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28(주) 본받아 본이 되라 (고전 11:1) | 이기형 목사 | 2025-09-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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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28일 캘거리하늘가족교회 (gajok.onmam.com) 주일예배(bit.ly/gajok) 입니다. 250928(주일예배) 본받아 본이 되라 (고전 11:1) 본받아 본이 되라(고전 11:1) 말씀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는 감동과 도전 여러분들이 배려해 주신 덕분에 한국에 잘 다녀왔다. 정말 좋은 시간들이었다. 지친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로뎀나무의 안식을 주셨다. 로뎀나무는 빌라의 일부를 선교사 게스트 하우스로 만들어 무료로 쉴 수 있게 한 공간이다. 시골교회 찬양팀으로 섬기는 목사님의 따님들과 장로님의 가족들을 통해서도 큰 은혜가 되었다. 이번 방문을 통해 성실하게 열정적으로 사역하시는 많은 목사님들을 만나면서 게으르게 살아온 나의 삶을 회개하게 하셨고 다시금 힘을 내서 사역할 수 있게 해 주셨다.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좋은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을 통해 여러분들도 복음으로 살기를 도전받으면 좋겠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2가지로 살펴보려 한다. 1.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이 되자. (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바울은 자기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본받는다는 말은 '무엇을 본보기로 삼아 그대로 좇아 하다'는 의미이다. 모방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다던데, 그러다보면 본품을 능가하기도 한다. 벤치마킹이란 말이 있는데, 본이 되는 조직이나 개인을 기준점(benchmark)으로 삼아 자신과 비교분석하고 자기에게 맞도록 적용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위인전을 많이 읽게 한다.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빅픽쳐일 것이다. 사람들은 제각기 본받을 사람을 둔다. 롤모델이 있다. 한결같이 성공한 사람, 출세한 사람이다. 그렇게 되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 여러분들에게는 본받고 있은 사람이 있는가? 누구처럼 되고 싶어 하시는가? 이미 중장년이 되어버린 분들에게는 누구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을거 같다. 그럼에도 세상의 유행과 풍조를 이끌진 못해도 뒤처지지 않도록 얼마나 열심히 따라가고 있는지 모른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바울의 고백,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들릴까? 그리스도인은 단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라서 그리스도처럼 살기를 작정하고 결단한 사람이라 하겠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일 것이다. 그럼 여러분이 본받으려는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어떤 그리스도를 본받으려는가? 예수님께서 친히 너희도 행하게 하려고 본을 보였다고 가르쳐 주신 것이 있다. 제자의 발을 씻겨 주시던 섬김의 주님이셨다.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본으로 보여주신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다고 했는데, 예수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고 고난의 길이었다. 예수를 본받아 그의 죽음에까지 동참할 때 그의 부활의 영광에도 참여하게 될줄 믿는다. 그렇기에 예수를 본받아 예수의 길로 예수처럼 살아가시기를 축복한다. 조금이라도 예수를 흉내낼 수 있기를, 순간이라도 예수처럼 살아보기를 힘쓰는 하늘가족 식구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2. 나를 본받으라 할 수 있는 삶을 살자. (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바울은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한다. 바울의 이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자신감을 넘어 교만이라는 생각 안드시는가? 그리스도를 본받아야지 어떻게 사람은 본받으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바울은 여기서 뿐 아니라 여러 차례 자기를 본받으라고 말한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교회는 사람을 보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고 다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오늘날 증가하는 가나안 교인이라는 부류가 사람을 보고 낙심해서 교회를 떠나간 사람들이 아닌가? 하지만 이 말이 현실적이긴 한데, 성경적일까? 어쩌면 자기들의 부족함을 변명하기 위한 핑계는 아닐까?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에게 하나님이 보일까?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사람들만 눈에 들어온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시고 우릴 통해 하나님을 증거하실 원하셨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우리를 통해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데, 정말 길인지 진리인지 생명인지를 어떻게 증거하겠는가? 내가 그렇게 사는 것 말고는 증명할 방법이 없다. ‘그 진리가 작동해? Is it working? 그거 고장난거 아니야? 사이비 아닌가? 어떻게 알 수 있어?’ 물어올 때, 한마디면 족하다. “나를 봐. 내가 그 증인이야, 내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고 살려고 해.” 그 말이 진실이라면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모르겠는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저 사람을 보니까 하나님이 계신게 틀림없어.’ ‘저렇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목숨거는걸 보니까 정말 진리와 생명인거 같아.’ 주님은 우리에게 새계명을 주시고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들이 제자라고 인정할거라 하신다. 어떻게 하나님을 보여 줄 수 있는가? 하나님이 사랑이시니 서로 사랑하면 거기서 하나님을 본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형제를 미워하면 거짓말하는 것이라 단언하신다. 성경은 "사람을 왜 봐? 교회는 하나님 보고 다니는 거야" 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거꾸로이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보여주라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 교회를 보고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신다. 생각해 보라. 누군가 나를 보고서 교회 오고 싶은 생각이 들고 마음이 생기겠는가? 사랑하신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니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 제자됨의 증거이다. 서로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작은 자 잃은 자를 사랑하는 것이다. 마무리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들이 되자. 세상 풍조와 유행을 좇아 살 것이 아니라, 섬김과 고난의 본을 보여주신 예수를 따라 살아가자. 예수를 따르는 삶이 이론과 신학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가 되면 좋겠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이 된 것처럼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나를 본받으라’ 하는 말은 낯 간지러워서 쉽게 할 수 없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가려 한다고, 우리 공동체는 사랑으로 하나되려고 한다고 그 진정성만 있다면 연약하고 부족해도 그런 나를 본받으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진리와 말씀 자체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와 말씀이 정말 살아 역사하는지,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다. 정말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아님 그저 고상하고 이상적인 이론에 불과한 것인지를 묻는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받았던 감동과 도전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친히 보았기 때문이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이 도시에서도, 조용하고 무기력하며 의욕상실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영적 암흑의 세상에서 누군가 그런 도전이 되면 좋겠고, 누군가 그런 감동을 주면 좋겠다. 누구겠는가? 저와 여러분, 우리 하늘가족교회가 되면 좋겠다. ‘교회는 사람보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보고 다니는 거라고’ 무책임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은 볼 수 없어도 나를 통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보라고 그렇게 담대히 도전하는 하늘가족 식구들이 되시면 좋겠다.정말 그렇게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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