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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제9장. 믿음을 통한 은총에 의한 구원 운영자 2018-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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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종교개혁 이야기

9. 믿음을 통한 은총에 의한 구원     18.9.14()

루터 종교 개혁의 배경의미

 

종교개혁의 시대적 배경

종교개혁이 일어난 유럽의 15-16세기는 변화와 격동의 시기였다. 사회 제반 영역에서 급격한 변화의 움직임들이 있었고, 그것들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종교개혁의 발생과 진행과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지리상의 발견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주도한 지리상의 발견으로 인해 사람들은 유럽 밖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마침 발달한 항해술, 값비싼 향료와 사치품을 얻고자 하는 경제적인 욕구, 이교도들을 개종시키려는 종교적인 동기 등이 복합적으로 복합적으로 작용해 유럽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 새 세상으로 나아갔다.

1492년 콜럼버스(Columbus, 1451-1506)가 현재의 아메리카 대륙인 서인도제도를 발견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 1469-1524)1497년에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항해

루터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포르투갈의 항해가 마젤란(Magellan, 1480-1521)은 배를 타고 세계를 일주

지리상의 발견으로 인해 유럽 밖에서 귀중품들이 쏟아져 들어오자 가격혁명이 일어나고, 해외시장의 확대에 따라 상업혁명이 발생하는 등 유럽 사람들의 삶에는 큰 변화가 촉발되었다.

과학의 영역에서도 획기적인 발전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프툴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믿어왔는데, 코페르니쿠스(Copernicus, 1473-1543)라는 과학자가 나타나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

케플러(Kepler, 1571-1630)는 이론을 수학적으로 증명, 갈릴레이(Galilei, 1564-1642)는 천문학적인 증거들을 제시

이것은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것과 같은 엄청난 변화 - 결정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생길 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정치적인 영역에서는 유럽 전체에 미치던 교황의 권위가 약화되고 각 나라의 왕이나 영주들의 권한이 강화

지금까지 교황은 종교적인 문제에서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문제들에서도 지배력을 행사해 왔지만, 민족주의적인 정서가 강화되면서 각나라는 자기 영토 안에서 교황의 세속적인 권한을 제한시키려고 하였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그의 주장이 독일의 민족주의 정서에 부합했기 때문.

이러다간 머지않아 로마의 모든 교회, 궁전, 성벽, 다리를 세우는 일에 우리 돈을 바쳐야 할 판입니다"

사회문화적인 영역에서 중요한 것은 인쇄술의 발달

인쇄술의 발달은 종교개혁이 성공히는 데 일등공신.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한 비텐베르크는 당시에 2,500명 정도밖에 살지 않는 작은 시골

때마침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하면서 루터가 쓴 많은 책들이 유럽 전체로 퍼져나갈 수 있었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개인이 책을 소유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성서 한 권을 만들려면 200-300마리의 양을 죽여 그 껍질을 벗겨 말린 다음그 위에 일일이 손으로 써야만 했다.

인쇄술 덕분에 유럽 어디에서나 손쉽게 루터의 글을 읽고 옳소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당시 루터의 책은 유럽에서 성서 다음가는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루터는 인쇄술이야말로 온 세계에 참된 종교를 전하라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최상의 선물이라고 말하였다.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중세 가톨릭의 타락과 부패

중세시대에는 교황이 황제보다 높은 권위를 주장- 교황은 0태양, 황제는 달에 비유

절대 권력을 주장하던 교황이 점차 타락의 길을 걷게 되면서 교황의 권위는 추락- 3명이 서로 진짜 교황이라고 주장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면죄부라는 증서를 만들어 대규모로 팔기 시작.

면죄부란 죄를 면하게 해주는 종이 문서로서 그것을 사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고 이미 죽은 부모님도 천국으로 모실 수 있다는 천국 입장권

종교개혁의 출발에 루터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주장이 여러 사람들의 동의를 얻고 널리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모든 상황이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밖에 없도록 무르익어 있은 덕분이다. 말하자면 때가 차매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이다.

 

종교 개혁의 싹, 르네상스

르네상스 인문주의 운동은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직전인 1350-1550년에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북부 유럽으로 확산된 사상, 문학, 예술 전반의 변화를 일컫는다. 르네상스라는 단어는 재생혹은 부홍을 의미

르네상스 사상가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이상적인 것으로 여겼으며, 인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문주의 경향

르네상스 사상의 대표자들 - 최초의 인문주의자 페트라르카, 르네상스의 3대 천재라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옐로, 위대한 조각가 도나텔로, 베드로 성당의 설계자 브라만테, 인문주의자들의 왕자 에라스무스 등

이 중에서 루터의 종교개혁과 가장 관계가 깊은 인물은 에라스무스이다.

종교개혁운동은 한편으로는 르네상스 정신의 영향을 받아들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르네상스 정신에 맞서면서 발전하였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운동은 모두 근원으로 돌아가자라는 표어를 내걸었다.

인문주의자들과 종교개혁자들은 모두가 중세의 잘못된 관행들을 비판하면서 중세 이전으로, 다시 말하면 고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고대 저술가들의 작품들을 열심히 연구하였고,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성서의 연구에 힘을 기울였다.

