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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28(주일예배) 주님과 함께하는 여정 (시 37:23-26) 이기형 목사 202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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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37:23-26절 개역개정

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26.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주님과 함께하는 여정(37:23-26)

2025년 소감

오늘은 2025년의 마지막 주일 송년주일이다. 올해는 어느 해보다 격동의 한 해였다.

여러분의 2025년은 어떠했는가? 여러분이 걸어온 여정을 돌아보면 고생고생하며 간신히 오늘에 이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순풍에 돛 단 듯이 가볍고 여유롭게 지내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동할 때 교통 수단을 이용한다. 인생을 살아가는데도 제각기 교통 수단이 있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 그야말로 뚜벅이는 뚜벅뚜벅 걸어야 한다.

자전거 인생, 내가 페달을 밟는만큼 움직인다. 정상에 서려면 다른 경쟁자를 밟고 일어서야 한다.

그런가하면 자동차 인생은 한결 수월하다. 기름을 채우고 핸들만 조작하면 된다.

자동차보다 더 멋진 인생이 있긴 하다.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유람선, 혹은 비행기 1등석을 이용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동차나 비행기가 주어져 있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정말 무지무지하게 일해서 스스로 교통 수단을 업드래이드 하기도 한다.

어쩌면 인간은 그 교통 수단을 업그래이드 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교통 수단이 자기의 정체성이나 신분 인간됨을 증명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교통 수단을 가지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수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적지이다.

우리는 그 수단을 가지기 위해 인생을 쏟아붓다보니 더 중요한 사실을 잃어버리고 살 때가 많다.

교통 수단은 어떤 목적지를 향해 가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 목적지에 도착하면 필요가 없게 된다.

인생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는 어떤 수단을 가지는지 보다 더 중요한 문제이다.

2025년을 지내왔는데, 여러분은 길을 잃지 않고 그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빠르고 늦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늦더라도 그 방향이 맞다면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속도에 정신이 팔려 방향을 잃어버렸다면, 이건 정말 큰 문제 아닌가?

그러면 어떤 길로 가야 하고, 어떤 방향을 향해 가는 것이 옳은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살펴보려 한다.

 

1.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신다.

2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셨다. 사람마다 각자 그 길을 정하셨다. 길이 아니면 가서는 안된다.

비행기가 하늘 어딘들 날아갈 수 있지만 항로를 벗어나면 다른 비행기와 충돌하거나 다른 나라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

배는 해로를 이탈하면 암초에 좌초될 수 있다. 자동차가 도로를 벗어나면 주행이 어렵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하나님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셨다.(20:24)

사람이 계획을 세운다해도 어디 그대로 되던가? 어긋나고 돌아가는 일이 다반사이다.

결국은 누가 인도하시는가? 잠언 16:9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인도하신다.

내 인생의 주도권,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중요한 사실이다.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그것이 믿음이다. 능력도 안되면서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고집이다.

그럼 하나님께서 정하신 걸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은 무엇일까?

세상의 일을 세속이라 하고, 교회의 일을 성직이라 불렀다. 그것은 잘못된 성속 이원론이다.

목사나 선교사나 사역자도 세속적으로 할 수 있고, 세상의 직장 일도 거룩하게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이 길이라 할 때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어떤 직업이 아니라 예수님이 길이다(14:6)

예수가 길이라는 것은 어딜 가든지 뭘 하든지 예수님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함께 하는 그 일이 거룩한 일이고 그 길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길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 되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다 보여주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께 기쁨되는 길을 걸어가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삶에 있어야 한다.

여기 시편 37:31절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있으면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다고 가르쳐 준다.말씀대로 살아갈 때 실족함이 없을 뿐 아니라 평탄하고 형통하게 될 것이다(1:8)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여호와의 정한 길로 걸어가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2. 여호와의 붙드심이 평탄과 형통이다.

