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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7(주) 잘 믿는다는 것은 (사 1:16-17) 이기형목사 202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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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이사야1:16-17절 개역개정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잘 믿는다는 것은(1:16-17)

 

신앙에도 위조가 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럴싸하고 대단한데 나중에 주님께서 가짜라고 판명한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권능도 행했다고(7:22) 자랑스럽게 말하지만 주님은 도무지 모르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꺼지라(7:23) 하신다면 너무 충격적이라 소름이 돋을 것이다.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간다고 가르치신다(7:21). 신앙의 고백은 입술이 아니라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주여주여! 하는 소리는 많이 들려온다. 성경적으로 이런 주장 저런 외침, 옳고 좋은 소리들이 많다. 들리는 소리는 많지만 공허하게 사라질 뿐 그 소리가 형상으로 보여지진 않는다.

소리가 어떻게 보이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주님은 들려지는게 아니라 보여지는 소리를 요구하신다. 그것은 입술로 외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외치는 것이어야 소리는 보여질 것이다.

 

이사야 1장은 하늘 법정에서 펼쳐지는 재판으로 묘사되어 있다.

먼저 배심원 역할을 할 하늘과 땅이 부름을 받는다. 원고이신 하나님은 피고인 이스라엘을 고발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마치 아비가 자식을 양육하듯이 사랑과 인자로 보살폈는데 그들은 거역했고 깨닫지 못했고 범죄와 허물, 행악과 부패한 자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다.

없는 살림에 얼마나 무수한 제물을 드렸는데,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하는 일에 열심이었는데, 개인적인 영성인 기도도 얼마나 많이 드렸는데 하나님의 진노를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은 그들의 변명에 대해 대답하시는데,

그들의 가져온 제물을 거부하신다. 그 무수한 제물은 헛된 제물이라 하신다.

그들의 예배 역시 마당만 밟는 외식과 형식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의 간구하는 기도의 손에는 죄악과 탐욕으로 피가 가득하다고 하신다.

 

이스라엘은 잘 믿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아니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이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를 말씀하신다.

하나님 목전에서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거룩과 성결이다.

우리는 세속에 살았기에 우리의 몸과 마음과 생활이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씻어야 한다.

깨끗하게 해야 한다. 세속적인 가치와 생각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는 안된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재물과 예배와 기도를 거부하신게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자를 눈 빠지게 기다리고 계시는데, 드리는 헌신을 기뻐하시고, 기도를 들으시는 분인데, 절대 그 자체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도 해롭거나 더러운 음식을 드리면 안된다.

하나님의 존전에 나올 때, 마음이 없는 물질이나 예배라면 하나님이 모르실리 없다.

하나님은 그것을 헛된 예물 텅비었다 하시고, 하나님 앞에 나와도 마당만 밟는 것을 견딜 수 없다고 하신다.

우리가 스스로 씻고 깨끗하게하여 거룩과 성결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자.

2.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단지 예배당 안에서만의 삶을 원하시는게 아니라, 세상에서의 삶을 원하신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주인이시고, 세상 속에서 영광을 받으셔야 하기 때문이다.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선행과 정의를 베풀 대상이 누구인가? 학대받는 자들, 고아와 과부들, 성경이 말하는 약자들이다. 하찮게 여기고 무시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세상적인 정의는 힘과 권력이다. 힘을 가진 자 앞에서는 선행을 베풀지만, 이익될게 없는 약자들 앞에서는 한없이 강자가 되어서 학대하고 억압하며 군림한다.

세상에는 학대와 폭력, 차별과 혐오가 가득하다. 그 대상은 약자들이다.

짓밟고 무시하고 억압하고 착취하고 함부로해도 반항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런 일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거 아닌가? 쩌면 나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건 아닌가?

본문에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선행과 정의를 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다. 특히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 학대받는 자들을 도우라고 하신다. 돕는다는 것은 적극적인 행위이다. 약한 자들을 학대하지 않을뿐 아니라 학대 당하는 자들을 방관하지 말고 돕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잘 믿는다는 것은 종교적인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개인적인 성결과 거룩, 세상에서의 선행과 정의 학대받는 자와 약자들을 돕는 것이다. 잘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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