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420(주일예배) OOO야 나오라 (요 11:23-27)
- 운영자 2025.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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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11 : 23 - 27 | 개역개정
-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2025년 4월 20일 캘거리하늘가족교회 (gajok.onmam.com) 주일예배(bit.ly/gajok) 입니다.
250420(주일예배) OOO야 나오라 (요 11:23-27) OOO야 나오라(요 11:23-27) 1. 부활주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지낸 사람은 아리마대 요셉이었다. 그 때 예루살렘에 빈 무덤이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 뿐이었겠는가? 주말에 잠시 쓰시겠다 해도 주님께 드리는 사람은 아리마대 요셉 뿐이었다. 주님 쓰시고자 하실 때 내어 드릴 수 있는 믿음이 우리에게도 있으면 좋겠다. 2. 10년전 하늘가족교회 그렇게 드리는 것이 쉽진 않다. 11년전 교회를 사임하고 개척할 때 하나님께서 ‘너는 나를 믿니?’ 물으셨다. 내가 망설이고 주저하는 것은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주님께서는 능력이 아니라 순종을 찾으신 것이다. ‘내가 너를 쓸 수 있겠니?’ 거기에 응답하고 교회를 시작했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러 오늘 10주년 감사예배를 드리고 있다. 참 감사한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이끌어 오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또한 이끌어 가실줄 믿는다. 3. 나사로의 죽음 앞에 본문에서도 그 믿음이 쉽지 않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는데,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는 주님을 믿는거 같은데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질 않는다면, 어찌된 까닭일까?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스스로의 믿음을 성찰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면 좋겠다. 베다니에 예수님의 사랑받는 나사로 가족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병이 든 것을 알고 계셨지만,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 지나서야 찾아 오셨다. 사랑하는 오라버니의 죽음 앞에 마르다와 마리아는 큰 슬픔에 잠겼다. 예수님께서 이 자매들에게 찾아오셨다. 이제 예수님께서 오셨다면 모든 슬픔과 고통은 다 끝나지 않았을까? 그런데 요한복음 11장을 읽어 보시면 마르다와 마리아는 큰 변화가 없는 듯 보인다. 예수님과 나누는 대화에서도 어떤 평행선 같은 답답함이 엿보인다. 암튼, 예수님이 찾아 오셨음에도 자매들에게는 아무런 해답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를 모르거나 예수를 안믿는 사람들도 아닌데, 왜 그럴까? 4. 마르다의 믿음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신다.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날 줄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확고한 부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날 부활을 믿고 있는 마르다에게 지금 부활을 말씀하시면서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 주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마르다의 대답은 분명하였다.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그럼 이 믿음이 있으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영광인가? 죽음을 이긴 부활의 영광이다. 예수께서 나사로의 무덤에 가셔서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신다. 돌을 옮겨 놓아야 오라비가 다시 살아날게 아닌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마르다는 예수가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했으니 마땅히 순종했을 것이다. 그런데 마르다의 반응은 너무 뜻밖이다.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앞서 마르다의 믿음의 고백을 듣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말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 역사적인 증명의 순간, 마르다는 자기의 믿음의 고백을 뒤집고 있다. 이쯤되면 마르다는 무엇을 믿었을까? 정말 믿었을까 싶은 것이다. 마르다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는가? 그는 멀리 있는 진리에 대해서는 아멘하였다. "주여 마지막 날에 살아 날 줄을 믿습니다." 어쩌면 그런 믿음은 교리적이며 지식적이며 고백적인 믿음이라 할 수 있겠다. 마르다는 분명한 믿음의 고백을 하고 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런데도 돌을 옮겨 놓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막아서는 것이다. 교과서적인 답을 말하면 정답이라고 인정을 받지만 그 뿐이지 아무 역사를 경험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부활의 예수님께서 오셨음에도 마르다는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는 것이다. 오늘 우리 가운데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어도 우리의 삶에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살아있는지, 죽은건지도 아리송하다. 잠들어 있으니 죽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님의 진단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지만 죽은자라 하신다. 그들에게 오늘 부활절에 예수 부활이 절실하다. 오늘 부활주일에 그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한다. 5. 나사로야 나오라 주님께서는 그렇게 깊은 동굴속에 잠들어 있는 사람을 깨우신다. “나사로야 나오라!” 어떤 이가 무덤에 가서 죽은 자를 부르면서 나오라고 한다면 제정신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분이 계신다. 누구신가? 부활이요 생명이신 우리 예수님이시다. 죽은 자가 어떻게 음성을 들을 수 있는가? 사망을 이기시고 죽음을 정복하신 생명과 부활의 주님 말씀 앞에 죽은 자가 반응한다. 우리는 에스겔 선지자의 환상을 통해서도 이를 알 수 있는데. 과연 마른 뼈들이 살아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의 능력이 있다. 듣는 자는 살아난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지금 이 시간 우리를 부르신다. OOO야, 나오라. 사망의 잠을 깨고 절망의 늪에서 나오라. 지금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의 말씀에 응답해야 한다. 6.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부활의 생명을 누리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2가지가 있다. 첫째는 우리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신다.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없고 하나님만이 하실수 있지만, 돌을 옮기는 것은 우리도 할 수 있고 더군다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말씀이 들려오지 못하도록 그 마음 문을 닫고 있는 돌문이 있다. 이 돌이 가로막고 있는 이상 "OOO야 나오라" 하시는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 돌을 옮겨 놓으니, 비로소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고 무덤을 향해 OOO야 나오라고 말씀하신다. 나오는 것은 내 의지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다. 오늘, 내 마음을 짓누르며 가로막고 있어서 옮겨야 할 돌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옮기시기를 바란다. 둘째는, 풀어놓아 다니게 하는 것이다. 분명 다시 살아난 것인데, 그렇지만 아직 활동에는 제약이 있다. 수족이 묶여 있고, 얼굴이 수건에 가려 있기 때문이다. 묶인 자가 스스로 할 수는 없으니, 주변의 사람에게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고 하신다. 주님께서 살려내신 귀한 영혼들이 있는데, 생명은 얻었지만 아직 세속에 묶여서 걱정 근심에 쌓여서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풀어 놓아 다니게 하는 일이 공동체가 감당할 일이다. 그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구원받아 살아나긴 했지만 묶여 있어서 어떠한 활동도 없는 공동체가 아니라 예수 생명으로 풀어놓아 방방곡곡을 다니며 나를 살리신 부활의 증인이 되는 하늘가족 식구들이 되시기를 바란다.특별히 오늘 이 시간, 귀한 자리에 잘 오셨다. OOO야 나오라고 부르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마음의 돌문을 열고 주님의 음성을 듣는 부활주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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