오늘 말씀은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길도 평탄하고 형통한게 아니라 넘어질 수 있음을 알려 주신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도, 예수님께서 함께 계셔도 넘어질 수 있다.

예수님이 탄 배임에도 제자들은 풍랑을 만나지 않던가(4:38)

풍랑 속에 침몰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연 만물까지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 주셨다..

풍랑을 통해 가르쳐 주시는 교훈이 있고 유익이 있다.

실패와 넘어짐을 통해 그보다 더욱 큰 유익과 선물이 있고, 실패하지 않고는 배울 수 없는 가르침이 있다.

사실 실패는 주저앉아 영영 일어나지 않는 것이 실패이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좋은 경험이고 재산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를 일으켜 주신다(24:16).

이론 교육은 한번에 할 수 있어도 훈련은 단번에 끝나지 않는다. 유도의 첫 단계는 잘 넘어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 한다.

안넘어질려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잘 넘어질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주님의 품안에 넘어지면, 주님께서 저를 안아 주시고 어루만지시며 또한 일으켜 주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붙드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

하나님의 어루만지심은 상처를 입고 신음할 때 임하는 것이지 형통할 때가 아니다.

우리는 넘어질 수 있고 쓰러질 수 있다. 그러나 능하신 여호와의 손이 우리를 붙드시고 다시 일으켜 주실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새 힘을 얻고 더욱 강건해지는 것이다.

고난과 역경의 2025년을 지나 오셨다 해도, 다시 일어나 새해를 맞이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3. 성도는 베풀고 나눔으로 복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의인을 붙들어 주시기에 버려진 가운데 있지 않고 다시 일으켜 세우시며, 그의 자손을 복되게 하신다. 십계명에 있는 말씀이다(20:6).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의인의 삶이다.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준다. 있어야 베풀고 꾸어줄게 아닌가.

하나님께서 의인의 삶에 공급해 주시고 채워주신다. 그것을 받아서 어떻게 할 것인지는 의인의 선택이다.

우리는 다시금 현재의 시간에, 현실 앞에 선다. 여호와께서 정하신 걸음, 기뻐하시는 길이 무엇인가?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는 것이라고 현실적으로 말씀하신다.

2025년을 결산하면서 수지타산을 따져보자.

세상의 논리는 들어온 것이 나간 것보다 많으면 남는거라 말한다. 이익이라 말한다.

복음의 논리는 들어온 것보다 나간 것이 더 많으면 손해가 아니라 그것이야말로 남은 것이다.

내 손에 남아있지 않는데 남는 것이라니, 그것이 참되게 하늘 곡간에 쌓는 것이기 때문이다.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는 삶 그 삶을 하나님께서 더욱 복되게 하시고 그 후손이 복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복된 의인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마무리

2025년 지나온 여정을 돌아보면 어떠한가? 어쨌든 수고 많았다. 박수를 받을만하다.

그런데 그 지나온 길이 여호와께서 정하시고 기뻐하시는 길이었는가?

항로를 이탈하여 나름대로의 길을 걸어왔다면 이제라도 방향 수정이 필요하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들 말하지 않던가.

자동차든지 비행기든지 그 수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목적지가 중요하다. 나그네 인생, 그 본향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2025년은 힘들고 고생하셨는가? 참된 형통과 평탄은 꽃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섬이다.

넘어질 수 있지만 주님은 다시금 일으켜 세워 주신다. 그 과정에서 연단과 단련으로 강해진다.

주님 손 잡고 일어서서 새해를 맞이하자.

지금 현실에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길을 걸어가는 것은 베풀고 나누어 주는 것이다.

우리는 천성적으로 본능적으로 움켜쥐며 살아가게 되어 있어서, 어지간한 훈련이 아니고서는 베풀고 나눌 수 없다.

그 훈련의 과정에서 넘어지고 깨지면서 조금씩 손을 펼치는 것이다.

내게 주신 것,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나눠주며 오늘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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