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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824(주) 교회, 하나님의 집 하늘의 문(창 28:16-17) 이기형 목사 202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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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28:16-17절 개역개정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5년 8월 24일 캘거리하늘가족교회 (gajok.onmam.com) 주일예배(bit.ly/gajok) 입니다.

250824(주일예배) 교회, 하나님의 집 하늘의 문 (창 28:16-17) 예배당 확장감사예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세상은 여전히 각자도생 적자생존의 밀림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다. 경쟁의 승자는 잠시 기쁨을 누리지만, 그야말로 잠시일 뿐 언제 패배의 쓴잔을 마실지 알 수 없기에 평안이 없다. 우린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갈 것이기에 그런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내가 세상에 최적화되어 능력을 키워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현대인들을 잘 대변해주는 인물이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될 야곱이 아닐까 싶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은 40세에 리브가와 결혼한다. 이들 부부는 임신이 되지 않자, 이삭이 간구함으로 임신이 되었는데, 그 기도 기간이 20년이었다. 20년 기도의 열매가 야곱과 에서였다. 또한 아브라함과 이삭은 거부였기에 야곱은 재벌2세로 태어났다. 영적으로 세상적으로 다 갖춘 이들에게 부족함이 있었을까? 그럼에도 이들 형제는 치열하게 싸우고 다툰다. 제1라운드 - 어머니 뱃속에서 이들 형제는 모태에서부터 서로 싸웠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를 묻자 여호와께서는 ‘이 아들들은 두 민족이 될 것이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거라’ 하셨다. 그러니까 나라와 민족의 충돌인 셈이다. 이들은 왜 싸우는 것일까? 고대 상속법은 장자에게 두 배의 몫을 주었다. 그러니까 탯속에서 먼저 나오기만 하면 2배를 가지는 것이다. 서로 먼저 나가겠다고 싸우는 것이다. 23절의 예언에 의하면 큰 자가 아니라 작은 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니까 먼저 나올게 아니라 나중에 나와야 하는데 이들은 서로 먼저 나오겠다고 싸우는 것이다. 어머니 뱃속에서 1라운드는 에서의 승리로 끝났는데, 그럼 야곱은 깨끗히 승복하고 어린자로 작은자로 살아갔을까? 아니다. 비록 모태에서는 어떻게 하다보니 밀려서 동생으로 태어났지만, 이제부터 어떻게서든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형이 가진 장자권을 뺏으려 한다. 그런 야곱에게서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제2라운드 -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사들이다. 에서는 유능한 사냥꾼이었고 야곱은 장막에 거하는 조용한 사람이었는데 장막의 사람 야곱이 죽을 쑤었다. 추측컨대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올 타이밍에 맞춰 음식 냄새를 피웠을 것이다. 심히 피곤했던 에서는 동생에게 그 죽을 먹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형제지간에 그 정도 줄 수 있는거 아닌가? 그런데 야곱이 형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장자의 명분을 팔라는 것이다. 형 에서가 농담으로 생각했는지, 여기 성경에는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다고 말하는데 암튼 에서는 맹세하고 죽 한 그릇을 받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아 넘겼다. 암튼 에서와 야곱 2라운드는 장자권을 죽 한 그릇으로 사들인 야곱이 승리한 듯 보인다. 제3라운드 -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다. 어느날 아버지 이삭이 장남 에서에게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면 먹은 후에 장자의 축복을 주겠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를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들었다. 이삭은 장남 에서를, 리브가는 둘째 야곱을 사랑하였다. 야곱을 사랑한 리브가는 이렇게 장자의 축복이 에서에게로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급히 불러 자기가 만든 음식을 들고 이삭에게로 가서 장자의 축복을 받으라고 지시한다. 리브가는 야곱에게 에서의 의복을 입히고, 목과 팔목에는 염소 가죽으로 털 사람이 되게 한다. 야곱은 자기가 에서인체 하면서 하나님까지 들먹이고 축복을 간청한다. 그렇게해서 야곱은 드디어 장자의 명분 뿐 아니라 실제로 장자의 축복까지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방법은 가족인 아버지와 형을 속인 사기와 범죄였다. 이렇게 에서와 야곱의 3라운드도 야곱의 승리로 끝나면서 야곱은 최종 승자가 되었을까?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차지하려고 먼저 나가는 형의 발쿰치도 잡아보았지만 못이룬 장자의 축복을 이제 드디어 자기 머리에 받았으니 모든 것을 이긴 승리자로 영광을 누릴까? 야곱 - 상처뿐인 곤고한 승리자 아니다. 그렇게 속여서 빼앗은 장자의 축복으로 인해 그것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위협을 당하게 되었다. 