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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17(고난주간 말씀성회) 씻어주시는 사랑(요 13:1-17) 이기형목사 운영자 2025-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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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어주시는 사랑(13:1-17)

 

세족 목요일

고난주간 목요일에는 특별한 3가지 행적이 있다.

이날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면서 떡과 잔을 들고 자신의 몸과 피를 기념하라시며 성만찬을 제정하셨다.

여기 본문은 성만찬 후에 일어난 일을 요한이 기록하고 있는데,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세족식을 하셨다.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나아가시고 밤새 기도하시다가 금요일 새벽에 체포 당하신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로 나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가르치고자 하신 것이 왜 하필 발을 씻어주시는 행동이셨을까?

가르침에는 어떤 의미가 있고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1. 속죄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한참 저녁을 드시던 중에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으로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수건으로 닦아 주셨다.

팔레스틴에서는 외출했다 돌아온 사람들은 손과 발 같은 신체의 일부를 씻는 것은 하나의 관례였고 더 나아가서는 밖에서 접촉했을지 모르는 의식적인 부정함을 정결케 하는 종교적 의식이었다.

이런 일은 대부분 그 집의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인 노예들이 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주님께서 갑자기 식사 도중에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이다.

이제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이 보이지 않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이러한 베드로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지극히 옳고 마땅한 반응이 아닌가?

아무리 갑자기 되어진 일이라도 그렇지, 주님께서 발을 씻겨주신다고 해서 제자된 자들이 어떻게 가만히 자기의 더러운 발을 내맡길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은근히 누리고 있을 수 있는가? 그나마 베드로는 염치가 있다.

예수님께서도 베드로의 이러한 행동을 나무라시지는 않는거 같다.

그래, 내가 하는 것을 지금은 이해가 안되겠지만, 나중에는 알게 될 거야

그런데 베드로는 설득당하지 않는다. “내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나중에 이해할지 모르지만,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모르지만,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베드로는 절대라고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베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무조건적인 사랑에 감동한다지만 사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친절과 호의를 주는 것도 쉽지 않지만,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다.

한 두 번 받는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계속 받는 것은 부담이 생긴다.

내 발이 더러우면 내가 씻으면 되는거지, 남에게 나의 더러운 발을 내맡기기가 싫은 것이다.

행여 내 발을 맡기면 나도 한번쯤은 그의 발을 씻어주어야 할거 같은 부담도 생긴다.

무엇보다 계속 받기만 하면 나를 불쌍한 사람으로 보는거 같아서 불편하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도 베드로처럼 내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라고 완강하게 거부할지 모르겠다.

베드로의 거부는 제자로서 마땅한 도리처럼 보이지만, 그 배경에는 결코 다른 사람의 신세를 지지 않겠다는 자존심, ‘나는 늘 베푸는 사람이라는 자기 공명심이 숨어있다.

우리의 이기적이고 병든 자아를 하나님 앞에서 내려 놓지 않으면, 주는 일이나 받는 일이나, 모두 우리에게 해롭게 작용할 수 밖에 없다.

 

베드로가 절대 안된다고 거부하니 예수님도 그러면 나와 상관이 없다고 선언하신다.

베드로가 순수한 마음에서 거부 의사를 나타냈을지라도 그 결과는 엄청난 것이었다.

예수께서 그를 씻어주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여기 발을 씻겨주시는 행동은 단지 발을 씻기시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십자가의 보혈로 죄씻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의 보혈로 씻김 받지 않는다면, 예수의 보혈로 씻김받기를 거부한다면 예수와 관계없는 사람일 수 밖에 없다.

오늘날 자존심 때문에 예수께 나아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거저 얻는 은혜가 별 볼일 없는 것이라 생각해서 그 은혜를 뿌리치는 사람들도 있다. 자기의 의를 내세우고 십자가의 보혈을 사양하기도 한다.

그러자 베드로는 여지껏 완강한 거부와는 180도로 입장을 바꾸어서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라고 요청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미 목욕한 사람은 온 몸이 깨끗하니, 발 밖에는 더 씻을 필요가 없다. 너희는 깨끗하다하신다.

세족식은 섬김과 사랑의 절정인 십자가 죽음을 예고함으로 구원의 의미를 지닌다.

예수의 보혈로 씻김받은 자들이 낮아진 자리에서 진정으로 섬기는 사랑의 실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2. 섬김

왜 식사 도중에 갑작스럽게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것일까?

성찬식 후에 제자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는데, 누가 크냐는 것으로 인한 다툼이었다(22:24).

그러자 주님은 식사 도중에 일어나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하셨다.

누가가 전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고 물으신다.

예수님은 주와 선생임에도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주와 선생이 아닌 너희들도 서로 발을 씻겨 주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여기 발씻음의 의미는 죄사함이 아니라 섬김에 있다.

내 발 내가 씻으면 그만이지, 나의 약점도 부족함도 내비치지 않으려는 것이 세상살이이다.

남의 더럽고 냄새나는 발을 굳이 씻어줄 이유를 찾지 못하는게 세상 논리이다.

자기는 손이 없냐고, 스스로 씻지 않으려면 노예들에게 맡기면 되지 내가 자기 노예냐고...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제자들 어느 누구 지나치지 않으시고, 가룟 유다까지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어쩌면 더욱 더럽고 냄새나는 발일수록 더욱 씻음이 필요한거 아닌가?

더러운 발을 내 밀을 수 있는 용기, 더러운 발을 씻어줄 수 있는 사랑, 그것이 예수 공동체 교회의 참된 모습이다.

 

우리 주변에 보면 발을 씻겨주어야 할 사람들이 없어서 안보이는 것일까?

안보이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외면하여 안보는 것은 아닌지 싶다.

발을 씻겨주어야 하는 사람들, 손을 잡아 주어야 하는 사람들, 따뜻한 어루만짐이 필요한 사람들,

우린 자신만 바라볼 뿐이지, 고통당하는 이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성경을 많이 알아서 스스로 제자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것은 자기만의 착각이라고 일깨워 주신다.

사랑할 때, 사랑하는 만큼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로 그렇게 행하게 하시려고 주님은 식사를 멈추시고 일부러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다.

 

고난주간의 세족 목요일,

나의 더럽고 냄새나는 발을 씻어주시려는 주님 앞에 염치없지만 부끄럽지만 거절하거나 뿌리치지 말고, 주님 손에 내어 맡기시고 속죄의 감격과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란다.

그렇게 속죄함을 받았다면, 이제 그 사랑을 나누어 주시라.

나의 주변에 발을 씻겨주어야 할 사람들, 손을 잡아 주어야 하는 사람들, 따뜻한 어루만짐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 이진식목사님이 그런 사람인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주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본을 보여 주셨다고 하셨다.

제자됨은 이론과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섬김에 있다.

말만 무성한 사랑이 식어지는 세상에서 뜨거운 예수 사랑을 보여 주시는 하늘가족 식구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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