원래 구약성서는 히브리어로, 신약성서는 그리스어로 기록되어 있었지만 중세 가톨릭교회는 오랫동안 라틴어로 번역한 성서를 사용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는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정신에서 라틴어 성서 대신 그리스어로 된 신약성서를 1516년에 출판했는데, 이것은 루터가 종교개혁의 불씨를 점화시키기 1년 전이었다.

이것은 1,000년 이상 라틴어 성서만을 사용하던 로마 가톨릭교회에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게다가 에라스무스는 새로 펴낸 그리스어 신약성서에서 라틴어 성서의 잘못된 부분들을 많이 지적함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성서는 루터의 사상과 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루터는 에라스무스를 우리의 자랑이자 우리의 희망이라고 불렀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또 다른 공통점은 비판정신이었다.

인문주의자들과 종교개혁자들은 기존의 질서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면서 정말 그것이 옳은 것인지를 비판적으로 탐구하였다. 그리하여 인문주의자 로렌초 발라는 소위 콘스탄티누스의 기증문서가 위조된 엉터리 문서라는 것을 밝혀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4세기 무렵에 교황에게 유럽을 지배할 수 있는 권리를 넘겨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그 문서가 실상은 중세에 만들어진 가짜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에라스무스는 중세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타락에 대해서 강력하게 비판 그리스도교 병사의 필독서, r우신예찬과 같은 책을 통해서 중세교회의 폐단을 비판하고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참된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

루터도 발라와 에라스무스의 이런 비판정신을 이어받아, 중세 가톨릭교회의 신학과 면죄부 사상 풍에 대해 강력히 반대

이런 점에서 에라스무스는 루터의 길을 예비한 선구자였다.

그러나 인문주의자들과 종교개혁자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도 있었다.

인문주의자들은 인간을 긍정적으로 본 반면, 종교개혁자들은 인간의 본성이 죄에 물들었다고 부정적으로보았다.

에라스무스가 1524년에 자유의지론이라는 책을 통해 인간의 자유의지를 옹호하자,루터는 이듬해에 노예의지론을 통해 이를 반박하면서 인간의 의지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였다

인문주의자들이 종교문제에서 평화와 관용을 강조했다면, 종교개혁지들은 진리와 일치를 강조하였다. 이런 점들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차이를 대변하고 있다.

이처럼 차이가 나는 측면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운동은 그 목적과 방식 면에서 르네상스와 비슷했다.

이런 의미에서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는 종교개혁의 알을 낳았고" 루터가 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믿음을 통한 은총에 의한 구원

계기

죄인인 내가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불안과 두려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중세 가톨릭교회가 마련한 방식을 따라 자기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하고, 사제를 찾아가 아주 작은 죄까지 고백하기도 하고, 수도원에서 금식과 기도의 힘든 훈련을 받기도 하고, 선행을 행하기도 하였지만...

그러다가 성서를 읽고 연구하면서 불현 듯 자신의 문제에 대한 답을 얻게 되었다.

믿음을 통한 은총에 의한 칭의

루터가 발견한 해답은 인간이 선한 행위나 면죄부로는 절대로 구원에 이를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의롭게 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믿음에 의한 칭의’ (justification by faith), 정확하게 말하면 믿음을 통한 은총에 의한 칭의’ (justification by grace through faith)야말로 루터 사상의 핵심이다.

이것은 구원이 우리 안에서 나올 수 없고, 우리 밖에서 즉하나님에게서 온다는 코페르니쿠스적인 방향전환이었다.

이것은 루터의 새로운발견, 사실상 아우구스티누스의 은총론의 재발견이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의 결정적인 표징이 바로 십자가이다. 그래서 루터는 자신의 신학을 한마디로 십자가의 신학이라고 말한다. 루터는 가롤릭교회의 겉으로 드러난 부패를 공격하기보다 그 내부의 잘못된 신학의 핵심을 공격한 것이다.

루터는 복음의 새로운 발견을 통해 면죄부의 허구성을 깨닫고, 15171031일 비벤베르크 성() 교회 문에 면죄부와 로마교회의 관습을 반박하는 95개 조항을 게시하였다 이것이 16세기 종교개혁을 점화시키는 불꽃이 되었다.

이에 대해 교황 레오 10세는 1520년 칙령을 발표하여 한 마리 산돼지가 주님의 포도원을 짓밟았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루터는 이 교황의 칙령을 불태워버림으로써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결국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에 의해 1521년 보름스 제국의회에 소환되었다.

황제는 최종적으로 루터에게 그대는 자신의 견해를 철회하는가, 철회하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루터는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사로잡힌 바 되었습니다. 나는 철회할 수도 없거니와 철회하지도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양심에 불복하는 것은 옳은것도, 안전한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여기 섰나이다 나를 도우시옵소서. 아멘

독일어 성서 번역

다행히 루터는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Friedrich the Wise)의 도움으로 발트부르크 성에 몸을 은신, 여기서 루터는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였는데, 종교개혁운동이 확산되는 데서 엄청난 의미를 지니는 일이었다.

