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 홈 >
  • 한마당 >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6.4 맥체인- 내 자신이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아요… 운영자 2017-06-05
  • 추천 0
  • 댓글 0
  • 조회 306

http://gajok.onmam.com/bbs/bbsView/10/5278129

6월 4일(주) 맥체인 성경통독 148일차 & 매일성경

신명기 1장 
이사야 29장
시편81-82편  
요한3서 1장   
 
*****  
 
<매일성경>   
 
자기 마음대로
찬송 : 새찬송가 365장 (찬송가 484장)
2017-06-04   [열왕기상(1 Kings) 12:25 - 12:33]  
 
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26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31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32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33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여로보암은 세겜을 수도로 정하고, 벧엘과 단에 산당을 세우며, 종교 체제도 바꾸어 보았지만, 여전히 불안을 달래지 못하고 심판을 자초합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25절 여로보암은 왕위에 오르자 세겜을 왕국의 수도로 정하고 그것을 요새화합니다. 그리고 외세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요단 동편 브누엘에 방어성을 쌓습니다. 이후에 그는 수도를 세겜에서 디르사로 옮깁니다(14장 17절; 16장 23절). 수도를 이전하고 개축하는 등의 건축 공사로 막대한 세금과 부역은 불가피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북쪽 지파들이 과중한 노역과 세금에 불만을 품고 다윗 왕가를 거부하여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운 일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 줍니다. 나와 우리 가족과 우리 교회만을 위한 이기적인 왕이 되도록 기대한다면, 나는 언제든 배약하고 배반할 수 있는 왕을 섬기는 자일 뿐입니다.  
 
25~29절 여로보암은 왕위에 오르고도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아직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한 왕으로서 왕권을 잃거나 암살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는 한, 체제 안정을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전 대신 북이스라엘의 최남단 벧엘과 최북단 단에 산당을 세우고 금송아지를 두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절기를 지키지 못하도록 유도합니다. 왕위와 왕국의 유지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충성에 달려 있다는 예언(11장 38절)을 금세 잊은 것입니다. 그의 첫 결정은 왕국 분열을 영속화하고, 백성을 죄의 올무에 빠뜨렸습니다. 르호보암은 ‘어리석음에서 돌아서서’ 말씀에 순종했지만(24절), 여로보암은 ‘어리석음으로 돌아서서’ 말씀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28~33절 여로보암은 율법에서 금지한 형상을 만들고, 중앙 성소를 벗어나 제사를 드리며, 레위 자손이 아닌 자를 제사장으로 세우고, 임의로 초막절 날짜까지 바꿉니다. 다윗의 길을 따라 순종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가르쳐 주셨는데도, 자신은 물론 백성까지 미혹하여 혼합 종교의 신봉자로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으로 나라가 흥했지만, 자기 마음대로 하는 여로보암으로 나라는 망하게 됩니다. 두려움을 회피하려고(26절) 시작한 일입니다. 세상이 무섭고 미래가 너무 두려워, 보이는 권력이나 돈과 사람을 의지한다면 우리도 언제든 우상숭배에 빠질 수 있습니다.  
 
기도
공동체-자기부정과 절대 순종의 신앙이 자기 맘대로 하는 기복 종교로 전락하지 않게 하소서.
열방-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이라크 기독교인의 75% 정도가 줄어들었다. 이라크 정국과 치안이 안정되어 떠난 기독교인들이 이라크로 돌아오도록  
 
***** 
 
내 자신이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아요…
성화는 결국 내가 점점 죽어가는 것이다.
-이용규선교사 <떠남>에서 
 
《같이 걷기》 책을 탈고하고 몇 달 후, 독일에 집회 차 다녀올 일이 있었다. 그 때 집회를 마치고 하루 시간을 내서 바실레아 슐링크 여사(M. Basilea Schlink)가 일구고 사역한 공동체 마을인 ‘가나안’을 방문했다. 
 
그 마을 한가운데는 기도 동산이 있었다. 예수님의 수난을 그린 7개의 장면이 곳곳에 부조(浮彫)로 새겨져 있었는데, 그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서 그 장면들을 묵상하고 기도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나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수난 장면을 목도하며 그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내게 다가오는 한 장면이 있었다. 
 
내가 경험적으로 고백하는 성화는 결국 내가 점점 죽어가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져 땅에 뉘어진 것을 묘사한 부조였는데, 그곳에서 특히 예수님의 발이 눈에 들어왔다. 예수님의 발에 십자가 못자국이 크고 거칠게 도드라져 있었다. 
 
‘아, 예수님의 발도 예외가 아니었겠구나!’ 
 
그동안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할 때 예수님의 발이 받은 고난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내 마음에 대고 말씀하시는 것같이 생생한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너와 함께 걷고 있는 발이 바로 이 발이란다.’ 
 
예수님이 그 상처 난 발로 나와 함께 걸어주신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 내 삶 전체가 한 덩어리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 당신이 그 발로 고비고비를 나와 함께 걸어주신 것이지요!’ 
 
돌아보니 내 삶의 언저리에 나의 희생처럼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내가 주님을 위해 희생한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나와 함께 걸어주신 예수님의 발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흘려주신 피였다. 
 
그분과 같이 걷는 삶에서 나는 나 자신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그분과 함께한 여정에는 결국 그 발자국만 남게 되는 것이다. 실은 그것이 ‘성화’(聖化)이다. 
 
사람들은 성화에 대해서 자신이 점점 인격적으로 성숙해지고 멋있어지고 매력적으로 변화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경험적으로 고백하는 성화는 결국 내가 점점 죽어가는 것이다. 
 
그곳 가나안 마을의 예배당에 벽화 하나가 있었는데, 어린 양이 목에 칼을 맞아 피를 쏟아내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울컥하고 말았다. 그 그림 앞에서 나는 예수님이 피 흘리신 그 길을 좇아가는 것, 그것이 성화의 핵심임을 고백했다. 
 
성화는 강압적인 훈련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의 옛 모습이 조금씩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으로 살았는데 하나님과 점점 친밀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자신은 죽고 그분이 내 삶에 드러나는 것, 그것이 성화인 것이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17.6.5 말씀에 보인 징조대로 운영자 2017.06.05 0 380
다음글 6월 3일(토) 맥체인 성경통독 147일차 & 매일성경 운영자 2017.06.04 0 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