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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09(주) 가이사의 것은 하나님의 것(마 22:15-22) 이기형 목사 202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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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22:15-22절 개역개정

15.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16.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18.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21.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가이사의 것은 하나님의 것(22:15-22)

 

정교 분리

바리새인의 제자들과 헤롯당 사람들이 와서 예수께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를 무자, 예수님은 명쾌하게 대답하셨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그러니까 사람들은 가이사의 것(정치, 세속, 세상, 현실, 세금)이 있고, 하나님의 것(종교, 거룩, 천국, 이상, 십일조)이 이분법적으로 있다고 생각한다. 이 본문 말씀을 '정교 분리 원칙'의 근거로 이해하였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의도와 목적은 무엇일까?

 

1. 바리새인들의 외식과 악한 연합

우리는 먼저 바리새인들이 왜 이 질문을 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들이 몰라서 예수님께 묻는 것인가? 가르쳐 주시면 그렇게 따르겠다고 질문하는가?

그렇지 않다. 이들은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계략을 꾸민 것이다.

그러면 이들에게 예수님의 가르침이 들리겠는가? 들리지 않는다. 사소한 말꼬리를 붙들고 늘어질 것이다.

이들은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옳지 않은가? 묻는다.

여기 세금은 로마 제국의 인두세이다. 한 사람에 한 데나리온씩 1년마다 데나리온으로 세금을 내야 했다.

세금을 내는 것이 옳다하면 유대인들의 불신을 받게 될 것이고,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 옳다하면 로마에 반기를 드는 폭력적인 혁명가로 로마당국에 고발할 수 있었다. 무슨 대답을 하든지 올무에 걸리게 되어 있다.

 

예수를 죽일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정치적인 죄목을 뒤지어 씌우는 것이었다.

로마는 종교에 대해서는 관대하였지만 정치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였기 때문이다. 훗날 이들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 요구할 때, 세금을 금하고 자칭 왕이라 했다고 정치적으로 모함하였던 것이다.

오늘날도 정치적인 이슈는 매우 민감하다.

신앙과 정치가 얽히면 신앙이 이데올로기가 된다. 이념이 되면 맹목적인 추종이 이루어진다.

우리의 정체성을 좌파나 우파로 두어서는 안되고, 우리는 늘 성경적인 관점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친유대적인 열심당원 시몬과 친로마적인 세리 마태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자기들의 이념이 아니라 말씀이신 예수를 붙들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있어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이념이 아니라 절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다.

바리새인들처럼 트집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듣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나의 기준과 지식, 경험, 생각, 이념 이런 전제는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백지 상태에서 들어야 한다.

 

이들이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보라.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은 함께할 수 없는데 예수를 제거하기 위해 연합한다.

그리고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온갖 아첨을 늘어놓는다. 예수님은 이들의 속마음을 아셨을까?

예수님은 그들의 악한 마음, 곧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험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아셨다.

그들을 외식하는 자들이라 부르셨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위선을 폭로하시는데,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하시니 데나리온을 가져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그들은 가이사의 것이라고 대답한다.

데나리온 동전의 한쪽 면에는 월계관을 쓴 황제의 흉상이 양각되어 있고, ‘신성한 아우구스투스의 존엄한 아들 디벨리우스 황제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다른 면에는 황제의 어머니 리비아가 신들의 보좌에 앉아 있는 그림이 새겨져 있고 최고의 대제사장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동전에 새겨진 형상과 글귀는 로마 황제의 권위를 신격화한 것으로, 유대인들은 이를 신성모독과 우상 숭배로 여겼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동전을 소지하고 성전에 들어오거나 가지고 다닌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바리새인들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지를 묻고 있지만, 사실 이들은 주머니에 두둑한 데나리온을 소지하면서 세금을 내고 있었다.

이들은 자기들도 지키지 않고 있는 잣대를 오로지 예수를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질문했던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떤 마음과 동기로 하나님의 말씀을 묻고 듣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2.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일단 문맥 안에서는 동전의 형상과 글이 누구의 것인지를 묻고 그 대답으로 가이사의 것이라고 하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말씀하셨다.

여기 바치라는 단어는 빚이나 의무에 관련되어 응당 치러야 할 것을 갚아 버리다는 뜻이다.

그 동전의 주인이 가이사라면 주인에게 돌려주라는 단순한 말씀일 수 있다.

성경적인 입장은 조세든 관세든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13:6-7).

하나님은 황제와 관료들을 통해 칼과 시민적 법률로 세상을 다스린다.

황제의 통치권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질서와 악을 다스리기 위해 사용하는 또 하나의 통치 방식이다.

하나님께서는 권세를 통치자에게 맡기셨다. 그렇기에 각 사람은 권세에 복종하고 두려워해야 한다(13:1).

그런데 여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도는 세금 잘내라고 하시는데 있지 않다. 그럼 무슨 의도일까?

 

3.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는 각자의 몫이 있는 것처럼 대등한 진영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분법적으로, 이원론적으로 생각하시면 안된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 바치는 것이 당연하다면어감으로는 그렇게 이해하시는 것이 나을거 같다.

왜 그러냐면, 엄밀히 따져보면 가이사의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없다.

모든 만물의 원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24:1). 그렇다면 어떤 주권자라 하더라도 자기의 것이라 주장할 수 없다.

그럼 황제의 통치권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권세이기에 하나님의 아래 있는 것이지 대등할 수 없다. 양자택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데나리온 동전 안에 황제의 형상과 글이 있다해서 황제의 것이라고 인정해 준다면. 우리 안에는 누구의 형상이 있는가?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1:27). 그러면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바쳐지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다면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가는가?

말라기 선지자가 하나님께 하듯이 총독에게도 해보라, 그러면 그가 기쁘게 받아주겠는가?(1:8)’를 묻는다.

우리가 황제의 것을 도둑질할 수는 없다. 그럼 하나님의 것도 도둑질 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가?(3:8).

어쩌면 본문은 가이사에게 드리는 것처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을 넘어서 다른 도전일 수 있겠다.

이제는 단순히 세금을 바치느냐 바치지 않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주되심의 문제이다.

너희 안에 황제의 초상이 새겨져 있고 황제의 글이 적혀 있다면 황제에게 바쳐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받았다면, 비록 세상속에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구별된 자녀라는 그 정체성을 확고히 붙들고 살아간다면 당연히 하나님께 바쳐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다.

 

마무리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으로 옭아매어 제거하려고 하였다.

오늘날도 정치 이념이 교회에 들어와 좌파인지 우파인지 치우치게 만들고 있다.

오로지 말씀의 기준을 가지고 분별해 가시기를 바란다.

바리새인들은 데나리온을 가지고 세금을 바치고 있으면서 그 문제로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다. 악하고 불순한 의도였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묻고 들을 때, 그 마음의 동기와 의도가 중요하다.

내 이념이나 생각을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만들어가는 순종이기를 바란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라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분법적으로 받아들여서 정교분리의 원칙으로 이해하시면 곤란하다. 성경은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가르치지만, 여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 돌려주는 것처럼 그렇다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주는 삶을 살아가는지 물으신다.

더 나아가, 우리 안에 누구의 형상이 있는가? 황제의 형상 곧 권력과 자본의 형상이 있다면 그렇게 황제를 따라가고 황제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을 따라가고 하나님께 드려진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주님은 세금은 내는 것을 넘어서, 우리에게 주인되심이 누구인지를 일깨워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드려지는 귀하고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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