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04(주) 어른아이가 되라(마1801-04) 음성 | 이기형 목사 | 2025-05-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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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18:1-4절 개역개정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어른아이가 되라(마 18:1-4) 프란체스코 지난 4월21일 로마의 바티칸에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신부가 이 세상의 삶을 마치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갔다. 한 신부의 죽음에 대해 전세계는 깊은 애도를 표했다. 그는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22세에 예수회에 입회하여 1969년 33세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 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 등을 봉직하면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자들을 향한 행보로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가 전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13년 당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고령을 이유로 물러나자, 다섯 차례의 콘클라베 끝에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된 것이다. 교황으로 선출되면 새로운 이름을 정하게 되는데, 호르헤 신부는 특이한 이름을 정했다. 프란치스코. 앗사시의 성자로 알려진 프란치스코는 본래 아주 부유한 귀족의 자녀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모든 부와 권력을 버리고 가난한 수도자로 살았다. 가난한 성자인 프란치스코는 황제에게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지만, 프란체스코 교황은 그 이름대로 살았다. 호르헤 신부는 교황 최고봉의 자리에서 겸손과 청빈을 보여준 감동적인 사람이었다. 가톨릭을 이단으로 여기고,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이러한 칭찬이 불편하실지 모르겠다. 개신교는 가톨릭의 부패를 바로잡으며 태어났고, 가톨릭과 개신교는 서로를 죽이는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고, 서로에 대해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교황교리같은 가톨릭의 주장을 모두 수용할 수는 없다. 다만, 저는 가톨릭의 교리를 인정하고 교황 제도의 정당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복음에 대해 치열하게 살았던 한 사람을 소개하고 그에게서 도전받은 감동을 나누려 한 것이다. 교황의 권세를 누리려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섬기는 사람으로 살았던 그의 삶이, 높아지고 권력을 추구하는 오늘 우리 시대에 그리스도인의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김장하 지난 주중에 감동깊게 본 네플릭스 다큐멘터리가 있었는데, ‘어른 김장하’이다. 김장하 선생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간신히 중학교를 졸업하고 한약방에 취직한다. 그는 주경야독으로 최연소 한약업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남성당 한약방을 개업한다. 19살 젊은 한약방 원장에게 환자들이 올리 없을거라 싶지만, 김장하는 좋은 약제를 싸게 팔았다. 손님이 많은 날은 하루에 800명이 넘었고 당시 한 달에 1억 원을 벌 만큼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선생은 이때부터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 시작한다. 그는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내 자신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장학금은 주었지만 아무런 당부나 부담을 주지 않았다. “줬으면 그만이지” 그게 선생의 주관이었다. 그리고 자기는 사회의 것을 주었을 뿐이니 갚으려거든 사회에 갚으라고 말한다. 김장하는 교육과 50년 동안 진주 지역의 각종 문화예술단체나 언론·역사·환경운동 등 전 영역에 걸쳐 든든한 후원자로 조건없이 지원해왔다. 선생의 관심은 함께 살아가는 세상 만드는데, 한결같이 약자에게 낮은 자에게로 향했다. 부자니까 그럴 수 있겠지 싶었다. 나눌 재산이 있으니까 그랬을거라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명신고등학교 선생이었던 분이 ‘그는 돈이 많은게 아니라 뜻이 큰 사람이었다’고 인터뷰한다. 어른 김장하의 영화 포스터에 ‘당신을 만나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습니다’는 글귀가 선한 영향력을 보여 준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의 삶에는 주님께서 하고 싶어하시는 일이 그대로 보여진다. 성경을 몰랐던 김장하 선생은 성경의 삶을 살았지만, 우리는 성경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거 같다. 누구나 세월에 떠밀려 어른이 되지만 세월이 어른을 만들지는 못하기에 어른됨에 큰 도전을 받았다. 어린이주일 - 누가 큰 자인가? 내일은 한국의 어린이날이다. 보통 어린이주일에 많이 사용되는 본문이 여기 마태복음 18장 1-4절이다. 오늘은 설교의 많은 시간을 성경 본문이 아니라 두 사람을 소개하는데 할애하였다. 호르헤 신부와 김장하. 두 사람이 오늘 본문을 삶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천국에서는 누가 크냐”는 질문을 한다. 큰 사람, 높은 사람,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제자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열망일 것이다. 크고 높고 위대한 사람이라면 교황을 꼽을 수 있다. 스무살 나이에 한약방을 차리고 월 1억을 버는 사람이라면, 역시 크고 높고 위대한 사람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1.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동의하지 않으셨다. 누가 크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제자들 가운데 세우신다. 그리고 대답하신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결단코 아예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누구인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아니 어떻게 세월을 거스려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은 비유법인 셈이다. 어린아이처럼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영어 단어는 childish와 childlike이 있다. childish는 미성숙한, 유치한 어린애같은 물리적인 신체적인 특징을 묘사하면서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그런가하면 childlike은 순진한 때묻지 않은, 그런 긍정적인 뉴앙스를 가지고 있다. 성경이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은 childish가 아니라 childlike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들과 같이 된다는 것은 어린 아기가 부모없이 살 수 없듯이, 성도가 예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예수님만 붙드는 것이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믿음의 성숙은 독립이 아니라 의존이다. 더욱 예수님과 관계가 깊어지는 것이다. 돌이켜, 거슬러, 역행하여 어린아이가 부모를 의지하듯이 주님을 더욱 의지하는 어린아이처럼 되시기를 바란다. 2.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큰 자이다. 이제 예수님은 누가 크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신다.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이다. 어린아이는 낮출 것도 없을만큼 본래 낮은 자리에 있다. 그러다가 실력과 능력을 갖추면 점점 높아진다. 높아졌을 때 교만하지 말고 자기를 낮추어야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 낮추라는 것은 실력과 능력을 낮추어 무능해지라는 말이 아니라, 자세를 낮추어 겸손해지라는 의미이다. 어거스틴의 제자가 그리스도인의 덕목을 물었을 때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 대답했다고 한다. 저는 설교에 두 사람을 언급했는데, 호르헤 신부가 크고 높고 위대한 이유는 가톨릭 교회의 최고봉 교황이어서가 아니라, 김장하가 젊은 나이에 큰 돈을 벌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그 높은 자리에 있었음에도 낮은 곳을 지향하는 겸손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마무리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라고 그래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라고 그래야 높은 자라고 말씀하신다. 순리대로 살면, 돌이키지 않으면 도저히 그렇게 살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으니 어린아이가 될 수는 없겠지만, 설교제목처럼 어른아이가 되면 좋겠다. 우리의 인격과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런 미성숙함에서 자라나야 한다. 자랐다는 성숙은 높은 자리와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절대 의존하며 그의 겸손을 본받아 낮아짐을 살아내는 것이다. 호르헤 신부는 이 세상에 없고, 어른 김장하도 한약방 문을 닫았으니 예전처럼 영향력을 끼치진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있지 않은가? 어쩌면 그렇게 높은 자리가 아니어서 낮아지고 겸손한들 티도 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거기에 복음의 영향력이 있다. 그를 주님께서 들어 쓰시고 그를 통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다.어른아이, 어른으로 아이처럼 돌이켜 그렇게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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