장자의 축복을 빼앗긴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한다 동생이 없어지면 장자의 축복은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올테니 말이다. 장자의 축복을 속여서 빼앗은 약삭빠른 동생이나, 빼앗겼다고 동생을 죽이겠다는 형이나, 이런 일이 믿음의 가정에서 일어날 법이나 한 사건인가? 어쩌면 나도 야곱처럼 내 이익을 위해서 속이기도 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빼앗으려 했고, 때로는 에서와 같이 빼앗긴 것을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되찾으려 했다. 내 안에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받았으면서도 불안하고, 내 안의 에서는 장자의 축복을 빼앗겼다고 분노한다. 그러다보니 인생은 상처 투성이고 참된 평안과 안식을 잃어버렸다. 어머니 리브가는 에서의 말을 듣고서 야곱을 자기 친정으로 보내서 며칠 에서의 분노가 풀릴 때까지 피해 있으라고 한다. 이렇게 홀로 하란을 향해 길을 떠나는 야곱이 어떻게 보이시는가? 그는 분명 형의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승자였지만 패배자의 모습이다. 뒤에서는 형이 보낸 자객이 언제 자기 목숨을 노릴지 모르는 불안함이 있고, 치안이 좋지 못했던 당시에는 강도의 위험이나 야생 동물의 위험도 있었다. 그렇다고 하란만 가더라도 거기에 무슨 일이 기다릴지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있다. 걸어온 길도, 지금 현재의 처지도, 앞으로 걸어갈 길도 불안함과 두려움 뿐이다. 모든 인생은 이처럼 불안하고 곤고한 인생을 살아간다. 곤고한 승리자를 찾아오시는 하나님 야곱은 아무런 대책없이 돌베개에 머리를 대고 새우잠을 자는데 하나님이 그의 꿈 속에 찾아오셨다. 당신을 여호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라 하시고, 그 열조와 맺은 언약을 다시금 야곱에게 상기시키고 그 약속을 이루기까지 함께하고 떠나지 아니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놀라운 하나님의 계시가 아닌가? 이렇게 하나님을 만나고나서 야곱은 비로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했다. 야곱이 하나님에 대해 몰랐을까? 그럴리 없다. 믿음의 가정에서 얼마나 하나님에 대해 듣고 배웠겠는가? 그럼에도 하나님이 여기 계심을 알지 못했다고 정직하게 고백한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있었지만,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그는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었다. 하나님을 단지 머리로만 지식으로만 알고 있었던 야곱은 이제 하나님의 현존을 만난다. 하나님이 여기 계시는데, 자기가 알지 못했다는 한계를 겸손하게 고백한다. 그렇다.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셨는데 우리가 알지 못했을 뿐이다. 욕심에 눈이 가려서, 자기의 야망과 집념에 사로잡혀서 곁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기에 야곱과 같은 삶을 살아왔다. 겉으로는 승리한 듯 보이는데 정작 불안과 두려움의 패배자로 쫓기듯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야곱이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노숙자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찾아오셨다. 하나님은 늘 나와 함께 하신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도 임재하신다. 그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축복한다. 야곱은 그 자리를 다름아닌 하나님의 집이고 하늘의 문이라고 하였다. 이제 야곱의 인생에 벧엘, 하나님의 집이 생겼다. 야곱은 이제 하나님과의 만남, 하나님의 동행과 임재를 경험하며, 하늘의 열린 문을 통해 기도를 올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내려받는 놀라운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다. 이전에 야곱은 자기가 악착같이 움켜쥐어야 했다. 야곱이 얼마나 집념이 강하고 약삭 빨랐던가. 이제는 하늘의 문이 있으니 그 문을 통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은혜를 받으면 참된 평강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야곱은 이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었던 벧엘을 늘 가슴에 담고 살아간다. 역경과 고난의 시간에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곤 했다. 마무리 여러분이 야곱처럼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알았기에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얻어내려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면서 불안과 두려움에 지쳐 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다가와 만나주신다. 지식으로 알고 있는 하나님, 어깨 넘어 들어서 알고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와 동행하시는 그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예배당은 하나님의 집 하늘을 향해 열린 문이다. 우리의 간구를 올려 보내면 하나님은 응답하시고 은혜를 내려 주신다. 예배당이 야곱의 노숙과 같이 초라하고 누추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집이기에 영광스럽고 기쁨이 가득한 곳이다.  

오늘 만남이 한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첫걸음이 되시고 하나님의 집의 풍성함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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