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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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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13(주) 한 시간도 함께 깨어있을 수 없더냐(마 26:36-46
운영자 2025.4.15

[성경본문] 마태복음26 : 36 - 46 | 개역개정

  •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 43.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 44.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한 시간도 함께 깨어있을 수 없더냐(마 26:36-46)

 

겟세마네 오늘은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종려주일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예루살렘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로 환영한데서 유래했다. 왕의 대관식이라 하기엔 어린 나귀가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군중의 열망은 뜨거웠다. 예수님은 무리들과 제자들의 기대한대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셔서 로마를 물리치고 메시야 왕국을 건설하실까? 무리들의 기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허물어져 갔고 그들의 실망은 분노로 바뀌었다. 이제 시간은 목요일 저녁이 되었다. 유대인의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이 다가오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앞으로 닥쳐올 고난을 예고하신 후, 겟세마네라 하는 곳으로 제자들과 나아가셨다. 겟세마네는 ‘기름짜는 틀’이라는 뜻으로 예수님께서 땀이 핏방울되어 떨어질만큼 절박하게 기도하시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요청하신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오늘 고난주간을 시작하는 우리에게도 요청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본문에서 반복되는 단어가 있는데 ‘함께’이다. 오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한다. 1.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38) 예수님께서 세 명의 제자들에게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신 까닭이 무엇인가? 37절에서는 ‘고민하고 슬퍼하사’, 38절에서는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예수님의 심경을 밝히신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당신의 고뇌를 드러내신 것은 성경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지금껏 한 번도 괴로움을 토로한 적이 없으셨던 분께서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근심에 싸여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하셨다. 인생을 살다보면 누군가가 옆에 있어 주기만 해도 좋을 그런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 상대로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부르셨고, 오늘 우리들을 부르신다. 우리는 주님의 중보자로 초대 받은 사람들이다. 놀라운 초대가 아닌가?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나약한 예수님의 모습이 익숙치 않을 뿐 아니라 의구심마저 든다. 하나님의 아들이니 죽어도 살아날건데, 십자가 쯤은 가볍게 질 수 있는거 아닌가? 우리는 고난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상황 앞에서 번민하는 예수님을 보면 매우 낯설어 한다. 예수님답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십자가 죽음을 향해 뚜벅뚜벅 이 길을 걸어오신 분께서 왜 갑자기 이 잔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신 것일까. 그건 예수님께서 인간이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100% 하나님이자 100% 인간이라는 양성은 삼위일체 만큼이나 온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두려움 앞에 망설이셨고 희노애락의 감정을 똑같이 느끼셨다. 다만 한가지 차이는 죄가 없으셨다. 십자가에서 온 몸이 벌거벗기는 수치와 조롱과 멸시 천대.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고난이 어떠한지를 아셨다. 그러나 예수 십자가의 가장 큰 저주와 고통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끊어지는 영적 고통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의 죄를 대신지신 십자가의 예수님을 외면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절규하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이었다. 모르는게 약 아는게 병이라는 말이 있는데, 본래 알면 더 두렵고 고통스럽지 않던가? 예수님께 있어서 아버지와의 단절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었기에, 제자들에게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마음을 토하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렇게 무겁고 죽을만큼 고통스러운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또 한가지 의문이 있다. 아니, 우리같은 것들을 붙들어봤자 무슨 도움이 되고 힘이 되고 위로가 되겠는가? 여러분은 주님께 힘이 되어 드릴 수 있는가? 힘이 아니라 짐이 되는 존재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우리와 마음을 나누기 원하신다. 우리의 상하고 찢겨진 마음을 아시고 고치시지만, 주님은 우리도 당신의 마음을 알아주시길 원하신다.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내 고집대로 살지 않고 아버지의 원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믿음이다. 주님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헤아리시고, 주님과 함께하여 주님께 위로와 기쁨을 드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2.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40)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과 함께 깨어 있기를 원하셨지만, 안타깝게도 제자들은 잠들고 말았다. 나는 죽을만큼 고통스러워하는데 옆에서 태평하게 퍼질러 자고 있으면 미운 정도가 아니라 배신감도 들것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고 물으신다. 이렇게 물으신 까닭이 무엇일까? 단지 예수님의 서운한 마음을 내비치는 것일까? 우리가 주님과 함께 깨어 있어야 할 중요한 이유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주님과 함께해야 한다. 지금 사탄이 베드로를 무너뜨리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고 예수님께서 조금전 경고하신 바가 있다. 이런 경고를 심각하게 받은 것이 아니라, 베드로는 그럴리 없다고 큰 소리로 호언장담하였다. 물론 이런 베드로의 장담이 허풍이 아니라 진심이었음을 의심할 수 없다. 우리도 진심 아닌가?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경고를 들었어야 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우리의 마음이나 의지는 믿을만하지 않다. 베드로가 그렇게 큰 소리쳤지만 결국 예수님 체포되었을 때 제자들은 뿔뿔히 흩어졌고,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할거라는 예언을 그대로 이루어졌다. 베드로의 실패는 하나님의 은총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의지를 믿었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그 말씀을 듣고서 기도하였더라면 시험에서 승리하였을텐데 너무 아쉽다. 이런 아쉬움이 있다면, 우리는 한 시간이라도 깨어 기도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제자들은 다시 잠들었다. 두 번째도 잠든 것이다. 제자들의 눈이 피곤해서라고 설명한다. 제자들에게는 육신의 피곤함만 있었지 영적인 각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영적으로 무감각한 것이다. 우리도 세상살이에 분주하고 이리저리 치이다보면 기도할 틈이 어디 있는가. 그래서 잠들어 있다. 예수께서 세 번째 기도하고 제자들에게 오셨지만 그들은 여전히 깨어있지 못했다. 제자들은 그들이 시험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몰랐을 것이다. 알았더라면 기도의 자리로 나아왔을텐데.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로 나아오는 것이 시험에 들어가지 않는 비결이다. 한 시간이라도 주님과 함께 깨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당부드린다. 3. 일어나라 함께 가자(46) 세 번의 기회가 지나고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때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서 일어나라 함께 가자 하신다. 주님은 이런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것이 도움이 되고 힘이 될거라 생각하셨을까? 그나마 없는 것 보다는 나을거 같아서 일어나라고 함께 가자고 하셨을까? 아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떠하든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고 기뻐하신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이유를 “우리가 깨어 있든 잠들어 있든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한다. 비록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유혹과 시험에 넘어지면서 오물통에 허우적거리며 뻘 짓을 하지만, 그럼에도 주님은 일어나라고 함께가자고 내 손 잡아 일으키신다. 그 나태하고 게으른 자리에서 일어나 주님과 함께 나아가시는 하나님이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마무리 오늘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키워드는 “함께”였다.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주님의 죽을만큼 고민하시는 그 마음을 헤아리시고 함께 하시면 좋겠다.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지라도 지금 시험에 빠져서 무너질 것이기에 깨어 기도해야 한다는 긴급한 주님이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이렇게 부끄럽고 연약한데도 주님은 우리 손을 잡아 일으키시고 함께 가기를 원하신다.  

주님과 함께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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