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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주) 인도하시는 하나님(시 23:2-4) 이기형 목사 202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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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23:2-4절 개역개정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240908(주일예배) 인도하시는 하나님(시 23:2-4)

인생은 인도자가 필요하다 인생은 한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초행 길인데, 무턱대고 살아가는 것은 용기라기 보다는 만용이다. 네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으면 원하는 목적지에 순조롭게 도착하듯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인생의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 있다.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거나 벽에 부딪힐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실까? 3가지의 응답이 있다. 1. 허락하심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 나를 인도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지만 그건 이미 응답된 기도이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인도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여호와’로 보여 주셨다(사 48:17). 그럼 우리 할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본문에는 목자되시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인도하심이 2가지로 나타난다. 1)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2절) 양이 목자에게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는 곳이 있다면 풀밭과 물가이다. 먹을 풀이 넉넉하고 마실 물이 가까이 있으면 더 이상 뭘 바라겠는가. 한마디로 낙원이요 천국이다. 우리의 목자되신 하나님은 우리를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신다. 목자가 없는 야생의 양은 편히 누울 수는 없는 존재이다. 이것이 하나님 없는 인생들의 실존이다. 그런데 목자가 있기에 누워서 편히 쉴 수 있으며 목자의 인도가 있기에 아무 걱정이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모든 광야 여정동안 하나님은 광야를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가 되게해 주셨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먹이고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의 필요를 구하기 전에 아시고 풍성하게 채워 주신다고 말씀해 주셨다(마 6:30-32).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항상 인도하셔서 메마른 곳에서도 물댄 동산같이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게 해주시겠다고 하신다(사 58:11). 이처럼 하나님은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시는데, 이에 대한 잘못된 반응 2가지가 있다. 첫째 잘못된 반응은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가 아닌가벼~’ 그래서 만족과 감사가 없다. 두번째 잘못된 반응은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를 자기가 찾았다고 자기 것인양 교만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실 때 감사와 겸손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2)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3절). 하나님의 또 다른 인도하심은 나의 이름을 위해서, 나의 기도 제목을 따라서, 내가 원하는대로가 아니라 자기 이름을 위해서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뜻하신 길로 인도하신다. 그러다보니 때로 그 길을 다 이해하고 알 수가 없다. 사실 피조물이 창조주의 생각을 다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 길은 의의 길이라는 것이다. 나에게 어떻게 보여지고 느껴지든지, 어렵고 힘들고 고난의 길로 보여질지라도, 그 길은 의의 길, 옳은 길, 진리와 생명의 길이라는 것이다. 나의 어리석음을 인정한다면 내가 원하는 길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위해 인도하시는 의의 길을 인정하고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란다. 2. 허용함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허용은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 운동 경기에서는 막아야 하는데 막지 못한 것이다. 신학적으로도 하나님의 뜻은 2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교훈적인 뜻)이 있다. 거룩, 순종, 감사 등 선하시고 명백한 뜻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허용적 뜻이 있다. 네 맘대로 알아서 해보라는 것인데, 허용하신 범위 안에서 자유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기계적으로 로봇으로 만들지 않고 인격적으로 독립적인 개체로,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을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음을 받으시고 자발적인 의지적인 사랑을 기뻐하신다. 억지를 싫어하신다. 하나님의 허용은 무능해서가 아니라 사랑하시기에 주셨는데, 사람은 그것을 복으로 누리지 못했다. 아담과 하와는 생명나무 실과를 먹지 않고 선악과를 먹었다. 복을 저주로 바꾼 것이다. 본문에서도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2절과 3절의 시작, 그러니까 주어는 목자되신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4절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목자의 인도하심이 아니라 나의 선택과 결정으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접어들 수 있다. 양이 목자를 잃어버리면 죽음이다. 그런데 그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어도 해를 두려워않는 까닭이 있다. 나는 볼 수 없었는데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에,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안위하시기 때문이다. 양이 목자를 떠날지라도 목자는 양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찾아 나선다. 하나님은 나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 그렇지만 나도 하나님의 사랑을 꺾을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을 놓고 하나님을 떠나도, 하나님은 우리를 잡은 손을 놓지 않으시고 떠나지 않으신다. 나의 연악함과 못남으로 인해 낙심하지 마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다 할지라도 거기서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고, 다시금 주와 동행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3. 거절하심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본문에서는 나와 있지 않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한 가지가 더 있다. 거절이다. 안돼! 라고 하신다. 첫번째 사례는 하나님의 다른 뜻이 있는 경우이다. 바울의 소아시아 전도를 막으시고 마게도냐로 인도하셨다. 두번째 사례는 죄악의 길로 가는 것을 막아서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발람의 길을 하나님은 막으셨다. 마무리 신앙 생활의 중심은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이다. 순종한다는 것은 내 생각이나 계획이 없어서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한다(잠 16:9). 그러나 나의 걸음이 내 발에 있지 않고 내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대로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신다. 그런가하면 내 생각과는 달리 자기 이름을 위해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대로 살아가도록 허용하시기도 하신다. 미련하고 고집스러운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수도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의 그릇된 길에서 다시금 의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 그래서 성도는 실패할 수가 없다.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이 실패할리 없기 때문이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서 마침내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이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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