이전에는 성서가 라틴어로 되어 있어서 일반 교인들이 성서를 읽지 못하고 사제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따르기만 했지만, 이제는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서를 개개인이 직접 읽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흔히 종교개혁의 3대 표어를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서라고 말한다. 역사가들은 종종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의 교리가 종교 개혁의 내용적인(material) 원리였다면, 오직 성서의 교리는 종교개혁의 내용을 담는 외형적인(formal) 원리였다고 지적한다 그만큼 성서에의 의존성은 종교개혁의 본질적인 측면이었다.

루터의 독일어 성서번역은 독일어 문법이 형성되는 데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루터의 성경관

루터의 성서관은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적이었다. “성서의 말씀들 속에서 여러분은 그리스도가 놓여 있는 강보를 발견할 것입니다. 그 강보의 천들은 단순하고 작으나 그 안에 누워 있는 보물인 그리스도는 귀합니다"

또 루터는 정경 중의 정경이라는 개념을 지니고 있었다.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을 가장 분명히 나타낸 로마서나 갈라디아서가 바로 정경 중의 정경에 속하는 것들이었다. 루터에게 성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신앙의 삶으로 인도하는 매일의 안내서이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자신에 대한 완전한 계시의 증언이다.

만인제사장 교리

루터의 사상 가운데 주목해야 할 또 다른 가르침이 만인제사장교리이다. 루터는 이 교리를 통해 하나님 앞에’(Coram Deo) 서 있는 개인의 가치를 발견하고 존중하도록 만들었다

중세 가톨릭교회는 사제만이 제사장이고 일반 교인들은 사제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루터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사제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제사장이라고 가르쳤다

전에는 사제들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로 여겼으나, 루터는 모든 직업이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명이라고 가르쳤다. 전에는 교회에서 성만찬을 할 때 사제들만 빵과 포도주를 취하고 일반 교인들에게는 빵만 주었는데 , 이제는 모든 개인에게 빵과 포도주 모두를 분배하였다.

루터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기능은 다를지라도 신분에 있어서는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주장하였다.

루터의 만인제사장 교리는 중세의 집단적 세계관이 근대의 개인적 세계관으로 뒤바뀌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급진주의자들과 대립

루터는 종교개혁을 진행하면서 한편으로는 로마 가톨릭주의자들과 맞서야 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급진주의자들과 싸워야만 했다.

루터는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모든 형태의 혁명주의자들을 경계하였다. 그는 국가조차도 거부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천년왕국론자들에 대해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칼이 아니라 십자가라고 주장하였다.

루터는 교회와 마찬가지로 국가도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이므로 공직자를 세우고 폐히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국가 권력자에 대한 저항에 대해서 매우 신중하고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한 것이다.

이런 루터의 태도는 결국 당시의 농민전쟁이나 토마스 뭔처(Thomas Münα:er)의 급진적인 혁명사상에 대해 반대하도록 만들었다.

무엇보다 루터가 급진주의자들을 반대한 것은 혼란을 야기하는 방법으로는 교회와 세상을 개혁하려는 종교개혁의 본래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판단 때문이었다.

개혁자들간의 내부 갈등

로마 가톨릭교회와 급진주의 분파와의 투쟁 외에, 루터는 프로테스탄트 개혁 진영 내부에서도 갈둥을 경험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스위스 취리히의 종교개혁자 츠빙글리와의 갈등이었다.

두사람의 갈등의 핵심에는 성만찬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가 자리 잡고 있었다.

루터는 성만찬 시에 예수 그리스도가 떡과 포도주와 함께 육체적으로 임재한다고 주장한 반면, 츠빙글리는 떡과 포도주는 하나의 상징이며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게 하는 기념물이라고 주장하였다.

성만찬에 대한 신비적 이해와 합리적 이해가 서로 충돌한 것이다. 두 종교개혁자가 성만찬에 대한 이해에서 서로 간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갈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단지 떡과 포도주에 대한 생각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임재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의 차이, 다시 말하면 신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도론의 차이가 개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루터가 미친 영향

1546년 루터가 죽었을 때 그의 침상에서 작은 쪽지가 발견되었는데 거기에는 우리는 거지들이다. 이것은 진리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참으로 우리에게서 나온 선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철저히 거지들이다. 작은 것이라도 귀한 것이 우리 안에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특히 구원이라는 측량할 수 없는 보물은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주어진 선물이다.

루터에게서 복된 소식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거지가 되셨다는 것이다.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의 동료였던 멜란히톤(Melanchthon)은 루터의 장례식 설교에서,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우리에게 명확하게 전달해준 5명이 있는데, 바로 이사야, 세례 요한, 바울, 아우구스티누스, 루터였다고 말했다.

이것은 루터가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이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했던 독일의 비텐베르크 성 교회에 가보면 교회 문에는 루터가 1517년 게시한 95개 조항이 동판에 새겨져 있고, 교회 첨탑에는 루터가 직접 쓴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라는 찬송가(585)가사가 새겨져 있다.

루터는 죽었지만 지금도 우리에게 계속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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