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거리하늘가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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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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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22(주) 만나의 원리 (출 16:15-18)
운영자 2025.6.25

[성경본문] 출애굽기16 : 15 - 18 | 개역개정

  • 15.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 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효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 하셨느니라
  • 17.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 18.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2025년 6월 22일 캘거리하늘가족교회 (gajok.onmam.com) 주일예배(bit.ly/gajok) 입니다.

250622(주일예배) 만나의 원리 (출 16:15-18) 남음이 없고 모자람이 없는 세상 억강부약(抑强扶弱) 대동세상(大同世上)이라는 말이 있다. 정해진 파이를 분배할 때 강자들이 더 가지거나 똑같이 나누는 것이 아니라, 약자들을 더 배려함으로 대동세상,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자와 어린양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데, 그 세상은 어린양이 용맹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자가 발톱을 감추고 풀을 먹음으로 이루어지는 세상일 것이다. 많이 거두어 쌓아두어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적게 거두어 부족하고 궁핍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라, 많이 거두어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두어도 부족함이 없는 이 이상한 원리를 만나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만나가 보여주는 삶의 원리를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면 좋겠다. 이스라엘의 원망과 불평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온지 한달 만에 시내산에 이르렀다. 양식이 떨어졌고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다. 시내산에 이르기 전에 마라에서 있었는데, 마라에서는 홍해를 건넌지 사흘만에 물이 쓰다고 불평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쓴물을 단물로 고쳐주시고 마시게 하셨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기 신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다고 다시 불평하고 원망한다. 이 원망의 소리를 들으신 여호와께서 분노하셔서 징계하시는 것이 아니라, 저녁에는 고기로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철없는 아기가 배고프다고 떼쓰는데 부모가 화를 내거나 징계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나 철이 들고 지각이 생겨야 하는데도 어린아이처럼 떼쓰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회초리가 답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후로도 원망과 불평을 입에 달고 살았다. 신광야에 1년 머물고 가네스 바네아로 출발한지 사흘만에 다시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과 불평을 늘어 놓는다. 여호와께서 이번에도 어르고 달래 주셨을까? 아니다. 진노하셨고 진영 끝을 불사르셨다. 백성들이 정신 차리고 모세에게 부르짖자 모세가 기도함으로 불이 꺼지게 되었다. 다베라라 이름했다. 다베라의 교훈을 배웠음에도 이번에는 섞여 사는 민족들이 고기 타령을 하자 이스라엘도 동조한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누구겠는가? 이들은 1년전 신광야에서 메추라기를 먹은 경험이 있다. 경험이 있으니 여호와께 기도하면 되는데, 이들은 기도 대신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고 있다. 여호와께서는 다시금 메추라기를 내리셔서 먹게 하시긴 하셨지만 진노하셔서 큰 재앙으로 치셨다. 그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다. 다베라, 기브롯 핫다아와라고 이름 붙인 까닭은 그 사건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민수기 21장에 호르산에서 출발하여 에돔 길을 우회하는데 길로 인해 마음이 상하여 다시 원망한다. 이 때도 여호와께서는 불뱀들을 보내 징계하신다. 우리도 언제까지나 불평할게 아니라 신광야를 지나 언약 백성이 되었다면 감사로 성숙해지는 신앙인이 되어야겠다. 1. 만나는 하루 분량만 거두고 남겨 두어서는 안된다. 만나는 여호와께서 내려주신 하늘의 양식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배부르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양식을 통해 택함받은 백성들의 삶의 방식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셨다. 율법을 준행하는지, 말씀대로 살아가는지 시험하시겠다는 것이다(출 16:4).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거둘 떄 각자 먹을 만큼 만나를 거두라고 하셨다. 한 오멜을 거두라고도 했는데, 오멜은 곡식 한 묶음 정도인데 먹고싶은 밥 한그릇 정도 이해하시면 되겠다. 