며 살아가라, 이런 이야기는 어느 종교에서나 들을 수 있다. 특히 불교의 가르침은 자기 비움이 아닌가? 그러면 성경도 우리에게 그렇게 살라고 가르치는 것인가?라고 물을 때 성경의 가르침은 아니다. 성경은 자기 수양이 아니라 인간의 전적 부패를 말한다. 성경의 가르침은 자기 비움과 자기 수양을 통해서, 도를 닦아서 세속을 초월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이나 상태에 적응해서 감사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힘들고 고달픈 상황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마음이라도 편하게 합리화하면서 받아들이라는게 성경의 가르침은 아니다. 그건 여우의 신포도처럼 자기 기만이 아닌가? 신앙이 자기를 속이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가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 했는데, 아편은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하는 환각제이다. 실제 고통이 사라진게 아니라 없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종교는 현실도피가 아니다. 그건 사이비다. 그럼 성경이 말하는 감사는 무엇인가? 2.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감사하라. 오늘 하박국은 극단적인 상황을 말한다. 본문에는 없다는 말이 여섯 번 반복된다. 하나도 없다. 빈털터리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즐거워할 수 있을까?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을까? 성경에 보면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었다. 부자였던 욥은 전 재산을 한 순간에 잃었을 뿐 아니라 10명의 자식도 한꺼번에 잃었고 자신의 건강마저 잃어버렸다. 그러자 욥의 아내가 욥에게 한마디 한다.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러할 때 욥의 반응은 무엇이었는가? “기대는 낮추고 마음을 비우면 그래도 생명은 남아있으니 그나마 감사할 일 아닌가?” 그게 아니었다. 욥은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주신 이도 여호와시여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오늘 하박국의 표현대로라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감사하리라. 성경이 말하는 감사는 마음을 비우고 기대를 낮추면서 그런 정신 수양을 통해 어떤 상황이든지 적응하고 감당하며 극복하고 이겨내서 감사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자기 비움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채움이다. 하나님 한분 만으로 만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호와로 인해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다. 우리의 감사는 상황과 환경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감사이다. 어떠한 여건이든지 거기에도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계획이 역사하시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내 삶에 함께 하심을 믿기에 감사하는 것이다. 어렵고 힘들고 답답하고 때론 죽을거 같아도, 하나님의 사랑은 끊이지 않으며 날 향한 계획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그것마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기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도무지 아무 것도 없는데 뭘 감사하느냐고 하는데, 왜 아무 것도 없는가? 믿음의 눈을 들어보면 날 향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고 치밀하게 인도하심이 있는데. 아름답고 놀라운 하나님의 손길이 있는데... 나는 연약하고 실패하지만 그런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는데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 비로소 감사할 수 있고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마무리 감사절기를 맞아 의례적인 감사라든지 조건적인 감사를 넘어서면 좋겠다. 오늘날 감사실종시대에는 그마저도 대단하게 생각될 수 있겠지만, 그런 감사는 당연한 것이다. 사실 우리는 가진 것보다는 갖지 못한 것이 더 많이 있지 않은가? 우리의 삶에는 결핍이 더 많이 있다. 일상에 감사보다는 불평과 원망이 더 많을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마음을 다스리라고, 기준을 낮추든지 마음을 비워서 작은 일에 행복과 감사를 찾으라고 조언한다. 있는 것을 족한줄 알고 감사하게 살라고 조언한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고 그 나름 유익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감사는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음을 일깨워 주신다. 자기 비움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채울 때 진정한 감사가 나온다. 환경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선하신 뜻을 신뢰하기에 감사하는 것이다. 지금 현재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소망하기에 감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시는 선물로도 감사하지만, 그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더욱 감사를 드린다. 지금 선물이 없다해서 앞으로도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때를 따라 도우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선하신 분이시다. 그 하나님을 믿기에 하나님의 하시는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게 없어도 감사하는 것은 현재의 나 자신을 보는게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황에 맞추어서 우리의 마음을 비우고 기준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맞추어서 주실 것에 감사 그럼에도 감사하는 하늘가족 식구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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