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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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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06(주일예배) 말씀이 나에게 훅 들어올 때 (겔 33:30~33)
운영자 2022.3.12

[성경본문] 에스겔33 : 30 - 33 | 개역개정

  • 30.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에 대하여 말하며 각각 그 형제와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 31.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 32. 그들은 네가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거니와
  • 33.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에 있었음을 알리라


 

말씀이 나에게 훅 들어올 때(33:30-33)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다. 성경의 절대 권위는 기독교의 기초이다. 누구나 동의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경 말씀대로 살겠다고 결단하고,

또한 경건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말씀대로 살고 있다고, 적어도 말씀대로 살려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 말씀대로 살려 한다는 그리스도인들과 목회자들도 어떤 사안에 대해 극명하게 찬성과 반대로 갈라진다.

의견을 다를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성경에서 찬성과 반대를 찾아내고 성경을 근거로 내세운다.

성경으로 상황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성경으로 합리화하는 것이다.

성경을 수단과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다.

성경 말씀마저 정치 논리로 이해하고 자기 관점으로 해석하려 한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런 생각이 본문 에스겔에도 나온다.

 

말씀을 들어보자

에스겔은 포로로 끌려가 주전 592년 선지자로 소명받았다.

아직은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전 망하기 전인데, 이방 풍습을 좇아 우상 숭배에 빠진 패역한 백성들을 향해 회개와 심판을 선포했다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한대로 예루살렘 성이 멸망당하고 이 사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도망쳐 온 한 사람에 의해 바벨론 포로지에도 알려지게 되었다(21).

 

에스겔의 예언이 한치도 틀림이 없이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이 증명되자 그에 대한 백성들의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에스겔의 말씀을 듣기 위해 관심을 가지고 모여들었다.

(33:30)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에 대하여 말하며 각각 그 형제와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 보자 하고

오늘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들도 말씀에 대한 관심이 많이 있다.

이렇듯 말씀의 관심이 지대한데도, 말씀이 우리 가운데서 그렇게 강력하게 작동하는거 같진 않다.

우리는 이러한 모순에 대해 당혹스럽다. 말씀의 관심이 그리 많은데 왜 말씀은 역사하지 못하는가?

 

듣기는 하나 행하지는 않는다.

(31)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오늘 우리 시대의 기독교 신앙의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 들으나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귀를 막는 것은 아니다.

들으려고 자발적으로 나왔으니, 마치 하나님의 백성들처럼 선지자의 앞에 앉아 말씀을 듣는다.

얼마나 은혜롭고 아름다운 광경인가? 그런데 여기까지이다.

들었으면 말씀을 삶의 현장에서 살아내야 하는데, 그대로 행하지는 않는다.

지식은 높아가니 자기의 입장과 생각은 더욱 견고해진다.

나아가 마치 자기가 그런 말씀의 사람인양 착각하게 된다.

야고보 선생이 이를 지적한다.

(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말씀을 들었다고 안다고해서 말씀의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말씀의 사람인가?

우리는 말씀이 있으니 얼마나 고상하고 말씀 충만하냐고, 다 된 것처럼 뿌듯하고 만족해 한다.

야고보 선생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지식은 죽은 것이라고 가르쳐 주신다.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 말씀은 우리의 삶에 도전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문자가 아니라 살아 역사한다고 믿으시는가?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그 말씀이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

마치 수술하는 메스와 같아서, 조각가의 정과 끌과 같아서, 우리의 죄로 병든 심신을 수술하시고 모난 부분을 깎아 아름답게 하신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이 불과 같고 방망이와 같다고 하신다.

(23:2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그 말씀이 나의 죄악을 불태우고 말씀의 방망이가 나의 완악하고 고집스러운 심령을 부스러뜨린다.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도 그대로 말씀하셨다.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12: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예수님의 말씀을 감미로운 수면제로, 마음의 평강과 기쁨을 주는 마취제로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잔혀 그렇지 않다. 화평이 아니라 검으로 들어온다. 불과 같은 말씀으로 찾아온다.

잠잠하고 평화로운 내면에 말씀이 훅 들어오면 혼란이 일어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데,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나의 감정을 건들고 나의 생각을 바꾸려고 감히 도전장을 내민다.

그러할 때 우리는 말씀에 시험 들었다고 표현한다.

말씀이 훅 내 안에 들어올 때, 목사가 말씀으로 자기를 때린다고 생각한다.

말씀이 들려지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다.

 

왜 말씀대로 행하지 않을까? 1) 이익을 따름이라.

(31)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입으로는 무슨 말로 정당화를 하려해도, 결국 자기에게 이익이 되느냐 유리한가를 계산해서 결정한다.

입으로 사랑과 평화를 말한다. 이웃을 사랑하자, 우크라이나의 평화에 우리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교회는 하늘가족이라고 우리는 공동체라고 할 때 그것도 동의한다.

그런데 이웃 사랑을 위해,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 뭔가를 하자고 할 때 생각이 달라진다.

초대교회처럼 되고 싶은데, 초대교회처럼 하나가 되어서 유무상통하며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음식을 먹는 그런 일은 하고 싶지않은 것이다. 나에게 부담일 뿐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하늘가족 여러분들은 손해가 되고 얻는 것이 없어도,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고 나에게 원하시기에 그렇게 주님을 따라갈 수 있으면 좋겠다.

 

왜 말씀대로 행하지 않을까? 2) 흥미 거리로

(32) 그들은 네가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거니와

말씀과 말씀 전하는 자에 대한 잘못된 이해이다.

구약 시대에는 선지자들이 예언을 할 때에나 율법을 낭독할 때에 운율을 가미하여 노래를 부르듯이 낭송하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삼상 10:5;왕하 3:15).

이는 에스겔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 나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가짐이 어떠하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선지자가 목소리는 참 좋네.. 제법 유쾌한 가락이 나오는데.. 감정을 잘 살리는고만.

이는 백성들이 에스겔의 예언을 회복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진지하게 경청한 것이 아니라 단지 좋은 음악을 듣듯이 피상적으로 듣고 있다.

오늘날도 설교를 콘서트로 생각하고 설교자를 가수 정도로 생각한다면, 구경꾼처럼 설교를 감상할 것이다. 판정단이 되어서 채점을 한다.

 

마무리.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들어야 할까?

(33)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에 있었음을 알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선지자는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증명하는 사람이다.

오늘날에도 말씀을 듣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이루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42:6)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

말씀이 나에게 훅 들어올 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인지상정일지 모르지만, 그래서는 결코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고 하지 않던가.

이익인지 손해인지 계산하지 말고, 할 수 있는지 없는지 헤아리지 말고, 좋게 들려도 좋지 않게 들려도, 청종하라. 그러면 복이 있을 것이다.

말씀과 전하는 자에 대한 바른 이해도 있어야 한다.

(살전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사람의 의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고 거기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러할 때 말씀이 여러분에게 훅 들어와서 여러분을 도전할 것이다.

변화는 언제 일어나는가? 나의 생각과 다른 말씀이 나에게 들어올 때,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렇게 변화할 것이다. 물론 쉽지 않다. 우리는 변화를 싫어하고 얼마나 고집스럽고 이기적인데,

나의 생각과 주장에 맞는 것만 받아들이면 강화된다. 더더욱 견고하게 굳어지는 것이다.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고 집중해서 들으면 그것이 세뇌이다. 그럼 로봇이 되는 것이다.

나에게 도전하는 말씀내 안에 심고 그 말씀이 나를 통해 역사하는 것이 믿음의 삶이다.

듣기만 하고 자기를 속이는 자가 아니라 말씀대로 살아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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