각자 먹을 수 있는 양이 다르다보니 조금 많은 양을 거둔 사람도 있고, 적게 거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많이 거둔 자고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었다. 어찌된 일인가? 16절 여호와께서 주신 법칙은 먹을 만큼만 거두라는 것이었고, 18절 이스라엘 백성들도 먹을 만큼만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많이 거둔 사람도 무작정 많이 거둔게 아니라 필요한만큼, 먹을 수 있는만큼 거둔 것이라 남음이 없었고, 적게 거둔 자도 먹을만큼 거두었기에 모자람이 없었던 것이다. 먹을만큼만 거둔다는 것은 오늘날 자본가들이 볼 때 어리석은 생각이다. 더 많이 거두어서 쌓아두고 미래를 준비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팔아서 부를 축적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만나의 수확 원리에서는 욕심에 따라 거두라는 것이 아니라 먹을만큼 필요에 따라 거두라 하신다. 왜냐면 만나는 오늘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내일은 내일의 만나를 주신다. 그러니 모세는 오늘 주신 만나를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고 지시하였다. 내일도 주실거라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순종하지 아니하고 내일을 위해 만나를 남겨 두었다. 만나가 어떻게 되었는가? 벌레가 생기고 남새가 나서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만나를 통해 율법을 준행하는지 시험하시겠다 하셨는데, 이들은 불합격이다.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욕심껏 거두어서 저장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그렇다면 바보들이다. 가나안에 들어가면 정착을 하게 되고 풍성한 소출을 거두면 창고를 만들어 쌓아둘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얼만큼 쌓아두어야 하는가? 욕심대로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금만 더’를 외친다. 사람은 얼만큼 가져야 만족할 수 있을까? 정답은 ‘조금만 더’라고 한다. 욕심에는 만족이 없다. 그리고 그 쌓아둔 것을 보고 만족하며 비로소 안심하고 하나님이 아니라 쌓아둔 것을 신뢰한다. 그들의 든든한 빽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쌓아둔 재산이다. 그것을 맘몬이라 부른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서 가나안의 생활방식이 아니라 만나의 방식을 따라 살아가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만나의 원리를 가져와서 교회의 구제 헌금에 적용한다. 예루살렘에 흉년이 들어 고통당하고 있을 때 고린도교회는 구제 헌금을 모아 보내 주었다. 이 구제는 넉넉하게 가진 자들의 것을 빼앗아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동세상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바울은 만나의 원리를 여기 인용한다. 여기 기록된 것은 출애굽기 16:18 본문이다. 적게 거둔 자가 모자라지 않는 것은 많이 거둔 자들이 자기 먹을만큼 필요를 따라 사용하고 남은 것을 모자라는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부족할 때에 넉넉한 누군가가 나의 부족을 보충하여 균등해질거라 하신다.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쌓아둘 수는 있지만 쌓아둔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다. 나에게 맡겨주신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니 내 욕심대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먹을만큼 필요한만큼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약한 자를 위해 기꺼히 섬길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충만으로 인함이다. 초대교회에는 가난한 자가 없었다고 한다. 성령에 감동된 가진 자들이 자기의 잉여 재산을 팔아 교회에 맡겼고, 교회는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다. 너무 이상적이라고,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꿈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맞다. 맘몬에 휘둘리는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이다. 그런데 따스한 성령께서 임하시면 움켜쥔 손을 펴게 하시고 가진 것을 나누게 하신다. 전에는 내가 굳게 붙들고 믿었던 것이 내가 쌓아둔 것이었는데, 이제 그것을 믿는게 아니라 하나님을 믿기에 나에게 맡겨주신 것으로 도울 수 있고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에는 자기 연민에 빠져 내가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했는데, 성령께서 누군가의 결핍이 보이게 하시고 누군가의 필요가 바라보게 하신다. 주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할 때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제자됨을 인정할거라 하셨다. 우리끼리 사랑은 이기적일 수 밖에 없지만, 우리안에서부터 사랑은 가능한 시작점이 될 것이다. 오늘 본문의 만나는 다음날이 되면 상해서 먹을 수 없게 되었다. 모든 것이 유통기한이 있다.  

지금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것 중에 여유가 있고, 성령께서 누군가의 필요를 보게 하시고 알게 하신다면, 다음을 위해 욕심을 위해 쌓아둘지 아님 그것을 필요로 하는 하늘가족 식구들이나 이웃들과 나눌지, 성령 안에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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